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평화광장 2008.9.3.수
전주이씨 인성대군파
인성대군(仁城大君)은 예종의 아들이다. 예종(1450~1469)은 18세에 왕위에 등극한다. 예종은 원래 세조의 둘째 아들이었으나 그의 형 의경세자가 열아홉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자 세자 자리를 계승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종도 어려서부터 병약해 건강이 좋지 않았다. 결국 예종은 왕이 된 지 1년 2개월 만에 그의 형처럼 열아홉의 나이로 생을 마치게 된다. 이때 예종은 2명의 부인으로부터 2남 1녀의 자식을 두었다. 19세에 사망한 왕은 이미 8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예종은 조선왕조 사상 가장 어린 나이인 12살에 아들을 보았다.
예종의 정비인 장순왕후(章順王后,1445~1461) 한씨는 한명회의 큰딸로, 예종 보다 다섯 살 연상이었다. 장순왕후는 왕세자였던 예종과 결혼해 이듬해에 원손인 인성대군을 출산했다. 당시 신랑의 나이는 11살, 신부의 나이는 16살이었다.
장순왕후는 9대 왕 성종의 첫 번째 왕비 공혜왕후와는 친자매 사이였다. 이들의 친정아버지 한명회는 왕실과 혼인을 맺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단단히 하기위해 어린 두 딸을 각각 해양대군 예종과 자을산군 성종에게 바쳤다. 결국 두 자매는 하루아침에 시숙모와 조카며느리 관계로 변했다. 예종은 성종의 작은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세자빈 한씨(장순왕후)는 인성대군을 낳은 후 산후병으로 신음하다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17세였다. 장순왕후는 조선왕조사상 가장 일찍 죽은 왕비다. 능은 파주의 공릉(恭陵)이다.
인성대군 또한 그리 오래 살지 못하고 요절하고 말았다. 만일 인성대군이 살았다면 그가 바로 왕위 계승자가 되었을 것이다. 인성대군은 예종의 적자일 뿐만 아니라 한명회라는 막강한 외조부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 정복규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