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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로 만든 목걸이, 쪽파로 만든 가발, 고춧가루 립스틱, 참기름 스타킹 등 이색 재료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며 ‘미의 기준’을 실험해온 데비한의 개인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짝퉁’ 비너스 조각으로 연출한 ‘미의 조건’(2004)을 비롯해, 성형수술한 비너스를 컴퓨터그래픽으로 합성한 ‘적자생존’ 연작(2006), 노인정의 할머니들을 캐스팅해 촬영한 ‘미인’ 연작(2006) 등 기존 작품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데비한의 작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005년의 ‘식(食)과 색(色)’ 연작들이다. 이 연작사진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한 가지씩 비밀을 감추고 있다. 예컨대 우아한 상아 목걸이를 걸친 듯한 여인의 목에는, 반으로 쪼갠 마늘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붉은 펄 립스틱을 칠한 듯한 여인의 입술에 고춧가루가 곱게 발라져 있는가 하면, 초록빛으로 염색된 삐쭉빼쭉한 가발은 쪽파를 철사로 엮어 만든 것이다. 모두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자극적인 양념 재료라는 점이 독특하다.
데비한은 사람들이 미인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먼저 반응하는지, 혹은 재료의 본질을 파악하고 경악하는지를 유심히 관찰한다. 작가는 이런 재료 실험을 1999년 개최한 개인전에서 이미 선보인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길가에 버려진 개똥을 반죽해서 먹음직스러운 초콜릿을 만들고, 미용실에 버려진 다양한 인종의 머리카락들을 주워 달콤해 보이는 막대사탕을 만들었죠. 이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사람들이 무엇에 먼저 주목할까’ 궁금했어요.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먼저 반응하다가도, 재료가 무엇인지 알면 놀라워했어요. 그러면서도 다시 외면적인 부분에 집착했죠.” 그는 가치 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대상물이 아름답게, 혹은 먹음직스러운 것으로 보이거나, 혐오스러운 것으로 비칠 수도 있음에 주목한다. 비너스 조각상을 변형한 일련의 미인 조각과 그림 역시 이러한 ‘미의 기준’에 따라 대상이 달리 보이는 현상을 다뤘다. 재미교포 1.5세대인 데비한은 서구적 미의 기준이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현실에 대해 가벼운 비틀기를 시도한다. 2004년 발표한 ‘미의 조건’ 연작은 그 대표적인 예다. 고대 그리스 조각 중에서도 이상화된 미인의 전형인 비너스 상을 이용해, 획일적인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현실을 풍자한 것.
언뜻 보기엔 똑같은 비너스처럼 보이지만, 데비한이 청자로 다시 빚어낸 이 조각들은 교묘히 변조된 ‘짝퉁 비너스’들이다. 매부리코, 두툼한 입술, 가느다란 눈, 납작한 이마 등 다인종 여성의 특성을 지닌 이 ‘짝퉁’들은 원본을 모방하는 대신, 고유의 개성을 빛내며 당당히 서 있다. 미에 대한 고정관념을 살짝 비틀되, 무겁지 않게 접근하는 신세대 작가 특유의 발랄함이 담겨 있다. “서양에서는 신비한 매력을 지녔다는 이유로 청자가 귀한 대접을 받지만, 정작 고려청자를 탄생시킨 한국에서는 고리타분한 골동품 정도로 취급되죠. 청자의 매력을 전하고 싶은 생각에 이천 도예지를 직접 방문해, 청자토로 비너스의 얼굴을 일일이 다시 빚어 가며 만든 작품들입니다.”
이밖에도 서구적인 미를 대표하는 비너스의 조각상 얼굴에 펑퍼짐한 한국 여성의 몸을 결합한 사진 연작 ‘일상의 비너스’(2006)나, 자신의 아름다움에 만족하지 못해 성형수술을 감행한 비너스로 성형중독 여성들을 풍자한 ‘적자생존’(2006) 연작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노인정에 모인 평범한 할머니를 촬영한 ‘미인’ 연작에서는, 연륜이 담긴 주름진 노파의 얼굴을 새로운 아름다움의 전형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유쾌한 재료실험 속에 아름다움의 의미를 추구한 데비한의 개인전은 소격동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에서 5월 31일까지 열린다. 관람 문의는 02-720-5789. |
첫댓글 이 작품을 목에 걸고 다니거나 머리에 쓰고 다니면 감기가 뚝 떨어 질것 같아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