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아물 때까지
초등학교 다닐 때를 기억해 보면 이런저런 친구 관계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재밌고 즐거웠던 기억이 많다. 그때 갈등은 누구 한 명이 사과하면 끝나는 사소한 다툼이었다. 그런데 천.지.인은 달랐다. 분명 익숙한 공간과 사람이었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그때는 왜 그런지도 몰랐고 부술 생각도 없었다. 겉으로는 잘 지낸다고 했지만, 월요일이 되면 학교에 가는 게 조금 무서웠던 것 같다. 몸이 크게 힘들지 않아 나는 ‘적응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잘못 봤다.
나는 먼저 다가가는 걸 좋아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늘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 번은 같이 뭘 먹을 때 자진해서 설거지했다. “와~ 선민이 짱! 선민이 진짜 착하다. 고마워.” 이런 칭찬과 박수와 관심이 좋았다. 그런데 얼마 안 돼서 내가 해주는 게 당연한 게 되어버렸다. 내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너 원래 들어줬는데 왜 이젠 안 들어줘?”라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친구가 되고 싶어서 그런 건데, 나에게 돌아오는 건 또 다른 부탁밖에 없었다. 속상하고 화가 났다. 어떨 때는 친구 사이라기보다는 애들 장난감이라는 느낌이 더 들었다. 친구 되기에 실패하며 나는 더 깊고 깊숙하게 들어갔다.
깊숙하게 들어가서 만난 것은 ‘어린 시절 나’였다. 가족들과 같이 어디에 가면 동생은 꼭 ‘예쁘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나가고 싶었다. 나도 예쁘다는 말이 듣고 싶었고, 동생처럼 처음 보자마자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게 너무 서럽고 슬퍼서 엄마한테 나는 왜 예쁘다고 칭찬받을 수 없는 거냐고, 왜 나는 사람들이 예뻐하지 않냐면서 많이 울었다. 엄마는 그때마다 나도 예쁘다고 말했지만, 나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나는 뭐든 잘하고 싶었다. 칭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는 사랑받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이런 나는 사랑해 줄 거야’ 하고 진짜 나와 내가 만들어낸 나를 합쳤다. 화를 내지 않고, 부탁을 들어주고, 매일 웃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몸에 흡수되어 버려서 지금의 나는 만들어진 ‘나’ 밖에 없다. 이젠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나의 결핍은 지금도 내 곁
에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하려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사랑하는 나보다 남이 사랑하는 나를 더 좋아한다.
올해 나와 아주 큰 약속을 하나 했다. 참지 않기. 나는 참는 게 힘들어서 화를 내기로 했다. 그런데 나한테 더 큰 상처를 줬다. 아무 생각 없이 화를 내다보면 내가 나를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그럴 때마다 밖에 나가 혼자 앉아서 가라앉힌다. 그런 순간이면 어째서 나의 결점밖에 보이지 않는 걸까. 내가 채찍질하는 대상은 싸운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다 나 때문이야, 내가 화만 안 냈어도 애들이랑 싸울 일도 없었잖아. 애들은 이제 나를 싫어하겠지. 계속 이렇게 살아가면 세상에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거야’ 모든 건 내 잘못처럼 보였다. 내가 너무 싫어서 계속 눈물이 났다.
그걸 반복하면서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해서, 내 모습을 사랑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를 사랑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매 순간 나를 사랑하며 살기는 힘들었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그러다 용기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한 건 솔직하게 말하는 것. 매일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고 잘 지내냐고 물어봤을 때 속으로 고민했다. ‘그냥 예의상 인사일 뿐인데 잘 못 지낸다고 하면 안 되겠지’하고 웃으며 ‘당연히 잘 지내지!’ 하며 나를 속였다. 그러다 힘들다고, 외롭다고, 친구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나는 벽을 부쉈다. 그렇다고 학교가 마냥 편해진 건 아니지만 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조금씩 도움을 받아 새롭게 적응해 나갔다. 솔직함이 작은 희망이 되었다.
‘괜찮아, 완벽할 필요는 없어, 지금의 나도 충분해’라는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반복해서 말해 본다. 그런 외침이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요즘은 예전처럼 나와 타인을 비교하지 않는다. 내가 못 하는 건 도움을 받으면 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지금의 나는 상처가 만들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지만 다 아물어 새 살이 돋아난 상처들은 ‘다른 사람은 나와 똑같은 상처를 받지 않게 해줘야지.’라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누구라도 함께 어울려보자.’라는 마음도 생겼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 뿌듯하고 기쁘다. 그래서 좋아하고 즐거운 것을 잘하고 싶다. 여전히 상처 잘 받고, 툭하면 싸우고, 눈물 많고, 못하는 게 많은 나지만 이런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좋다.
첫댓글 나도 그런 선민이가 참 좋음^^
울림이 있는 글..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