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경사에 참여하여 느낀 감화
2월 18일 제자 장남 결혼식에 참석했다. 장소는 서울 양재동 엘타워 7층 그랜드 홀이었다.
제자는 우리나라 굴지의 해운회사 사장이다.
그 제자는 내가 1970년 어느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당시 6학년 담임을 했다. 졸업할 당시 학급 학생 수는 28명이었다. 출석 번호는 생년월일 순으로 붙였는데 남학생 번호 중에서 제일 늦은 14번이다. 15번부터는 여학생 번호다.
학교가 벽지지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생활환경이 열악했다.
나는 사택의 골방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근무를 했다.
교직 경력은 3년차였다.
그때 나의 나이는 스물 세 살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철부지 교사였다. 그래도 교사로서의 순수와 열정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교수 – 학습 지도력은 부족했을망정 가르치고자 하는 열정은 넘쳤다. 운동장을 함께 누비기도 했고, 냇가 물에도 함께 발을 담갔다.
1969년 까지는 중학교 입학을 할 때 시험을 쳤는데 1970년부터는 무시험 전형으로 바뀌었다. 자연히 교육과정을 여유 있게 운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인간관계의 래포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나와 은사 17회 제자들과는 오랜 세월 인연의 끈이 이어져 왔다.
졸업한 날 저녁에 나의 사택 골방에 28명 전원이 다 모여 뜬 눈으로 지샜다. 동네가 흩어져 있었고 거리도 먼데 모두가 모였었다. 졸업 후에도 오랜 시간을 두고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몇몇 남자 제자들은 나의 시골집을 찾아오기도 했다. 내가 삼천포에 근무할 때 남자 제자들이 나를 찾아와 자고 간 기억도 있다.
성인이 되고 난 이후 몇 차례 동기들이 모여 나를 초대하여 만찬을 하고 선물도 주었다.
지금까지도 스승의 날이 되면 화분을 보내준다. 그 과분함에 스스로 염치가 없음을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로부터 너무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이젠 그만 두어라 해도 소용이 없다.
내가 잊지 못하는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공교롭게도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 되셨다.
나의 진로를 여러 가지로 걱정을 해 주신 분이셨는데 그 후 부산교육대학교 교수로 근무하시다가 퇴직 후에 양산에 기거 하셨다. 내가 양산에 근무할 때 선생님을 자주 찾아뵈었다. 퇴직 후에도 내가 의미 있는 날이 되면 진주에서 양산으로 찾아가 뵈었는데 어느 날 선을 긋는 것이었다. 너는 그 정도면 제자로서의 성의를 다 했다. 너도 이젠 나이가 있다. 그 먼 곳에서 나를 찾아오면 오히려 내가 더 불편하다. 라고 하시면서 선을 그어 주셨다.
나도 어떻게 선을 그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사실 결혼식 참석도 내가 가면 누가될 것 같아 머뭇거려졌다.
그래도 가보고 싶은 생각이 강해 참석한 것이다.
나는 교직 생활 중 6학년 담임을 16회 정도 했다.
졸업생 중에서 은사 17회 졸업생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직종을 가지고 능력을 발휘하며 성공하고 존경받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싶었기에 참석할 생각을 한 것이다.
걱정이 되었던 부분은 제자들이 나를 만나면 자신들이 나이가 든 것을 잊어버리는 경향성을 보일까 그것이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적당한 시간만 같이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갔다.
결혼 주례사는 혼주인 제자가 직접 했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 본 주례사 중에서는 가장 의미 있는 주례사였다.
구사한 언어를 들어보니 제자가 살아가는 삶의 궤적을 읽을 수가 있었다. 가식 없는 그 말 몇 마디에는 리더로서 직원들과 협력업체를 어떻게 이끌고 상생하는 가를 유추할 수 있었고, 상사를 모시는 태도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낮춤으로서 사돈의 위치를 돋보이게 함이나 편지로서 아들과 며느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화객들에게는 요점만 전달 한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초등학교 친구들이나 중학교 동창생들이 그 먼 곳을 멀게 여기지 않고 찾아 온 것을 보면 동창들을 대해 온 처세도 알 수 있었다.
사람은 지위나 직위가 높아지면 교만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은 법인데 농촌에서 자랐던 그 순수함을 지금까지 견지하고 있기에 그것이 가능했으리라 본다.
참 인생사는 묘하다.
자신을 스스로 높이려는 자는 멸시의 대상이 되는 반면에 스스로를 낮추려는 자는 오히려 돋보이니 그것 또한 아이러니다.
아무튼 제자의 경사를 맞아 보고 싶었던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기쁨이며 행운이었다.
그리고 타임머신은 나를 53년 전으로 거슬러 올려놓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