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월16일은 시인 윤동주 님이 숨을 거둔 날입니다.
"거기서(일본에서) 병까지 더하여
1945년 2월 16일에 운명하니
그때 나이 스물 아홉"
김응교 교수의 글에 의하면 연변에 있는 윤동주 시인 묘비 뒷면에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합니다. 좀 이상한 구절이지요.
시인 윤동주가 "병"으로 죽은듯 써 있는 것은 아마도
인체실험으로 죽을 걸 그때까지 가족들은 몰랐던 게죠.
윤동주는 1945년2월16일 옥사하기까지, 만27년2개월
햇수로는 29년 생애의 20년 8개월을 연변에서 보냈지요.
만주→평양 숭실→용정→경성 연희전문→일본(릿쿄, 도지샤대학,후쿠오카 감옥)
→죽어서 만주로 돌아가는 그야말로 디아스포라였지요.
67년전 어제 2월16일에 돌아가신 시인 윤동주는
당시로서는 넉넉한 집에서 태어난 이민 4세였지요.
그 당시 동네의 다른 가난한 집에 비하면 가난한 아들이 아니지요.
그래서 그는 잘 사는 걸 늘 미안해했지요.
1886년 43세의 증조부, 12세의 조부가 북간도 자동(紫洞)으로 이주해요.
새로운 마을을 만들겠다며 1900년에 명동촌(明東村)에 이주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ㅡ윤동주「별 헤는 밤」중에서-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하늘 저 밑에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집"
-별이 된 윤동주 童詩「고향집」(1936.1.6)-
우리 독캠가족들은 지난 여름 시인 윤동주를 생각하며
연민을 품었습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빛은 영롱해야 하는 것.
그대...우리 닦고 닦아 우리 가슴팍에 새겨진
별빛이 반짝 거리게 합시다.
부산 기쁨의집 서가에서 기쁨지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