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생략과 집중으로 선명하게 보여주기
편집부
삼촌이 멋져 보이던 날
한두이
고등학생 삼촌이랑 밭에 나가 돌을 골랐다.
몸 쓰는 일은 꾀부터 부리는 삼촌이 웬일로 열심이다.
옆에서 부지런 떠는 나 보기 부끄러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삼촌의 아빠 노릇하는 우리 아빠가 지켜봐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이 밭에 뿌려박고 홀로 서야 할 무씨가 안쓰러워 그런단다.
열린어린이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73쪽 |
삼촌은 지금 화자의 집에 같이 산다. 화자의 아빠가 삼촌의 아빠 노릇까지 하면서 말이다. 삼촌의 부모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 시로 미루어 보건대, 부모가 있든 없든 그 존재는 삼촌이 전혀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건 화자의 아빠밖에 없다. 그 사실이 중요하기에 작가는 삼촌이 어떤 연유를 가지고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과감하게 생략했다. 그런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놓게 되면 오히려 시의 시선이 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에서는 무씨를 안쓰러워하는 삼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요소만을 넣었다. 그게 바로 ‘고등학생’ 삼촌이라는 것과 ‘삼촌의 아빠 노릇을 하는 우리 아빠’와 ‘이 밭에 뿌리박고 홀로 서야 할 무씨’ ‘돌이 있는 밭’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배치하여 사용하였다.
고등학생은 아직 학생이기는 하지만, 곧 성인이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빠 없이, 아빠 ‘노릇’을 해주는 우리 아빠에게 자라고 있는 삼촌은 고등학생이 되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진짜 아빠가 아니기에 언제까지 신세를 지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성인이 되어 독립해서 살아가야 할 것을 걱정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런 마음이 있었기에 무씨를 ‘이 밭에 뿌리박고 홀로 서야 할’ 무씨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누구도 무를 심으면서 홀로 설 것을 생각하며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삼촌은 무를 심는 순간 자신의 처지가 그곳에 투영되었다. 독립해서 살아야 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다 무씨를 보니, 무씨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야 하는 상황을 자신과 비슷하게 여기게 된다. 그러니 무씨가 뿌리 내리는 걸 ‘뿌리 박고 홀로 서야’하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 무 하나를 심으면서 홀로서기를 생각하며 안쓰러워하는 삼촌의 모습은 무를 안쓰러워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처지를 안쓰러워하고 있는 마음으로 읽히게 된다. 그래서 읽는 우리도 마음이 짠해진다. 그리고 그 밭에 돌이 많다는 것도, 자신을 투영하는 데 한몫한다. 오늘 삼촌이 한 일은 무씨를 심는 게 아니라 무씨를 심을 땅에 돌을 고르는 일이었다. 땅의 돌을 고르는 일을 열심히 했다는 화자의 말을 보면 그 작업이 꽤 오래 한 것 같다. 즉, 무씨가 자라기에 비옥하고 좋은 땅이 아닌 돌이 많은 땅이었다. 자라는 데 장애가 될 돌이 많은 땅은 자신이 지금 자라고 있는 환경과 비슷하게 여기게 된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야 할 무씨가 그래서 삼촌은 더 안쓰럽다.
결국 이 시는 (아무리 화자의 아빠가 정성껏 돌봐주었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없어 이른 나이에 독립을 해야 하는 아이가 가지는 두려움과 걱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아이가 어떤 이유로 부모가 없는지, 어떤 연유로 부모가 아이의 방패가 되어주지 못하는지의 사정 이야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런 상황인 게 중요하다. 그래서 작가는 삼촌의 사정 이야기를 완전히 생략하고 오로지 지금의 상황만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다. 삼촌이 놓인 상황에서 삼촌이 느끼는 감정에 집중해서 보여준다.
삼촌이 처한 환경을 보면 삼촌이 느끼는 감정이 매우 불안하면서 슬프고 복잡할 것이다. 이런 복잡한 심리를 일일이 다 나열해서 보여주면 시가 통속적으로 흐르기 쉽다. 이때는 삼촌의 감정과 독자 사이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이것을 위해 작가는 어린 동생을 화자로 설정했다. 어린 동생 입장에서 유추 가능한 삼촌의 감정을 보여주어 독자가 삼촌의 여러 감정 중 안쓰럽게 여기는 감정에만 집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