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 민방위 훈련을 지휘하는 차지철
털모자 쓴 중앙인물이 차지철입니다.
그리고 차지철 왼쪽이 노태우.
보도블럭 아래로 내려와 있는 자가
전두환.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하는
이들 군복을 나치 친위대같이
만든 차지철.
박정희의 경호실 소속 군인들 접견.
경호실에 현역 군인들을 둔 이유는
차지철이 수경사(수방사)30경비단.
33 경비단을 경호실 산하에 두었고
이외에도 수경사 (당시는 수도방위 사령부를
수도 경비 사령부라고 불렀음)전차 부대와
방공부대마저 경호실 산하에 두었습니다.
차지철의 2인자 행세는 꼭 영화가 아니어도
많은 책과 자료로 나옵니다.
김계원이 10.26 직후 합수부 조사와
재판에서 한 말에 잘 나와 있습니다.
☞나는 비서실장으로 부임한 후
차지철의 사무실로 가서 인사를
했는데 이에 대하여
답례인사도 오지도
않았습니다.
한번도 본인의 사무실로
찾아온 적이 없었습니다.
차실장은 각하께 보고 하러
본관에 와서 1층 대기실에서
기다릴 때도
내가 있는 2층 사무실로
올라오면 될 것을
꼭 1층 대기실로
나를 불러내려
용건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8월경 일본의
후쿠다 전 수상이
방한 하여 각하를 모시고
백두진 국회의장,
차지철 경호실장,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뉴관악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나서 샤워장에
들어갔습니다.
백 의장이 맨 먼저 샤워장에
들어갔는데 빨리 나오지 않자
차 실장은 샤워장 문을
두드리면서
'빨리 나와요 빨리. 뭘 하는거요'라고
하면서 '이 늙은이가 무얼 우물 우물
하는가.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독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연장자에 대한 태도가
무례할 뿐만 아니라
항상 각하를 경호한다는
입장을 내세워서
자리나 차량운행 순서에서
자기가 먼저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각하를 모시고 정부종합청사에
갈 때 각하, 총리, 관계장관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차실장은 자리가 좁다는 이유를
대면서 본인보고는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라고 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차지철은 간혹 각하가
출근하기 전에 대통령 집무실에
와서 기다리다가 먼저 들어가
결재를 받고 나오는 바람에
내가 상당히 기다렸다가
결재를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본인이나 장관들이 결재를
받으러 기다리고 있는데
차실장이 각하 집무실 입구
경호원에게 지시하여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 뒤
자기가 와서 먼저 결재를 받는
바람에 장관들이 차 실장이
결재를 받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차지철은 경호실 정보처로
하여금 정치 및 시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각하에게 보고하는데
어떤 사태가 야기되었을 때는
정보부장이 보고차 오기 전에
먼저 보고하여 정보부장이
뒤늦은 보고를 하도록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차지철은 연장자인
본인이나 장관 국회의장
군 선배에게도 "님"자를
붙이는 법이 없고
오만불손하였습니다.
각하가 방문하는 호텔이나
골프장의 사장들이 각하를
영접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인사하러 나오면
차 실장은 들어가라고
제지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는 또 자기 업무도 아닌
정치공작에까지 간여하고
육군참모 총장 이세호 대장을
주1-2회 정도 자신의 사무실로
부르는가 하면 군내의
주요지휘관들과
장성들을 불러다가
돈도 주고 식사도 같이 하고
하는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치열 법무장관이 군인들과
접촉하는 차 실장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김계원의 합수부 3차 진술서에서...
김계원은 육군 참모총장 출신의
4성 장군 출신이죠.
10.26 당일 아직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이 안밝혀져 있을때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정부 각료들은 차치철을 의심했죠.
정승화가 육본에 와서 전화로
경호실 차장으로 있던 이재전 장군(중장)
(저희 아버지께서 이재전 장군을
상관으로 모신 적이 있죠.
물론 이재전 장군이
경호실로 오기전 한미 야전군에
있을때이지만)에게 청와대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으라 한것과
수경사 사령관 전성각 장군(소장)에게
(장태완 장군은 1979년 11월에 수경사령관으로
보직을 받고 옵니다)
청와대를 포위하라고 지시한 상황은
차지철이 박정희를 쏘았다고 일단
의심한 것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김치열 법무장관이 박정희의 사망을
듣자 " 이 새끼가 기어코 일을 터뜨렸구나
(이새끼는 차지철을 말함)"
"김부장 그 자식은 막지 않고 뭐하고 있었대?"
한것은 경호실 산하에 군대를 둔 차지철의
친위 쿠데타 더 나아가 박정희를 제거한 쿠데타로
볼 정도로 미움을 받고 있었던 것이죠.
차지철이 국립묘지에 못간 이유는
(영락교회 교회묘지에 안장) 대통령을 보호
못한 이유 뿐 아니라 이렇게 정부 인사들의
미움까지 받고 있었기 때문이죠.
일단 남산의 부장들 후기는 글을 줄입니다.
다음에 기회되면 김형욱 이야기를 올려보죠.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박정희 죽음에 관한 창작물은 계속 나오겠죠.
더 많이 나올거라 생각됩니다.앞으로는 박근혜 시대도 나올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