연중 제주21일 082326 가해 강론
이사 22:19-23; 로마 11:33-36; 마태 16:13-20
셰익스피어는 예수님께서 수제자를 “반석(돌)”이라 부르신 것에 대해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을 런 지도 모를 일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쥴리어스 시저 Julius Caesar’에서 마룰루스 Marullus는 로마 시민들을 향해 “이 목석 같은 사람들아, 감각조차 없는 미련한 사람들아!” 하고 짓 꾸짖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셰익스피어가 시몬의 별명을 바라보는 한 가지 시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을 “베드로” 곧 “반석(盤石)”이라 부르신 것은, 그가 마치 “굴러가는 돌멩이”처럼 우둔하다는 뜻이었을까요?
실제로 복음서는 베드로를 제자들 가운데 가장 명철한 인물로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고전 영화 “록키 Rocky”는 베드로의 별명을 이해하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시몬은 모두가 자신에게 등을 돌릴지라도 마침내 역경을 이겨내는 강인한 인물일까요? 겟세마니 동산에서 칼을 휘둘렀던 그의 모습은 확실히 싸울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혹시 시몬은 어떠한 논리나 상식으로도 마음을 돌릴 수 없을 만큼 “바위처럼 고집스러운” 사람이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비록 사도 바오로가 한때 그의 줏대 없는 태도를 두고 대면하여 꾸짖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그가 반대와 시련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신실하고 굳건한 사람이었기에 “반석”이라 부르셨던 것일까요? 하지만 예수님의 재판 도중 그분을 나 몰라라 부정했던 수치스러운 사건을 떠올려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아 보입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예수님께서 시몬을 다른 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는 강인한 존재, 즉 “믿음직하고 튼튼한 기초”로 보셨다는 점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름을 새로 주신 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대목에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반석”인 베드로 위에 세우기로 선택하셨다고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반석다운 굳건함”을 지녔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하신 걸까요? 아니면,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요? 베드로가 반석이었기에 교회가 그 위에 세우진 걸까요, 아니면 주님께서 그 위에 교회를 세우려고 선택하셨기 때문에 그가 반석이 된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위에도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우리 역시 반석처럼 단단해야만 하는 걸까요?
만약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반석이 되어야 한다면, 사실 나라는 사람에게도 그 표현이 들어맞는 구석들이 분명 있습니다.
분명 우리는 터무니없는 어리석음에 빠지기도 하고, 돌이나 바위처럼 둔감하며, 때로는 미물보다 못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베드로처럼, 우리 역시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들이는 그릇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의욕 넘치게 앞장서 달려가다가도, 자신 안의 죄와 세상의 죄에 맞서는 싸움이 힘겨워지면 이내 낙담하고 두려워하는 시몬 베드로를 닮아 있기도 합니다.
또한 신앙의 관습을 지키는 데는 고집스러우면서도, 정작 삶 속에서 신앙을 실천해야 할 때는 세상과 너무나 쉽게 타협해 버리곤 합니다.
나는 과연 변함없는 굳건함이라는 면에서 반석 같을까요? 글쎄요. 어느 정도는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 조화롭게 묻혀 사는 데 너무 많은 신경을 씁니다.
나의 우정, 사회적 지위, 심지어 생계 마저도 너무 유별나지 않게 살아가는 데 달려 있고, 특히 신앙이 나에게 요구하는 “거룩한 다름”의 길 앞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때로는 타인에게 든든한 “지주 (盤石)”가 되어 주기도 하지만, 이 마저도 상대의 절박한 필요보다는 내 편의에 맞추어 도우려 합니다. 나에게는 남을 돕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나만의 사정과 약속들이 늘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어울리는 모습은 바닥 중에서도 가장 아래인 “바닥 끝 Rock Bottom”의 이미지일 지도 모릅니다.
종합해 보면, 나나 나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이나 그다지 대단할 것 없는 이들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젤라틴 Gelatin”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셨다면, 그 사람 뿐만 아니라 그를 기초 삼아 세워진 교회인 우리에게도 훨씬 더 딱 들어맞았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형체는 유지하지만, 끊임없이 흔들거리는 그 모습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바위 Petro” 대신 “젤리 Gelatin (우뭇가사리나 묵 같은 연약한 재질)”라는 별명을 붙이셨다면, 그 사람 본인 뿐만 아니라 그 바탕 위에 세워진 교회 공동체, 곧 우리들의 모습을 더 정확하게 표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얼마간은 형태를 유지하지만 이내 흔들리고 마는 연약한 모습 말입니다.
견고한 반석이 아니라 이런 흔들리는 젤리 같은 모습으로도 충분한 걸까요?
주님께서는 그렇다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면, 그 쇠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초 삼아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그리스도의 결단이 마침내 그를 든든한 반석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수난의 밤에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십자가라는 마지막 시련 앞에서 도망쳤던 시몬이 마침내 제자들의 으뜸이자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인인 베드로가 된 것입니다.
시몬이 흔들리는 젤리에서 견고한 반석으로 거듭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그 고백 자체가 그를 곧바로 완벽한 반석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님께서 그를 교회의 기초로 삼으시기에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의 약하고 흔들리는 신앙도 주님께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하고 인정해 주실 만큼은 된 걸까요?
아마 그럴 것입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저 역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면, 주님께서는 이러한 나를 교회를 세우는 모퉁잇돌로 쓰십니다.
이것이 앞으로 내가 결코 흔들리거나 방황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일까요? 아니오, 전혀 아닙니다.
베드로 역시 “반석”이라는 새 이름을 받은 후에도 수없이 흔들렸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어,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참으로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이 모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당신의 교회로 부르셨다는 점입니다.
주님께서는 허물 많은 우리를 세우시고, 저승의 세력도 결코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첫댓글 신부님 건강하십시오.
신부님
감사합니다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율리아 올림
신부님! 감사드립니다
항상 좋은글 보내주셔서...
더운날씨에 건강조심하세요.🙏❤️
아멘.아멘!
말씀 묵상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
아멘 🙏
신부님 감사드립니다
🙏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신부님늘감사합니다 오늘도주님과함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건강하셔요.
감사합니다 ~♡
신부님
감사 감사 드려여
함께 했던 자매들이
그 곳에서 함께 했던 시간을
넘 넘 좋아들 했네여
신부님께서 온 정성 속에서의
시간들
잊지 못 하겠다고^^
고맙습니다
모쪼록
건강 건강 살피고
돌보시기요
남은 더위 무탈하게❄️❄️
두루 평안 하시와요🙏🙏
감사합니다 신부님도
영육간에 건강하셔요
감사합니다 신부님도
영육간에 건강하셔요
찬미예수님 !!!
정희욱 신부님 께 올립니다
신부님
오랜만에 신부님의
안부를 여쭈어 봅니다 늘 카페로 신부님 모습을 뵙고
강론 말씀으로 전달 받고 있습니다 만
기후변화 로 올 여름은 너무나
더운날씨 건강 은
괜찮으신가요 사진으로 는 건강 해보이십니다 만 항상 건강 잘챙기고 저희들의
옆에 오래오래 계셔주셔요 언제나 고맙고 감사합니다
오늘 강론 말씀이 특히 가슴에 와닿아서 우리도 베드로의 신앙 처럼 항상 흔들림 으로 살아가는 저희를 예수님 께서는 넘어지는 전의 손을
언제나 잡아주시고
믿음으로 바라봐 주셔서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신부님 사랑합니다 💜 💕
행복 하세요
데레사 올림~~~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우와 감사합니다!! ㅎㅎㅎ 신부님도 복되고 기쁨 가득하신 하루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D 🌹🌹🌹
감사드립니다 신부님늘건강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