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 생원 갈벌 배공 묘갈명 서문을 아울러 붙이다成均生員葛筏裵公墓碣銘 幷序
옛날에 괴담(槐潭) 선생이 유록(呦鹿)에서 강학할 때, 당내(堂內)에 훈도되어 덕을 이룬 이가 많았으니 성균 생원 갈벌(葛筏) 공이 그 전열(前列)이다.
공의 휘는 상익(相益), 자는 익지(翼之)이다. 배씨(裵氏)는 본관이 흥해(興海)이니, 고려 말 절의를 지킨 신하 백죽당(栢竹堂) 휘 상지(尙志)의 후손이다. 이때부터 높은 벼슬이 서로 이어졌으니, 휘 삼근(三近)에 이르러서는 호가 유산(儒山)이고 정릉(靖陵) 참봉을 지냈으니 맏형 임연(臨淵) 선생을 따라 함께 퇴계 문하에 종유하였다. 이분이 휘 인길(寅吉)을 낳았으니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켜 전사하였고, 부인 이씨(李氏)가 순절하여 나라에서 쌍절려(雙節閭)를 내려 표창하도록 명하였으니 공에게는 6대조가 된다. 고조는 흥직(興稷)이니 부호군 증 호조 참판이다. 증조는 응벽(應璧)이니 수직으로 동지중추부사이다. 조부는 행식(行式)이니 사복시 정(司僕寺正)에 증직 되었다. 부친은 기(綺)이니 통덕랑이다. 모친은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니 부친은 동지중추부사 세식(世栻)이다.
공은 영조 을유년(1765)에 녹동리(鹿洞里)에서 태어났으니 영민하며 재주와 뜻이 있었다. 부로들이 서당을 세워 자제들로 하여금 학업을 익히도록 하였는데, 공은 괴담옹보다 다섯 살 적었지만 이미 어릴 때부터 일찍이 그를 스승으로 섬겨 종제 송려(松廬) 공과 서로 힘써 공부하며 아침저녁으로 강학하는 자리에서 어려운 것을 묻고 늘 가슴에 새겨 잃어버리지 않아 죽을 때까지 귀의할 곳으로 여겼다. 기유년(1789, 정조13) 여름에 문득 스승을 잃은 슬픔을 겪었을 때, 가마(加麻)하여 사일(事一)의 정성을 다했으며, 유문을 수습하여 깨끗이 베껴 책으로 만들고 후에 간행하였다.
기미년(1799, 정조23)에 선친의 상을 당해서는 장례의 모든 절차를 정성스럽고 삼가서 유감이 없게 하였다. 갑자년(1804, 순조4)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부모를 영화롭게 하는 데 미치지 못한 것을 몹시 한탄하여 마침내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초야에서 한가로이 수양하며 선조의 아름다움을 계승하고 후인을 인도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정축년(1817, 순조17)에 의사공(義士公) 및 열부 이씨(李氏)의 일을 아뢰어 아울러 정문(旌門)을 세우는 은전을 함께 입어 마을 앞에 쌍절려(雙節閭)를 세웠으며, 고유문을 짓고 사림을 크게 모아 예를 이루었다. 이보다 앞서 꿈에 의사공이 찾아와 하실 말씀이 있는 듯했는데, 공이 이에 잠에서 깨어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즉시 문중의 의논을 수합하여 상경하여 대궐에 호소하자 곧 은혜로운 조서가 내려왔으니 실로 공의 지극한 정성이 하늘에 이른 것이다.
공은 저술을 좋아하지 않았고 약간의 유고 또한 흩어졌는데, 〈사서의의문목(四書疑義問目)〉이 《괴담집》에 실려 있어 공의 조예가 얼마나 깊은 지 볼 수 있다.
병술년(1826, 순조26) 12월 23일에 세상을 마치니 향년 62세였다. 마장리(麻場里) 앞산 사좌(巳坐)에 안장하였다.
배위는 의인(宜人) 반남 박씨(潘南朴氏)이니 시대(是大)의 따님이고, 소고(嘯皐) 선생의 후손이다.
2남 5녀를 두었으니 아들은 현구(顯九)·현상(顯祥)이고, 딸은 황승한(黃昇漢)·이우순(李友淳)·전시휴(全是休)·남유일(南有馹)·박제행(朴齊杏)의 처이다. 현구의 아들은 유주(逌周)·석주(錫周)이고, 딸은 이기호(李基鎬)의 처이다. 현상의 아들은 규주(圭周)이다.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명(銘)을 붙인다.
괴옹의 서당에서 도를 듣고 聞道乎槐塾
성균관에서 명성을 날렸네 颺聲乎芹宮
오직 안을 중시하고 밖을 경시하여 惟其重內而輕外
초야에서의 일은 林下事業
실로 선조의 공렬 드러내고 스승의 가르침 익히고 가풍을 계승함에 있었네 亶在於闡祖烈講師訓述家風
나의 명이 실상에 넘치지 않으니 我銘不溢
무궁한 후세에 고하네 詔後無窮
괴담(槐潭) 선생 : 배상열(裵相說, 1760∼1789)을 말한다. 자는 군필(君弼), 호는 괴담(槐潭), 본관은 흥해(興海)이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의 문인이다. 천문·지리·역학에 정통하여 많은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으나 30세로 요절하였다. 저서로는 《괴담집》, 《사서의의(四書疑義)》, 《성리찬요(性理簒要)》 등이 있다.
송려(松廬) 공 : 배상협(裵相協, 1766∼1810)을 말한다. 자는 군섭(君燮), 호는 송려(松廬), 본관은 흥해(興海)이다. 경상북도 봉화에서 살았다. 저서로는 《송려집》이 있다.
가마(加麻) : 문인이 스승의 상이나 또는 후배가 존경하는 선배의 상에 심상(心喪)의 표시로, 머리에 수질(首絰)을 쓰는 것을 말한다. 수질은 짚에 삼 껍질을 감은 둥근 테를 말한다.
사일(事一)의 정성 : 부모, 스승, 임금을 한결같이 섬기는 정성을 말한다.
소고(嘯皐) 선생 : 박승임(朴承任, 1517∼1586)을 말한다. 자는 중보(重甫), 호는 소고(嘯皐),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별호는 서고(西皐)이다. 퇴계의 문인이다. 1540년(중종35)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풍기 군수, 진주 목사, 황해도 관찰사, 경주 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소고집》이 있다.
白渚文集(下), 배동환 저, 김홍영, 남계순 역, 학민문화사(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