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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즐겨 읽는 시’를 뽑아서, 각 작품에 대한 저자의 간단한 소감을 덧붙인 형식의 책이다. 아마도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는 듯, ‘삶’과 ‘사랑’이라는 주제의 시들은 다른 시인들의 기준으로 선정한 시를 수록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책의 겉면을 두르고 있는 따지에는 “한 편의 시가 당신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것이다.”라는 거창한 문장이 보이지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겠다. 문학을 전공하면서 아직도 시를 읽고 글을 쓰는 나로서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강의실에서 시를 강의하다 보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학생들의 반응은 ‘시가 어렵다’라는 것이다. 기존의 학교 수업에서 문학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나올 수 있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여겨진다. 대체로 학교 교육에서 시험을 보기 위한 수단으로 시를 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시를 읽는 방법에는 왕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느끼고 이해하는 것을 전제로 자유롭게 해석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 역시 저자인 문태준 시인의 관점에서 시를 선정하고, 그에 대한 느낌을 간략하게 수록하고 있다. 독자들 역시 그러한 시인의 감상에 동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머리말에 해당하는 ‘시인의 말’에서 자신이 ‘매일매일 시를 읽’고 있으며, ‘시를 쓰는 일 못지않게 시를 소개하는 일을 계속 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자신이 ‘아껴가며 읽은 좋은 시를 함께 나’누기 위해 이 책에 수록된 시들을 엮었고, ‘이 시들이 해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나로서는 어떤 해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닌, 좋아하는 시인이 선정한 시들을 가볍게 훑어볼 심산으로 작품들과 시인의 덧붙인 설명들을 읽어 보았다.
전체 5항목으로 구분된 목차에서, 첫 번째는 ‘침묵이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더 빛내듯’이라는 제목으로 김영재의 ‘마음’이란 시를 포함하여 15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정호승의 ‘운주사에서’나 신경림의 ‘별’ 등이 포함되어 있어, 때로는 나와 취향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이 들어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하늘에 별이 보이니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가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논 밝아 보이지 얺던 별이 보인다
(신경림의 ‘별’ 전문)
시인은 이 시를 일컬어 ‘육안(肉眼)은 닫히지만 심안(心眼)이 열린다는 뜻’으로 풀이하면서, 세상은 비록 ‘탁한 하늘’이지만 그 내부 깊숙한 곳에서 ‘별’을 발견할 수 있는 예지가 생겨나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이제 9순을 바라보는 나이의 노 시인의 혜안(慧眼)이 절로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잇을 것이다.
‘모든 순서가 되었습니다, 당신’이라는 제목의 두 번째 항목에서는 나태주의 ‘풀꽃 1’을 비롯하여 모두 19수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3부에서는 ‘오해로 올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는 제목으로 최승자의 ‘살았능가 살았능가’를 포함한 15수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의 구절을 그대로 차용한 4부의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에서도 모두 16수의 작품과 함께 시인의 간략한 해설이 첨부되어 있다. 마지막 5부의 ‘밤하늘처럼 초롱초롱 추억의 문장이 빛난다’라는 항목에서는 구상의 ‘한 알의 사과 속에는’을 비롯한 19수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이렇듯 모두 84수의 시를 다섯 항목으로 나누어 수록하고, 시인의 생각을 덧붙이고 있다.
해설이 필요치 않은 이들은 그저 시만을 읽는 것으로도 족할 것이다. 시인이 나름의 기준으로 시를 구분하여 수록했지만, 독자는 자신의 관점에서 시를 읽고 감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현대시 선집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저자를 마주보고 술 한 잔 나누듯이 즐겼던 시간이었다. 책의 끝 부분에는 수록된 시들의 출전이 밝혀져 있기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해당 시인의 시집을 구해서 읽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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