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玩月長醉) 하려뇨. -이정보
이 작품은 조선 후기의 문인인 이정보가 지은 것이다. 꽃이 피면 달이 떠오르기를 생각하고, 그 달이 밝으면 술이 생각난다는 초장의 내용은 풍류를 즐기는 그의 취향이 잘 드러난다. 꽃이 핀 것만도 좋은데, 여기에 밝은 달이 있으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밤이 되어 때마침 달이 떠오르면, 또 그 분위기에 맞는 술로 흥을 돋울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꽃과 달은 자연물로서 선택한 대상이며, 그 분위기를 맞춰 술을 청하는 것은 사람의 의지일 터이다. 이 작품의 초장에 등장하는 꽃/달/술은 모두 옛 문인들이 즐기는 풍류에서 빠져서는 안 될 대상이었다. 여기에 그 분위기에 적합한 음악이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인 것이다.
그러나 꽃과 달 그리고 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 한편에는 무언가 부족한 듯이 느껴진다. 그것은 이처럼 멋들어진 분위기를 함께 할 수 있는 벗이 빠졌기 때문이다. 비록 앞의 세 가지가 겸비되어 있더라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가 없다면, 그 즐거움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저 세상사를 훌훌 털어 버리고, 마음에 맞는 벗이 있어 함께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자신의 옆에는 흥취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벗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서 꽃 아래서 벗과 함께 달을 완상(玩賞)하며, 함께 술잔을 기울일 날을 기약하는 것으로 종결된다. 종장의 ‘완월장취(玩月長醉)’라는 표현은 ‘달을 완상하며 오랫동안 술에 취한다’는 의미이다.
꽃이 핀 환한 달밤에 벗과 같이 마음껏 술을 마시고 취하며 회포를 풀어보고자 했으니, 이는 세상의 번잡한 일을 잠시나마 물리치고 싶다는 희망인 것이다. 지기지우(知己之友)와 더불어 마음을 터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 즐기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어쩌면 그러한 시간은 그저 희망으로만 남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초장과 중장에 세 번이나 거듭되는 ‘생각한다’는 표현은, 작품 속의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 희망 사항임을 잘 드러낸다. 따라서 이 작품은 자연 속에서의 취흥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벗과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표출하고 있다.
(김용찬,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한티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