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지라는 교육자가 있다(조현)
- 7.경남 산청 민들레공동체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에 ‘민들레공동체’가 있다. ‘칡밭’(갈전)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길 끝나는 골짜기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비인가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중·고 과정생 43명과 교사 7명 등과 교사네 다섯가정으로 이뤄져있다.
27일부터 4일간은 민들레공동체 에너지자립기간이다. 이 때는 전기와 가스, 수도도 끊고 외부에서 먹거리조차 차단한다. 그런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살아낸다. 전기가 차단되니, 산에서 땔감을 주워와 흙스토브나 태양열 조리기로 밥을 하고 음식을 조리한다. 자전거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드는 것쯤은 이곳 아이들한테는 기본이다. 수돗물도 없으니 계곡물을 떠와 아이들이 만든 정수기로 물을 정수해 사용한다. 심지어 라이터나 성냥조차 쓰지않아 돌을 마찰하거나 돋보기로 태양열을 가열시켜 불을 만들어 낸다. 외부 부식도 반입이 중단되니, 밭에서 이미 눈·서리에 앉은 배추들을 솎아오고,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아와서 국을 끓인다. 이 과정에서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이 동원된다. 어떤 아이들은 뱀과 개구리를 잡아와 먹기도 한다. 그야말로 겨울산에 고립되어 목숨을 부지했던 빨치산식 삶의 현장이다. 아이들에게 이 과정은 에너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삶에서 활용되는지 화학·생물·과학의 원리를 탐구하고 정리하는 과학집중학습 기간이기도 하다.
이런 생존력이 하루 아침에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민들레학교 아이들은 오전수업 뒤 오후엔 주로 ‘현장’에서 공부한다. 밭농사 3천평, 논농사 2천평에 농사를 짓고, 양계장, 양돈장, 양봉 50상자 등을 아이들이 교사들과 함께 직접 돌본다. 공동체 내 대안기술센터에서는 자전거발전기 등으로 에너지나 새로운 농기계·시설을 만들어내고 고치는 방법을 배운다. 센터안엔 빵을 만드는 제빵식, 자기 옷정도는 자기가 만들어서 입을 수 있는 양재실까지 있다. 아이들은 농사부, 양재부, 대안기술부, 건축부, 목공예부 등 중에서 선택해 ‘삶의 기술’을 배운다. 지난 9월 인근 지역민이나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연 ‘장터’에 내놓은 옷이나 농산물들도 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거나 키운 것들이다.
핸드폰이 개인노트북까지 맡겨두고 이렇게 강도 높은 노동을 해내는 이곳 아이들도 태생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3만 빼놓고 중고등 5학년생과 교사 모두가 매년 4월 함께하는 10일간의 국토순례를 처음 참가하는 아이는 무거운 배낭을 매고 온종일 걷다보면 게거품을 물기 십상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더는 못가겠다”고 드러눕기도 하고, 교사와 자기 부모에게 악에 바쳐 막가파식 욕을 퍼붓기도 한다. 그러면 교사나 도우미들이 뒤쳐진 그를 곁에서 지켜준다. 그러나 배낭을 대신 들어주지도 포기하도록 내버려두지도않는다. 그렇게 울면서 일행을 뒤따르던 아이는 3일, 4일이 지나 근력이 생기고, 골인지점이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자신감을 갖는다. 이들이 행군을 마치고 민들레학교에 돌아오면 대형펼침막으로 환영하고 성대한 잔치를 벌이며 스스로 힘으로 해낸 성취를 적극 고무 찬양해준다. 그러면 처음 입이 댓자나 나와있던 아이도 자신감으로 볼이 터질 듯해지며 함박 웃음을 짓다.
민들레학교 김인수(57) 교장은 지난 2007년 이 학교를 열 때부터 입학생들에게 “대학 갈 생각도 부자로 살 생각도 말라”고 했다. 자식이 명문대학 가서 부자 되길 바라는 부모들의 복장을 뒤집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그는 학교에서도 강연에서도 늘 세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도시에 있지 말고 농촌에 와라. 흙속에서 살아야 사람 된다. 둘째, 자식 대학 보내려고 하지마라, 대학 가봐야 별 볼일 없다. 셋째, 취직 당하지마라. 교육은 직업에 목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립해서 직업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 그는 세 아이 중 첫째 셋째 아이를 초등학교만 졸업시켰다. 그래도 두 아들은 스스로 공부해 자기 삶을 개척했다. 둘째 딸은 고교에 졸업하자, 민들레가 돕는 히말라야 지역에 국내대학보다 학비가 10분1밖에 안되는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공부하고 와 민들레학교 교사로 함께 하고 있다. 정규학교는 초등학교만 다녔던 막내아들도 독학을 해 민들레학교 교사로 있다.
김 교장 자신도 ‘가난’을 선택했다. 대학 때 고신교단의 선교단체인 ‘에스에프시’에서 활동한 김 교장은 대학 졸업 뒤 10여년간 지리산 일대에 교회조차 없는 가난 가난만 찾아 살았다. 그는 오지 빈촌의 폐가를 구해 고쳐살며 마을이웃들에게 자신의 전공인 농업을 살려 유기농법을 가르쳐주며, 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부인 권근숙(56)씨와 동역자들과 함 가난한 마을에 무려 20여곳의 교회를 개척하는 전설을 만들어냈다. 부인 원씨의 거창고 은사인 도재원 선생은 “성공이란 자신의 삶을 어디에 바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해 돈 많이 벌고, 출세하고, 유명해졌다고 해도 ‘정의와 자유, 평등, 사랑’을 건설하는데 일익을 담당하는 삶을 살지않았다면 결코 성공한 삶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부부가 민들레학교를 설립한 것은 ‘진짜 성공한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기 위함이었다.
스승의 말은 김 교장 부부에게 교육의 모토가 됐다. 따라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교육은 해외이동학습에서 더해진다. 중2학년생들은 매년 8~10월 3개월간 인도와 네팔, 캄보다이아 등에서 이동학습을 한다. 민들레공동체원들이 10여년부터 파견돼 농촌살리기에 나서고 있던 이 지역들은 하나같이 가난한 오지에 있다. 그래서 지난번 인도 실리구리에 들어갈 때는 홍수로 길이 끊겨 애 먹었다. 아이들은 오지마을에서 장애인들에게 봉사도 하고, 가난한 친구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가난한 삶 속으로 들어가 가난한 친구들을 사귄다. 아이들은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풍족함을 누리면서도 늘 불평불만을 하곤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해외학습의 대미는 기아체험이다. 직접 24시간동안 굶어보면서 먹을 것이 벗어서 굶을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친구들의 처지가 되어보는 것이다. 그런 체험 뒤 추첨에 의해 어떤 아이는 진수성찬을 마주하고, 어떤 아이는 500리터 생수 하나로 하루를 더 버티는 생생한 빈부차이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 체험 후 여러 아이가 “굶주린 아이들과 내가 바꿔 태어났을 수도 있었다”면서 “그런 가난한 아이들을 도우면서 살아가고 싶은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고2학년생’들은 미국으로 떠나 제3세계의 삶을 개선하는 적정기술과 창의력캠프에 참석하고, 브루더호프나 아미쉬, 후터라이트 등의 공동체를 방문해 배운다. 이들이 고3이 되면 한우, 목조건축 등 자기만의 전문분야를 정해 대학졸업반 못지않은 논문을 써낸다. 더구나 책상물림이 아니라 삶의 터득한 전공에 대해서 말이다. 3고 아이들은 3개월간 자기분야 회사 등에 인턴십을 가는데, 요즘 아이들답지않게 부지런하고, 인간관계도 원활한데다 무엇보다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 ‘대학 안나와도 되니, 제발 우리 회사로 보내달라’는 청이 적지않다고 한다.
독특한 교육철학으로 이 학교를 이끄는 김 교장은 전형적인 책상물림처럼 허약하지보이지만 그는 논밭에서 일할 때 가장 행복을 느낀다. 그는 “노동을 하다보면 깊은 기도를 할 때처럼 마음이 고요해진다”고 했다. 이곳 학생중 가끔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는 인근 다른 공동체로 귀양을 보내 ‘다른 삶’을 경험하게도하지만, 김 교장은 그런 골칫덩이를 자기 옆에 두고 온종일 함께 일하기를 좋아한다. 골치를 썩이는 아이들은 친구들에 비해 관심을 덜 받아 심통이 나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교장 선생님이 자기와 온종일 함께 해주며 같은 노동을 하고, 뭔가 눈에 보이는 일을 해낸데 대해 칭찬을 아끼지않으면 아이의 자세가 확연히 달라지는 사례가 적지않다고 한다.그는 개신교 중에서도 ‘골수 복음주의자’에 속했지만, 그는 신앙의 잣대로 아이들을 옥죄는 것을 경계한다. 아이들이 욕구를 분출하기도 하고, 그 본성을 스스로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게 해줘야한다는 것이다. 그렇지않고 신앙적으로만 해결하려다보면 욕구를 분출해본 적도 없던 아이는 위선적이 되고 이중적이 되기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좁은 울타리에 아이들을 가두지 말고, 스스로 생각과 삶을 일치하도록 도와야한다는 것이다.
“10미터씩도 훨훨 날아다녀도 부족한 닭을 양계장의 비좁은 케이지에 가두면 화가 나서 독을 품고 병들게 마련이지요. 아이들도 마찬기지. 작은 울타리에 가두려들지말고 어지간하면 울타리를 크게 해줘야해요.”
민들레의 돈사와 양계장이 다른 농장과는 비교할 수 없이 넓은 것도 그 때문일까. 이처럼 넓은 마음으로 살게 하니, 이곳 아이들의 호연지기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이곳에서도 주일이면 식당 겸 강당에서 예배를 본다. 신학대학원을 마친 전도사이기도 김 교장이 예배를 인도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교회란 장소가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터전과 하늘과 땅, 즉 사랑과 나눔이 있는 삶의 현장은 모두 이들에게 교회다. 이들은 식사 때마다 단 한소절 노래를 함께 부름으로써 그런 마음을 나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