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리 요양병원
몰락한 천석꾼 맏딸 ‘눈이 큰 소녀’ 스토리이다 28년생, 신작로 최초로 올리브 머리 올리고 자전거에 도전했다 학예회 무용 발표로 우쭐댔으나 달리기만큼은 번번이 꼴찌여서 운동회가 두려웠단다 군청 서기로 자리 잡으며 서울행 신여성 꿈을 꾸었으나
꽃가마 타고 생강밭 넘자마자 변신된 ‘여자의 일생’
정오의 햇살 쏟아지면 밭두렁 호미날 던지고 부엌행 종횡무진 뛰는 팔자가 되었다 부지깽이로 자동 살균된 구정물 돼지울깐에 부으면 검은 똥 싸던 토종 돼지들 햇살 받아 포동포동 식솔들 등록금 되면서
아버지의 발바닥 닦던 스크린도 아슴아슴 아프다 노동을 끝낸 지아비 마루턱 걸터앉아 석간신문 넘기며 석양 품는데 여자는 토방에 쪼그린 채 뽀드득뽀드득 손품 파는 것이다 발바닥 더께도 과도로 벅벅 떼어내면서
미망인이 된 구십 세
삼길포 횟집에서 생애 처음 우럭회 흰 살점 넙죽넙죽 드셔서 화들짝 기절하는 줄 알았다 굽은 등 서걱이며 피자에도 도전하며 유월 어디쯤 제주도행 카드를 만지작만지작 망설이던 효자손 계획표, 이제 종이비행기 되었다
꾀죄죄 스타일 힘들어하시던 깔끔쟁이 노파, 이순(耳順) 넘은 아들 복장 꼬치꼬치 검색하셨다 머리를 깎으면 바지가 걸렸고 바지를 다리면 이제 신발이다 그미의 낡은 둥지 방문할 때마다 자기 검열 짯짯이 마친 후 의기양양 현관문 열었는데 어럽쇼, 구두코 진흙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다
아들은 착했으나 머리카락이 헝클어졌고 주기적인 고주망태였다 밭고랑에 쓰러졌다가 사랑방에서 깨어난 젊은 날, 발가벗겨진 몸 물수건으로 연신 닦는 풍경에 벌떡 일어난 울울청년 소리 지른 스크린을 종시 반성한다 이제 흠 잡힐 염려 없어졌다, 며 초로의 안심 독백 풍경이라니, 시헐시헐
수유리 등나무 면회실 평상에서 햇살 쬐는 모친
먹머루 해맑은 눈빛은 어디에 두고 실낱같은 시계추 헤아리는 중일까 지상의 모든 언어 죄다 놓치고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는데 초로의 아들 남방 단추 채우기 위해 한쪽 팔 들어 하염없이 움직인다 아, 청량한 초가을 햇살 우수수 쏟아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