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관(grammateus)
Ⅰ. 개관
'율법학자'라는 전문적인 계층으로서의 서기관이 등장하게 된 것은 바벨론 유배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율법이 모든 유대인들의 생활에 있어서 중심이 된 때가 바로 유배 기였으며, 유배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연구에 몰두하던 때도 바로 이때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당시에 있던 초기의 서기관들은 좁은 의미에서의 율법학자는 아니었다(후기에 그들이 이렇게 되었음). 그들은 지혜의 사람들이었고, 잠언과 집회서와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정의의 사람들이었다(단 11.33, 35, 12.3; 참조, 집회서 38.24 이하). 뿐만 아니라 유배기 이후의 율법학자들은 구약성서를 선별하여 확정한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종교적인 편지들과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문헌들을 수집하고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번역하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성서 본문이 지닌 순수성을 보존시켰고, 사본을 만들었으며 편집하는 역할을 했다.
셀류커스 지배자들을 제외한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정복자들은 유대인들에게 항상 종교적 자유를 허용하였다. 따라서 바벨론 포로기 동안, 또 포로기 이후 제사장 계열(이들 중에 제한된 무리들, 즉 공식적으로 합법적인 아론계의 후손들)의 영향력은 점차 더 커져갔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정결규정 체계"를 부과하는 것과 예언자적인 전통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도록 다듬는 일에 성공하였다. 성전이 이스라엘의 중심이 되었던 것처럼, 점차 대제사장은 유대인들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점차로 제사장들의 지배권은 제한되어 갔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헤롯대왕 시대 이후 로마가 대제사장을 마음대로 파면시키거나 임명하는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새로운 계열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기관들, 랍비들, 율법 교사들이었다. 포로기 때에 성서를 해석하고 번역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나타나기 시작한 서기관들(느헤미야 8장)은 이제 진정한 전문가로 발전되어갔다. 그들은 법률가와 도덕선생으로서 율법을 해석하였고, 그렇게 해석된 율법을 실천하는 데 앞장섰다. 그들은 학교를 세우고 제자들과 함께 살았다. 바로 이 서기관들은 회당에서 제의를 인도하였다.
그들 중에는 제사장 출신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수공업과 구제금으로 생활을 꾸려나갔다. 설사 그들의 기능 때문에 지배계열과 연결되어 있었을지라도, 서기관들은 빈번하게 지배계열과 이념적으로 충돌하였다(Michel Clevenot).
Ⅱ. 공관복음서의 서기관(grammateus)
서기관이라는 이 용어는 신약성서에서 62회가 사용되는 데, 공관복음서에서 57회, 사도행전에서 4회, 서신에서 1회 사용된다. 70인역 이사야 33장 18절을 인용한 고린도 전서 1장 20절뿐만 아니라, 크리스천 서기관을 지칭하는 마태복음 13장 52절(23.34 등)과 높은 (이방의) 관직에 해당되는 측면에서 서기관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사도행전 19장 35절을 예외로 하고, 다른 모든 텍스트들은 유대교의 '서기관들'(teachers of the law)을 말한다. 마가복음 14장 이하의 수난 단락에서, 서기관들은 정규적으로 대제사장들 그리고/ 또는 장로들과 모였고, 그들은 산헤드린의 멤버들로 이해되었다(참조. 행 4.5; 6.12). 반면에 수난단락 외에는 이 연합이 두드러지지 않는다(참조. 행 23.9). 특히 각 복음서마다 예수께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논쟁하는 사람들을 규정할 때 서로 다른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이 두드러진다. 마가복음에서는 대제사장들이 현저하게 나타나지만(약 22회),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는 바리새인들이 지배적으로 등장한다(각각 27회와 29회). 한편, 마가복음에서는 서기관들이 바리새인들보다 보다 빈번하게 나타나는 반면에(21회; 12회), 마태(22회; 29회)와 누가(14회; 27회)에서는 그와 역으로 사용된다.
마가복음 2장 16절에서 hoi grammateis t n parisai n(the Scribes of the Pharisees/ 바리새인들의 서기관들)이라는 구문은 상대적으로 신뢰할만한 것으로 보인다(참조, 행 23.9). 왜냐하면, 여기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간에 역사적으로 정확한 차별이 유지되고 비 바리새파 서기관들의 존재가 상정되기 때문이다(사두개파 서기관들에 대해서는, Josephus Ant. xviii.16; 에세네파의 서기관들에 대해서는, 1QS3.13; 9.12,21; CD 12.21; 젤롯파 서기관들에 대해서는, Josephus B.J. ii.433을 보라).
다른 텍스트들(코이네와 다른 것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읽는다)과 마가복음 2장 16절에 의존한 텍스트들(눅 5.30-"바리새인들과 그들의 서기관들"; 마 9.11-"바리새인들")은 마가복음 2장 1절-3장 6절에 등장하는 예수의 청중의 주된 멤버들로서 서기관들을 언급하기 시작한 하나의 발전을 시사한다(2.6 참조). 발전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호환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예수와 논쟁하던 개별적인 서기관 교사들(참조. 막 2.6, 16; 3.22; 9.11; 12.28, 32, 35)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바리새적 랍비 유대교의 대표자들로서 등장한다(참조, 3.22와 마 12.24; 막 12.28과 마 22.34f.; 막 12.35과 마 22.41). 이처럼, 마지막 복음서인 요한복음서는 grammateis 대신에 오직 parisaioi=ioudaioi 로서만 언급한다(참조, 특히, 요 1.19와 24; 8장 13과 22; 9.13-16과 18; 두 번째 파트인 7.53-8.11에서 발견된 8.3은 예외). 복음서 저자들은 반(反) 바리새적이고 반(反) 유대교적인 인식에 기초하여 서기관들을 묘사한다. 마가의 경우, 수난단락에서 예수의 죽음에 대한 유대교의 죄악을 폭로하고 산헤드린을 묘사하기 위해서 서기관들을 소개한다(G.Baumbach, EDNT Vol.1). Ⅲ. 서기관 직무의 역사와 역할 그리고 중요성
예수 시대의 서기관들의 특성과 의미를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유대의 자료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기관들의 모델은 에스라(대략 주전 450년경)였다. 에스라는 에스라 7장 6절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주신 모세의 율법에 능숙한 한 서기관"으로 소개된다. 최초로 율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제사장직을 수행하는, 서기관들의 목록은 그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헬라시대에 율법의 교사들로서의 그들의 중요성은, 대체적으로 헬라화 되었던 대제사장직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증가되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현재와 연관 짓는 방식으로 그것의 강론들을 만드는 성경해석가들(exegetes)이었다. 또한 그들은 해석의 방법들을 가지고 가능하면 많은 수의 학생들을 준비시키고자 애쓰는 교사들(teachers)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법정의 판사와 같이, 실제적인 상황 내에서 율법을 집행하는 법학자들(jurists)이었다(cf. Sir 38.24-30). 그들은 주후 1세기 이후 존재했던, 소년들을 위한 회당들과 학교들에서 그들의 가르치는 행위를 통하여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주후 1세기에 회당들의 중요성이 증가하게 됨에 따라, 서기관들은 "랍비"라는 칭호가 시사 하듯이 보다 더 큰 권력과 명성을 얻었다. 대부분의 서기관들은, 창세기 1장 28절의 창조와 관련된 명령에 대한 준수로서, 결혼을 하였다. 그들은 가르침에 대한 어떠한 품삯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근육노동(수공업 등)에 참여하였다 (G. Baumbach, EDNT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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