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必死則生 必生則死
一夫當逕 足懼千夫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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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년丁酉年 1597. 명량해전 전날과 당일의 이순신 장군의 일기
☣ 9월 15일계묘 맑음. 조수(潮水)를 타고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벽파정 뒤에 명량(鳴梁)이 있는데 수가 적은 수군으로써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逕 足懼千夫.]’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 이날 밤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가르쳐 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하였다.
☣ 9월 16일갑진 맑음. 이른 아침에 별망군(別望軍)이 와서 보고하기를, “적선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명량(鳴梁)을 거쳐 곧장 진지(陣地)를 향해 온다.”고 했다. 곧바로 여러 배에 명령하여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니, 적선1백 30여척이 우리의 배들을 에워쌌다. 여러 장수들은 스스로 적은 군사로 많은 적과 싸우는 형세임을 알고 회피할 꾀만 내고 있었다. 우수사 김억추(金億秋)가 탄 배는 이미 2마장(馬場) 밖에 있었다. 나는 노를 급히 저어 돌진하며 지자(地字), 현자(玄字) 등의 각종 총통을 마구 쏘아대니, 탄환이 나가는 것이 바람과 우레처럼 맹렬하였다. 군관들은 배위에 빽빽이 들어서서 화살을 빗발치듯 어지러이 쏘아대니, 적의 무리가 저항하지 못하고 나왔다 물러갔다 했다. 그러나 적에게 몇 겹으로 둘러 싸여 형세가 장차 어찌 될지 헤아릴 수 없으니, 온 배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이 질려있었다. 나는 부드럽게 타이르기를, “적선이 비록 많다 해도 우리 배를 바로 침범하지 못할것이니 조금도 마음 흔들이지 말고 더욱 심력을 다해서 적을 쏘아라.”고 하였다. 여러 장수의 배를 돌아보니 먼 바다로 물러가 있고, 배를 돌려 군령을 내리려하니 적들이 물러간 것을 틈타 더 대들 것 같아서 나가지도 못하고 물 러나지도 못할 형편이었다. 호각을 불게하고 중군에게 명령하는 깃발을 세우고 또 초요기(招搖旗)를 세웠더니, 중군장(中軍將)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츰 내 배에 가까이 왔는데, 거제 현령 안위(安衛)의 배가 먼저 이르렀다. 나는 배 위에 서서 직접 안위(安衛)를 부르며 말하기를, “안위(安衛)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고 말하였다. 그러자 안위(安衛)도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했다. 또 김응함(金應諴)을 불러서 말하기를, “너는 중군장이 되어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하고 싶지만 적의 형세가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功)을 세우게 해주마.”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두 배가 먼저 교전하고 있을 때 적장이 탄 배가 그 휘하(麾下)의 배 2척에 지령하니, 한꺼번에 안위(安衛)의 배에 개미처럼 달라붙어서 기어가며 다투어 올라갔다. 이에 안위(安衛)와 그 배에 탄 군사들이 각기 죽을힘을 다해서 혹 몽둥이를 들거나 혹 긴 창을 잡거나 혹 수마석(水磨石,반들거린 돌) 덩어리로 무수히 난격하였다. 배 위의 군사들이 거의 기운이 다하자, 나는 뱃머리를 돌려 곧장 쳐들어가서 빗발치듯 마구 쏘아댔다. 적선 3척이 거의 뒤집혔을 때 녹도 만호 송여종, 평산포 대장 정응두(丁應斗 )의 배가 잇달아 와서 협력하여 적을 쏘아 죽이니 한놈도 살아남지 못했다. 항복한 왜인 준사(俊沙)는 안골에 있는 적진에서 투항해온 자인데, 내 배 위에 있다가 바다를 굽어보며 말하기를, “무늬 놓은 붉은 비단옷 입은 자가 바로 안골진에 있던 적장 마다시(馬多時)입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무상(無上) 김돌손(金乭孫)을 시켜 갈구리로 낚아 뱃머리에 올리게 하니, 준사(俊沙)가 날뛰면서 “이 자가 마다시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바로 시체를 토막내라고 명령하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우리의 여러 배들은 적이 침범하지 못할 것은 알고 일시에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나아가 각기 지자(地字), 현자(玄字) 총통을 쏘아대어 적선 31척을 쳐부수자 적선들은 후퇴하여서 다시는 가까이 오지 못했다. 우리의수군이 싸움하던 바다에 정박하고 싶었지만 물살이 매우 험하고 바람도 역풍으로 불며 형세 또한 외롭고 위태로워 당사도(唐笥島)로 옮겨 정박하고 밤을 지냈다. 이번 일은 실로 천행(天幸)이었다.
노승석 옮김 <난중일기亂中日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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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협의 울돌목은 조류가 정말 거세다.
식당 사장은 썰물 때 더 거세다고 하였다.
일본수군이 133척을 이끌고 침입할 때,
이순신 장군이 12척으로 격퇴하고 나서 천행(天幸)이라고 하였다.
원균의 패전으로 남은 12척과 사기 떨어진 수군을 이끌고 승전한 현장이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가 되어 승리한 해전 현장에서 숙연해졌다.
전남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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