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의 정이 응결된 잊지 못할 환대(歡待)
나는 1970학년도 은사초등학교에서 1년간 근무를 했다.
내가 담임했던 학년은 6학년이었다.
내가 기록해 보관하여 온 노트에 의하면 1970년도 학년 초에 30명(남 15명, 여15명)을 배정 받아 지도했는데 1971년 2월 17일 졸업식 날 졸업장을 받은 학생은 28명(남 14, 여14)이다.
중학교 진학관계로 남학생 1명은 부산으로 전학했고, 여학생 1명은 사천초등학교 전학했다. 졸업한 학생들의 졸업 회수는 은사초등학교 17회다.
제자들은 매년 두 차례씩 1박 2일 일정으로 여행이나 등산 또는 명승지 관광을 하면서 끈끈한 정을 유지해 오고 있다고 한다.
20일 전 즈음 부산에 거주하는 제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금년 봄철 동기 모임을 진주에서 스승의 날을 앞둔 13일에 할 예정인데 그날 선생님과 사모님을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집사람에게 그 말을 전했더니 “그 자리에 자신이 참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하면서 사양을 했다.
하는 수 없어 제자에게 나 혼자만 참석하겠다고 통보를 했더니, 그 제자가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이번 주 토요일 모임에 사모님과 꼭 같이 오셔서 저희들의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존경하는 마음을 꼭 받아 주시길 바라옵니다. 사모님과 같이 오시면 너무 좋겠습니다. 사모님과 같이 모시는 것은 처음이라 송구스럽습니다만 꼭 같이 오시면 너무 큰 영광이겠습니다. 그럼 이번 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김길수 올림’
이 문자를 집사람에게 보였더니 ‘그런 성의를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 같다.’고 하면서 동행에 동의했다.
이틀 전에 참석할 제자들의 명단과 행사 개요가 적힌 절차와 순서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우리 내외는 콜택시를 불러 약속시간 20분 전 즈음에 도착하여 강변을 조금 걷다가 시간에 맞춰 갑을식당으로 갔더니 먼저 도착한 제자들이 연회석을 식장처럼 꾸며 놓고 환영 프랑카드도 걸어 두었다.
초대한 제자들의 나이가 예순 중반이다.
이들 모두가 국가와 사회의 동량재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인재들인데 나를 대하기를 마치 53년 전 초등학생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태도로 대하니 정말 민망했다.
나에게 소회(所懷)를 피력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마이크를 잡고 나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초등학교 담임 그것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환대를 하니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민망하고 염치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0일과 11일 이틀 동안 함양에서 우리 교육대학 동기들이 졸업 55주년 기념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1968년 2월에 졸업을 했다.
너희들은 내가 교직생활을 한 이후 세 번째 맡은 학생들이다.
1971년 2월에 졸업을 했다. 올해가 졸업 52주년에 해당된다.
너희들을 학년 초에 배정받았을 때 학급 생 숫자가 남자 15명, 여자 15명 계 30명이었는데 중학교 진학관계로 남학생 1명은 부산으로, 여학생 1명은 사천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졸업장을 받은 학생은 28명이다.
내가 너희들을 담임했을 당시 나의 나이가 스무 세살이었다.
그야말로 철부지 교사였다.
말은 정제되지 못해 아무렇게 구사했을 것이고 가끔 욕설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체벌도 했다.
그랬는데도 나빴던 기억은 다 지우고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하고 있으니 나로서는 너무나 행복하다.
내가 교직생활 중에 6학년 담임을 16회 정도 했다. 그 중에 너희 동기들만큼 역동적이고 사회 각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제자 기수들은 없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지역 풍토의 영향도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은사는 풍수지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명당지역이다.
그 실제 사례가 세종과 단종의 태를 모셨던 태실지가 이 고장에 있다.
조선 초기는 풍수지리학이 학문의 중추로 자리 잡고 있던 시대이다.
왕릉은 임금이 자주 방문해야 했던 관계로 서울 근교의 명당지역을 골랐지만 태실지는 전국 단위로 명당자리를 골랐다.
그렇게 선정된 곳이 은사다.
또, 백두대간의 줄기 중에서 낙남정맥이 은사지역을 지난다.
흔히들 백두대간이나 정맥이 지나는 곳은 기(氣)가 충만히 흐른다고 여긴다.
그 기(氣)를 너희들이 다 받은 것 같다.
아무튼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명단에 적힌 출석을 한번 부르는 것으로 끝을 맺고자 한다.' 고 하면서 모두 호명을 한 것으로 마무리 했다.
선물을 가득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특히 소나무 분재가 고급이다.
제자가 이러한 메시지도 보내왔다.
‘저희가 올린 사계절 내내 푸른 소나무 같이 사모님과 항상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만수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첫댓글 은사님과 사모님께 장말 외람되게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희의 미미한 마음을 민망 정도로 너무 과분하게 말씀하시어 오히려 저희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스승의 날 하루만 부산하게 하고선 너무 생색을 내는 것 같아서 참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저희 제자 모두의 마음속은23살의 젊으신 은사님과 13살의 철부지들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진주보다 더 단단하고 아름답고 영롱한 추억입니다.. 은사님과의 53년전의 추억을 아직도 간직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은사님 덕분이며, 저희는 정말로 행복하고 복도 많이 받은제자들입니다.
사모님과 함께 항상 건강하시옵고 영원히 저희와 같이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감히 올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불초제자 김길수 올림
은사님 + 사모님 !!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항상 건강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