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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이자 시인인 저자가 서울의 풍경을 자신의 경험과 옛 문헌 혹은 문학작품에 반영된 모습을 통해서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책의 부제는 '건축하는 시인의 시(市) 이야기'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서울에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 역시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상황을 목도하면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서울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을 것이다. 때로는 변하기 이전 서울의 모습을 소개하기도 하고, 간혹 변한 이후의 모습을 통해 과거의 그것과 비교하여 그 의미와 감회를 서술하기도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언제나 풍경은 자기 내부에 있다'고 전제하고, 서울의 곳곳의 풍경에 대해 다양한 '기억'들을 소개하고 있다. 건축가이자 시인인 저자는 때로는 건축가의 입장에서 거리와 건축에 대해서 논하고, 많은 경우 다양한 문인들의 문학 작품에 나타난 서울의 모습에 대해서 기억하고자 한다.
첫 번째 항목인 '오늘도 서울에서는'이라는 제목 아래 서울의 '마포'와 '왕십리', '종각에서 동대문까지'의 종로거리와 '중구' 등 이른바 강복 지역들을 중심으로 저자 자신과 다양한 이들의 기록을 통해서 그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간혹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고지도를 대할 때면,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서울 도성의 모습을 접하게 된다. 이용유 시인의 시를 통해서 까마득한 시절의 마포의 풍경을 제시하고, 저자 자신이 겪었던 옛 기억을 거기에 겹쳐서 너무도 달라진 오늘의 마포 풍경과 비교하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약 10리(4Km) 거리에 있는 왕십리가 도선과 이성계의 도성 찾기에서 비롯된 지명이라는 것, 여기에 김소월과 김혜순 그리고 조선시대 문인인 택당 이식의 한시 작품을 제시하면서 왕십리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고 있다.
서울이 강남으로 확장되기 이전에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는 명동과 종로였다. 그래서 '종각에서 동대문까지' 거리를 훑으며 종로의 과거와 현재를 소개하고, 신동엽 시인의 <종로오가>라는 작품에 그려진 우연히 만난 시골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서 산업화의 과정에서 도시의 하층민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한다. 이처럼 저자에게 서울은 변해버린 현대의 모습보다 옛 기록과 저자 자신의 기억을 통해서 반추되는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미 서울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나 역시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서울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자본만이 풍경이 되어'라는 두번째 항목에서는 창신동과 압구정, 대학로와 청계천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압구정'은 유일하게 서울 강남의 지명을 다루고 있다고 하겠는데, 그 이유는 저자의 경험이나 과거에 활동했던 다른 문인들의 경험 속에서 서울은 주로 한강 이북 지역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희대의 간신이라고 평가를 받는 조선시대 한명회의 정자인 압구정에서 유래했다는 압구정동은 온통 배밭이었던 곳이 강남의 개발 열풍과 더불어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행된 곳이다. 저자는 자신과 함께 어울렸던 시인 유하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시집에 등장하는 그 풍경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청계천 개발이라는 프로젝트가 사실은 환경이 아닌, 주변 개발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챙기기 위한 졸속 행정이었음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건축가의 입장에서 청계천 개발은 원래 흐르던 청계천을 지하에 매설하고, 그 위를 새롭게 복개하여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인공적으로 한강물을 퍼울려 흐르게 한 실패작이라고 단언한다.
'모두를 전생으로 만들다'라는 세번째 항목에서는 삼청동과 인왕산, 한강의 선유도와 전통이 사라진 전통의 거리 인사동의 풍경을 소개하고 있다. 나 역시 간혹 서울에 올라가서 지인들을 만날 때에 인사동에 들르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불과 30여년 전의 그것과 달라져서 이제는 옛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서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네번째 항목인 ‘때때로 많은 것을 허물었지만'에서는, 급격하게 변해가는 서울의 풍경에서 그래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종묘'와 '장충단', '충정로'와 '자하문로' 등의 고풍스러움 혹은 느리게 변하는 모습들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그 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라는 항목에서는, 저자의 서울살이를 토대로 자신이 거쳐왔던 장소들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처음 서울에서 살았던 '신촌'과 건축사무실을 처음 열고 출판사 동인들과 함께 어울렸던 '홍대', 새로 사무실을 옮겨 열었던 경복궁 옆의 '서촌'과 그 주변의 '효자로', 그리고 친일파 자손임을 알리며 재건축을 의뢰했던 남산 자락 필동의 '적산가옥'과 그곳의 새롭게 변한 모슴 등을 소개하고 있다.
나에게도 서울은 여전히 강북의 골목골목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서울에 올라갔을 때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걸어다녔던 적이 많았기에, 지금도 남산과 종로 그리고 신촌을 비롯한 강복 곳곳의 골목이 지금도 머릿속에 그려질 듯하다. 대학 다니던 시절 새벽까지 술을 먹고 잘 곳도 마땅치 않고 택시비도 없어서, 학교 앞에서 서소문의 집까지 술에 취해 몇 시간을 걸었던 기억이 지금도 떠오른다. 아마도 그러한 기억이 있기에, 저자의 이 책을 흥미롭고 또 가끔은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고 하겠다.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옛 모습은 앞으로도 계속 그 모습을 바뀌겠지만, 그래도 그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사라진 서울을 걷'는 저자처럼 옛 모습 또한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책을 읽으면서 익숙한 곳을 소개할 때엔, 나 역시 옛 추억을 떠올리며 그곳을 그려볼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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