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향의 미국편지(3876). [문화산책] 원로가수 이미자의 조언
“요즘 가수들은 가사 전달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가끔은 자막을 보지 않으면 우리말인데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슬픈 가사인데 웃으며 노래하는 경우도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가수 이미자 ‘선생님’의 말씀이다. 세계에서 활약하는 K팝 후배 가수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인터뷰 내내 특유의 맑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하다가, 이 말을 할 때는 목소리 톤이 단호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맞는 말씀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뼈아픈 충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시니 속이 다 후련하다. 한국 가요계에 숱한 역사를 써내려간 공로로 대중문화인 최초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대선배의 말씀이니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보다도 가수 활동 64년 동안 560여장의 음반, 2500여 곡의 노래를 발표하여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음반과 곡을 발매한 가수로 1990년 기네스북에 등재된 선배의 경험에서 우러난 지적이니 새겨들어야 마땅할 것이다. 누구나 아는 대로, 노래는 곡과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와 음악이 어우러져 크고 짙은 정서를 빚어낸다. 특히, 보통사람들의 애환과 한 시대의 정서를 대변하고, 삶을 위로해주는 대중가요의 원초적 힘은 흐르는 멜로디에 얹혀진 가사에서 주로 나온다. 그래서 유행가를 일러 ‘3분 드라마’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그만큼 노랫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노래의 생명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노랫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부른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다. 그렇게 부르는 가수는 일단 자격 미달이다. 노랫말을 알아듣기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가사와 곡이 맞지 않는 경우, 가수의 발성 기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 가사 전달보다 감정표현에 치우치거나 겉멋 부리기에 급급한 경우, 춤추랴 노래하랴 정신을 못 차리는 경우 등등…. 특히 내가 보기에는, 우리말 특유의 고저장단과 서양음악의 구조적 부조화가 큰 원인인 것 같다. 그런데 요새는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한다. 요즘 노래는 말하듯이, 발음을 뭉개고, 포인트 단어만 힘줘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한국인조차 못 알아들을 정도의 부정확한 가사 전달력이 K팝의 특징이자 멋이 돼 버렸다는 이야기다. 하긴, 요새 노래는 ‘듣는 음악’이 아니라 ‘보는 음악’이니… 가사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요새 젊은이들의 노래 가사는 우리말과 영어가 뒤섞여 있는 것이 보통이다. 세계를 겨냥한 K팝 중에는 가사가 아예 영어로만 돼 있거나, 국적 불명의 모호한 단어를 남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여기서 이해가 어려운 일이 있다. 우리말 가사는 도무지 못 알아 먹겠는데, 영어 가사는 선명하게 잘 들리는 것이다. 그것참 이상한 일이다.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국제 경쟁력이 중요하다지만…. 어쩌면 이런 현상이 노래만이 아닌 문화나 사상, 가치관, 인생철학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불통이라면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고, K-팝이 세계적 인기를 끄는 저력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파악하고 싶어서 노래를 들어보지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으니 답답하고, 서글퍼진다. 마치 읽고 또 읽어도 난해한 현대시를 읽거나, 보고 또 봐도 아리송한 추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군시렁거리고 있으려니, 옆에서 누군가가 한 말씀 날리신다. “귀가 많이 어두우신 모양이네요. 감각은 크게 낡으셨고….”
장소현 / 시인·극작가 [Los Angeles] 입력 2024.01.26 11:59
02-05-24(월) 미국에서 덕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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