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각 지장보살
구화산이 지장보살의 성지로 선정된 것은 신라 왕자 김교각 스님이 신라의 왕자 출신으로 법명은 교각(乔觉)이며, 석지장(釋地藏), 혹은 김지장(金地藏)으로도 불리며, 719년 당 고종 영회 4년 (653년) 24세의 나이로 당으로 건너가 출가하여 교각이라는 법명을 받고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이후 구화산에서 행각승으로 암굴에서 지내다가, 그의 선행, 덕망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주변 유지들의 요청으로 화성사(化城寺)를 창건하여 75년간 구도 활동을 하다가 99세인 서기 794년에 열반에 들었다.
스님은 794년 제자들을 모아놓고 고별인사를 한 뒤 입적을 하였는데, 자신의 시신을 석함에 넣고 3년 후에도 썩지 않으면 등신불로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하며 스님이 열반에 든 후 산이 울면서 허물어졌고 하늘에서는 천둥소리가 났다고 한다.
스님의 육신은 3년간 썩지 않아 신도와 승려들이 그를 지장보살(地藏菩薩)의 화신으로 인정하고, 육신에 금을 입혀 등신불로 봉헌하였으며 이로 인해 구화산은 지장보살 도량이 되었다.
중국에는 보살을 각각 하나씩 모시는 불교명산이 4개 있는데 오대산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 저장성 보타산에는 대자대비한 관음보살, 스촨성 아미산은 덕행을 주관하는 보현보살 그리고 안휘성 구화산에 모셔진 이는 김교각 지장보살이다.
원래 지장보살은 석가의 위촉을 받아 그가 죽은 후 미래불인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의 무불(無佛)시대에 6도의 중생을 교화, 구제한다는 보살인데, 중생이 모두 제도한 후에 깨달음을 이룰 것이며, 지옥이 빌 때까지는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라는 지장보살의 서원(誓願)을 김교각이 육신으로 실현한 셈이 되었기 때문에 그를 또한 지장보살이라고 부른다.
김교각 스님을 지장보살이라고 확신한 당시 사람들이 그의 육신에 금을 입히고 3층 석탑을 세웠는데 후인들이 그 위에 세운 사찰이 바로 육신보전(肉身寶殿)이다.
김교각의 진신(眞身)을 모신 이 고찰은 797년 지었으며, 청나라 때 중건되었는데, 중국 민중불교의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
김교각 스님은 오늘날 중국인들에게 절대적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이 달마대사나 육조대사에게도 붙이지 않은 보살의 칭호를 당시로서는 조그만 나라였던 신라의 스님에게 붙인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심지어 김교각 스님이 수행하던 절에 당황제가 직접 절 이름을 지어 편액을 내렸으며 서기 757년 김교각 스님의 신앙세계를 높이 받들어 금인을 하사하였다.
이것은 김교각의 수도가 당나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김교각 스님은 신라에서 중국으로 건너 갈 때 ‘차종자(金地茶)와 선청(善聽)이란 개를 데리고 갔다’고 하는데 차에 대한 기록을 보면, 유원장의 <개옹다사>(介翁茶史)에 의하면 구화산에 공경차(空梗茶)가 있는데 이는 김지장이 심은 것이다(是金地藏所植) 스님은 신라에서 바다를 건너와 구화산에 거처하며 이 차를 심었다(植此茶).
지금도 구화산의 차와 술이 유명한데 그 찻잎은 김교각 스님이 신라에서 가져간 것으로 전통재배방법으로 키운 것을 지금에서도 그 방법 그대로 전래된다고 하니 중국 속의 우리 문화라 할 수 있겠다.
스님은 한학에도 조예가 깊어 그의 시는 <전당시(全唐詩)>에 실릴 정도였다.
중국 당시집(唐詩集)에 김교각 스님의 차시(茶詩)한 편이 실려 있는데, 호랑이에게 구해준 동자가 절에서 살다 적막함을 못 이기자 시 한 수를 지어 마을로 돌려보내니, 이 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차시(茶詩)라고 할 수 있다.
산을 내려가는 동자를 보내며(送童子下山)
불문이 쓸쓸해 먼 산 바라고 옛집 그리더니 정든 절 떠나 구화산을 내려가는가
난간에 뛰어올라 죽마 타던 아이야 이곳은 황금땅, 금모래 모으는 일도 이제 싫으냐
칠병 속 시냇물엔 밝은 달 찾아올 일 없겠고 차 달인 단지에는 향긋한 꽃 필 일 없겠네
부처님 그리는 이는 자주 울 일 없나니 노승은 노을을 벗 하리라. 노을을 벗하리라.
(空門寂寞汝思家 禮別雲房下九華, 愛向竹欄騎竹馬 懶於金地聚金沙, 漆甁澗底休招月 烹茗遼中罷弄花, 好玄不須頻下淚老僧相伴有煙霞)
스님은 입멸 당시 자신이 1200년 뒤에 고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예고했다고 전하는데, 김교각의 등신불이 열반에 든 지 1200년 만에 높이 2.5m의 목조불상으로, 중국 정부가 한중수교 15주년 기념으로 제작하여 기증하여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교각 지장왕보살입상은 2.5m 크기로 중국 안휘성 구화산에서 점안법회를 봉행했으며 우리나라로 건너와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봉안될 예정이며,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여건이 구비될때까지 당분간 서울에 봉안된다고 하는데 ...
구화산 입상과 비교가 되어 좀 허술함을 느끼게해 아쉽다 .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