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바람, 몰아친다
천둥 뇌승에 하늘이 진저리를 친다
나무들이 떨어 우는 그곳에
우직스럽게 한 길만 고집하던 주검은
바람이 할퀴고 간 골깊은 아우성 이었다
허름한 헛간에서 울어되는
죽어간 아비의 한내림 이었다
모진 세월 없신여긴 농꾼으로 살아오다
나이 마흔에 얻은 각시 마흔 둘에 이혼당한 박씨아제
바득바득 살으려다 농가부채에 견디다 못해 동네 저수지에 빠져 죽고
반백년을 농꾼으로 살아온 박씨 아부지는
늘어가는 빚 더미에 한탄으로, 한탄으로, 술로, 술로 죽어 나간다
'땅은 거짓말을 않는다'
철석같이 믿으시던, 울아부지
“WTO Kills Farmers!” 유언으로 남기고
먼 나라 남의 땅 불귀의 객으로 떠도는데
희망을 갖고 살아 보자던 울아부지
“한 십년 고생허믄, 니 시집 보낼만치는 안되겄냐”
영농자금 1억원, 통도 크게 대출 받으시더니
쩡쩡 내리쬐는 뙤약볕에
뒷골 자갈밭 뼈빠지게 갈아메고
탕탕 못박아 커다랗게 축사도 지으시고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빚내어 사들이시더니
“WTO가 우리농민 다 죽인다” 유언으로 남기고
멕시코 칸쿤, 원혼으로 떠도는데
땅 위의 하늘이 울고있다
울아부지 제사상 잿밥 한 그릇이
껌값만도 못한 나라
빛 좋은 개살구 영농후계자 울아부지
빚더미만 산더미로 남겨두고
멕시코 칸쿤, 불귀의 객이 되어
머나먼 조국의 하늘 우러르는데
조국의 하늘이 울고있다
<2>
보았는가
농꾼의 눈망울에 비친
푸른 하늘을 보았는가
서슬 퍼런 낫으로
논두렁 베고 마지막 숨 몰아 쉴 때 바라 본
반백년의 하늘을 보았는가
“WTO가 우리농민 다 죽인다”
배를 가르고, 마지막 숨 몰아쉴 때
눈물 짓뿌리며 조국의 하늘을 보았는가
울아부지는 바람이 되었을겨
죽어서 돌아 갈 식민조국의 들녘
가실거지하는 누런 논자락
바람으로나마 불어 오고 싶었을겨
아이들 웃음소리 깔깔거리고
풍물장단에 어화둥둥 돌아치던 고향마을
지금은,
자고 나면 빈집이 늘고
휑하니 먼지 이는 고향마을
바람으로나마 휩쓸고 싶었을겨
바짝 타 들어간 논배미서
종주먹 들이대고 물싸움 하기도 했던 김씨 아제
도회지로 나가 노숙자가 되었다는 정씨 아제
저수지에 빠져 죽은 박씨네
잡풀만 우거진 뜰방에도 기웃거리고 싶었을겨
쌀농사론 품삯도 안나온다고
농협빚 끌어다가 하우스 농사짓고 소 키우더니
아이엠에프 때 농약 묵고 잣빠져서
봉긋이 멧등으로 솟은
동갑내기 친구와 대작도 하고 싶었을겨
“밥을 빼앗기면 하늘을 빼앗긴 겨”
“목구멍이 포도청인디, 쌀이 목숨줄이재”
울아부지 그러셨지라
보릿고개 못다 넘어 허기진 배 움켜쥐던 손으로
차마 배를 가르고
당신의 목숨줄 끊어
민족의 목숨줄
지키고 싶으셨지라
흘러 내리는 창자
밥알 채 삭히지 않은 밥줄 끌어 안고
조국의 하늘 지키고 싶으셨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