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 092726 가해 강론
에제 18:25-28; 필리 2:1-11; 마태 21:28-32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 이신가요? 친절하고, 온유하며, 유머 감각이 있고, 지혜롭고, 능력 있는 그런 분 이신가요? 아니면 대단히 무례하고 모욕적인 분 이신가요?
무어라고요? 대단히 무례하고 모욕적인 분 이시라고요? 네,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예수님은 분명 그러한 모습이십니다.
그 당시 백성의 종교 지도자들과 대화할 때는 마땅히 예의와 절절한 공경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러하다면, 예수님께서는 도대체 무엇이라 말씀하셨기에 그토록 모욕적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 지도자들이 종교 계명을 위반했기 때문에 비판하신 것이 결코 아니며, 그렇게 하실 수도 없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철저히 완수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 사람들을 강도나 도둑질을 일삼는 매국노인 세리, 그리고 창녀들보다 더 못하다고 견주어 말씀하셨을까요?
그 답은 우리가,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하여, 조금 전에 들은 “두 아들의 비유” 말씀에서 아버지가 맡긴 일을 수행하는 두 아들의 응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여라.”라고 말하자, 한 아들은 가겠다고 대답하고, 다른 아들은 거절합니다. 한 아들은 바람직한 말을 하고, 다른 아들은 불손한 말을 한 것입니다.
바람직한 말을 한 아들은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언제나, 겉으로는, 올바른 말만 합니다. 사람들을 가르치고, 자신들의 모든 공적인 종교적 의무를 완수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행동에는 분명 그 나름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예,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말한 아들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할 뿐,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인물입니다.
반면에 가기를 거부했던 그 불손한 다른 아들은 나중에 마음을 바꾸어 결국 포도원으로 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답은 명확합니다. 바로 나중에 마음을 바꿔 행동으로 옮긴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겉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척하며 올바른 말만 번지르르하게, 집안에서, 되풀이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포도원으로 나가서 하느님의 자비와 회개의 열매를 맺는 일에는 아예 첫걸음조차 떼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당대 사회에서 “죄인”이라 낙인 찍혔던 세리와 창녀들은 처음에는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는 삶을 살았지만, 세례자 요한의 회개하라는 불음을 듣고 마음을 돌려 진정한 회개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신 핵심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 핵심은 바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거룩해 보이는 말이나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의무에만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비록 부족함이 있었을지라도 겸손하게 마음을 바꾸어 아버지의 뜻을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내용인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말로만, 바리사이처럼, 의로운 체하는 신앙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뉘우치고 행동하는 아들이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시면서, 우리 자신을 깊이 되돌아보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 직후 예수님께서는 진정 모욕적인 말씀을 던지십니다. 바람직한 말을 하고 겉모습도 바르게 보이는 아들은, 당신 말씀을 듣고 있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즉 바로 그 “선량한 아들”을 대변합니다.
반면 첫눈에는 순명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소리치는 불손한 아들은 세리와 창녀들을 대변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예수께서 던지시는 모욕적인 말씀은, 정작 하느님의 뜻을 참되게 실천하는 이들은 거룩한 척하는 종교인들이 아니라 세례자 요한이 거룩함의 길을 가르치러 왔을 때 회개한 바로 그 세리와 창녀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 말씀 구절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네, 아버지, 말씀만 하십시오.”하고 대답했던, 선량해 보이던 그 아들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께로부터 포도원으로 나가 일하라는 부르심, 곧 성소(聖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세례 안에서 우리는 이미 “예” 하고 대답해 올렸습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그 “예”라는 응답을 되풀이해 올립니다. 주일이면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기도와 찬미가를 합송하여 바치며, 신경을 고백하고, 성체성사를 나누어 받습니다.
이러한 응답은 아마도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일 터이기는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요? 화요일이나 목요일의 우리의 삶은 어떠하지요?
그리스도인 신앙의 시험대는 단순히 주일에 성당에 가 있느냐 안가 있느냐가 아닙니다.
성당에 나오는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예”를 새롭게 다지는 일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약속을 실제로 이행하고 있습니까? 포도원에 나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다는 것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게 될까요?
우리가 포도원에 나가서 해야 할 일들 가운데 어떤 것은 성당에서 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바로 기도와 하느님 말씀에 대한 묵상입니다.
또 다른 일들은 실제 성당에서 행하는 일이지만, 성당 밖에서는 훨씬 더 모호하고 복잡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말씀 드리자면 “평화의 인사”가 바로 그렇습니다. 전례 안에서의 평화의 인사는 하나의 거룩한 예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포도원인 성당 밖 세상에서 나누는 평화의 인사는 따뜻한 말 한마디, 도움을 주는 친절한 손길, 혹은 올바른 소신을 지키는 삶의 태도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당 안에서 우리가 바치는 “예”라는 응답의 핵심은 바로 성체성사, 곧 하느님 그리고 하느님 백성과의 친교(親交)입니다. 그러한 친교를 가지고 포도원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을 진정한 형제자매로 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주일에 성당 안에서 우리와 함께 “예” 하고 고백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실질적으로는, 평일 동안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성당 안에서 신경이나 교회, 또는 성사에는 “예” 라고 응답하지는 않더라도, 타인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는 그런 남녀들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악해 졌을 것이며,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네들의 그러한 선행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행여 누군가 그런 사실을 말해주면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지만, 이미 포도원의 일꾼이 되어 그 포도원을 주님께 어울리는 곳으로 가꾸어 가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창녀들을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연로자들 앞에 제시하시며 회개로의 회심을 촉구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촉구는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주님께 입으로 “예” 라고 고백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분의 뜻에 순명하며 사랑에 주린 이 세상에 하느님의 돌보심과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은, 성당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을 깊이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룩한 도전이자 자극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첫댓글 응원합니다 신부님
신부님♡
안녕하세요?
추석은 잘 보내셨어요.
늘 감사드리며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늘..감사합니다..
대답만 "예"라고 하는 신앙인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감사합니다
아멘.아멘!
강론말씀 깊이 묵상합니다.
감사합니다.
🙏 아멘
신부님 오늘이 추석입니다 꼭꼭 겅간하시고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 😊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
가을이 점점 깊어갑니다
건강하세요
율리아 올림
아멘 🙏
신부님 감사드립니다 ~♡
🙏🔥
타관 객지 항구도시에서 파도소리,갈매기 울음소리 들으며
난생처음 맞아 보는
명절은 생소하고
거추장 스럽게 느껴져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듯 어색하기도 했네요.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손주 녀석의 의젓해진 제롱을 위안삼고
청정 남해바다위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태종대를 찾았습니다.
기암 절벽들의 장관은 옛모습 그대로 인데,
세월이 할키고 지나간 깊은 주름과 성성한 백발노인으로
유람선 난간에 기대앉아 시름에 빠진체
숨죽인 바닷물에 비춰진
내 모습만 변했네요.
오백년전 조선 태종도 반해서 넋을 잃고 머물러 갔다던 태종대를 뒤로하고
어디로 가나 꽉막힌
자동차 물결이
명절임을 말해주어 피로에 지친 나그네의 마음을 조급하게 했네요 .
단칸방에 홑이불 한장이라도
역시 내집이 편하여 간밤에 꿀잠을 잘수 있었나 봅니다.
당신의 정겨운 숨결을 지척에서 느낄수 있는
제자리로 돌아와
주님께 힘을 청하며
다시 새로운 하루에
희망을 품어 봅니다.
아멘 🙏
감사합니다 신부님
건강하세요
신부님 항상 몸조심하십시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
아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겁게 행복하게 지내시는 신부님 모습이 떠오르네요
조영숙데레사가~~
신부님늘감사합니다 오늘도주님과함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신부님! 감사드립니다.🙏❤️
+ 늘 기억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신부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 성령 충만 하시고 주님의 축복 늘 함께 하는 은혜로운 나날 되시길 또한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
신부님 감사합니다
항상 고맙고 감사해요
주님 평화안에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
신부님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
신부님 안녕하세요.
매년 축일을 축하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항상 이렇게 관심 가져주시고 좋은 강론 보내주셔서 많은 은혜받고 저도 집사람수산나도 잘지내고 있습니다 직장생활 한다는 핑계로 한번 찿아뵙지 못하고 죄송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의
은총과 평화를 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
작열하던 뙤약볕과 바람과 지리 하던 장맛비
다 견디어 보내고 나서 하늘 쳐다보니 어느새 가을이 깊어 졌습니다 .
겨울을 뒤에 숨긴 가을 바람이 스산한 아침입니다.
온 가슴안에
계시는 주님 모시고
차가운 이성으로 께어 기도하는 하루되길 소망합니다
신부님 축일 축하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신부님도 늘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기쁘고 행복한 나날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플라워)(사랑)
감사합니다. 신부님, 늘 건강하시길요.
감사합니다
영명축일을 축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따뜻한 마음 덕분에 더욱 기쁘고 행복한 축일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늘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건강하세요🙏
신부님 건강하시죠~^^
축일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늘감사합니다 👍 그리고 사랑합니다 늘주님의사랑이가득하시길기도합니다
신부님! 감사 합니다.
신부님의건강,빌고있어요.
감사합니다
항상건강하시고
평화를 빕니다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이성이 서로
균형을 이룰때
개인적 으로는 사람이 되고
사회적으로는 인간이 된답니다.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이성으로 하느님 찻는
하루되게 하여주소서
신부님,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지요?
한해한해가 갈수록 너무 빠르다보니 신부님 뵌 지도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저는 늘 똑같이 회사-집, 회사-집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주말 되면 어디론가 떠날 궁리를 많이 했는데 요즘은 주말에 서울 나들이에도 게을러지고 있네요~
내년부터는 등산학교에 적을 두고 북한산 암벽등반을 좀 열심히 다녀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늘 이렇게 잊지 않고 축일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내년에는 엘리사벳님도 한국에 한번 오시려고 계획을 하고 계신다니 같이 신부님께도 한번 들를 기회 만들어봐야겠습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편안하시고 늘 변함없는 모습 지키고 계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아멘.건행
먼산에 단풍잎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시월의 첫날 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
우직한 사람은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나를 세상에 맞추어 가는데 힘쓰는 한달이 되게 해주소서.
감사합니다^^
신부님 기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에 빠져 살다보니 저의 축일도 깜빡 했어요
신부님 너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