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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듯이 <도덕경>은 노자의 사상을 담아낸 철학서로서, 동양문화에서 지식인들에게 그동안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책 증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유학을 신봉했던 조선시대 지식인들 역시 유가 경전과 함께 노자와 장자의 책을 읽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사회지향적인 유가철학에 대해서, 노자는 철저하게 자연을 중심으로 사유할 것을 강조했다. 그가 주장하고 있는 ‘무위(無爲)’라는 개념은 ‘인위적인 것’에 반대하면서, 그저 자연스럽게 환경에 녹아들어 살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 인위적인 것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의사로서, <도덕경>을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파악된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대한스트레스학회 명예회장’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래서 책의 부제도 ‘노장(老莊)이 알려주는 스트레스를 벗어나는 길’이라고 붙였을 것이다. <도덕경>의 내용이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이 그러한 의도를 충족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수긍할 수가 없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이 책의 기획 의도이다. <도덕경>의 해성을 겸한 해설서일까, 아니면 그 내용을 통해서 현대인의 삶에 하나의 활용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일까? 제목에서 내세우는 저자의 의도와 달리, 책의 편제나 내용은 도덕경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설서에 그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은 본문에서 <도덕경>의 원문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설과 함께 지침으로 삼을만한 내용들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한문으로 쓰여진 원문과 독음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도덕경>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겠으나, 한자에 익숙치 않은 일반 독자들은 원문의 내용에 대해서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여겨진다. 적어도 원문을 제시했으면, 그에 대한 해석은 반드시 수록해야만 한다. 그래서 저자가 그 원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이미 보유한 여러 권의 번역서가 있어서, 원문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고 싶은 경우 다른 책들을 활용했음을 밝히고 싶다. 나로서는 이 책의 서술 내용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또 하나는 원문을 제시하고 독음(讀音)을 달아놓았지만, 독음이 잘못 달려있는 경우가 너무 많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則’은 자전에서는 ‘법 칙’자로 나와 있지만, 한문 문장에서는 ‘곧 즉’으로 읽어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칙’이라는 독음이 달려 있다. 이밖에도 복수의 음가가 있는 ‘惡’도 ‘악, 나쁨’이라는 뜻일 때는 ‘악’으로 읽지만, ‘미워하다, 싫어하다’라는 뜻일 때는 ‘오’라고 읽어야만 한다. 이밖에도 독음이 달려있는 경우는 일일이 지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점이 도드라지게 발견되었다.(2쇄를 인쇄할 때는 교정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원문을 읽으면서 잘못된 독음 때문에, 내용에 집중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한 점은 과연 저자의 집필 의도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다. 일단 <도덕경>의 번역서로서도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현대인의 삶에 대한 지침으로서도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는 ‘글을 시작하기 전에’와 <도덕경>의 해설에 치중되어 있는 본문의 내용이 조화롭지 못하다고 여겼으며, 뒷부분에 있는 도가 사상과 제자백가에 대해서 소개한 ‘종장’도 다소 뜬금없게 느껴졌다. 오히려 이러한 내용들은 종장이 아닌 ‘부록’의 형식으로 붙이는 것이 필요했을 듯하다. 아마도 저자에게는 이 책을 읽어내는 일관적인 시각이 존재햇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그것이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90대의 원로가 생각하는 지식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가장 컸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렇다면 저자가 아닌, 편집자로서 기획 의도를 명확히 설정하고 그에 걸맞는 편제를 취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번역서로서도 특별한 면모가 발견되지 않으며, ‘스트레스 없이’ 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지침으로서의 역할도 충분치 못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실상 <도덕경>의 원문은 매우 추상적으로 기술되어 있어서, 이를 효과적으로 번역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저자의 번역이나 가장 보편적인 본문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고, 그 내용을 통해서 저자가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기술하게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때문에 제목에서 보이는 바의 의도가 이 책에 충분치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평가일 수밖에 없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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