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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박시백의 고려사> 시리즈를 읽으면서, 고려사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책꽂이에 방치되어 있던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고려의 건국에서부터 무신정권과 몽고의 침략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과 그 의미를 음미할 수 있었다. 고려사에 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읽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고려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조선시대의 역사는 왕의 시호나 정치적 사건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공부할 수밖에 없었지만, 고려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관심을 적게 기울였었다.
이 책은 후삼국시대의 혼란한 상황에서 고려를 건국하여 새로운 왕조를 연 태조 왕건으로부터 마지막 공양왕까지의 5백여년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이라고 하겠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처음에는 창대했으나, 그 말로는 비참하기 그지없었던 것이 바로 고려사의 흐름이라고 여겨진다. 조선의 건국을 합리화하기 위해 우왕과 창왕을 공민왕이 아닌 신돈의 자식이라는 주장을 내세워, 실록조차 편찬되지 못했다고 한다.
왕이 물러나면 재위하던 시절의 기록을 남기는데, 이것을 일컬어 ‘실록’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고려시대의 실록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제1대 태조실록’으로부터 정리하고 있다. 각 왕들이 즉위하기 이전의 활동과 주요 업적, 그리고 부인과 자식들을 비롯한 왕실의 계보는 물론 고려 주변의 정세와 당대의 세계사에 대해서도 간혹 밝히고 있다. 태조 왕건의 아들들로 혜종과 정종 그리고 광종이 즉위했고, 특히 광종 때에는 과거제도를 실시하여 새로운 관리 임용체제를 갖춘 것이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왕족이나 귀족들의 자제가 대를 이어 관직을 독점했지만, 과거제의 실시로 새로운 인물들이 관리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으며, 오늘날 공무원 임용시험의 전례로 여겨지고 있다고 하겟다.
제5대 왕으로 즉위한 경종은 광종의 아들이며, 때로는 자식 혹은 형제가 왕위를 이어받는 것이 관습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서경으로 천도하려는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자 ‘묘청의 난’(1135)이 발생하기도 했고, 문신 귀족들에게 무시를 당했던 무신들이 일으킨 ‘무신란’(1170)은 오늘날의 ‘군사쿠데타’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후 무신들의 농단으로 인해 왕실이 무력화되고, 끝내 몽고(원)의 침입으로 인해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왕들은 즉위하기 이전에 반드시 몽고에서 머물렀고, 몽고의 공주들과 결혼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지금도 강대국의 위세를 믿고 추종하는 이들이 있지만, 당시에도 몽고의 위세로 고려에서 떵덩거리며 사는 ‘친원 세력’들이 설치기도 했다.
몽고의 힘이 약해지면서 공민왕은 신돈을 내세워 야심차게 개혁정책을 시도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좌절당하기도 했다. 공민왕 이후 우왕과 창왕을 거쳐, 조선 건국의 주도적인 세력들에 밀려 공양왕의 재위를 마지막으로 고려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왕조의 흐름에 따라 기술된 역사이기에 당시의 민중들의 삶에 대해서는 소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이러한 왕조의 흐름을 토대로 평범한 이들의 삶을 다룬 기록들을 보완하면서 것이 역사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자세라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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