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됨을 평가했던 기준 身言書判(신언서판)
身 : 몸신. 言 : 말씀언. 書 : 글씨서. 判 : 판가름할 판
옛날 사람들은 身言書判(신언서판)을 보고 그 사람의 사람됨을 규정짓곤 했다.
身言書判(신언서판)이란?
풍채와 언변과 문장력과 판단력을 말한다.
선비가 지녀야 할 네 가지 미덕이기도 했다.
이는 원래 당(唐)나라 때 관리를 선발하던 기준이었다.
역사서인 新唐書(신당서)의 選擧志(선거지)에 의하면
凡擇人之法有四(범택인지법유사). 一曰身(일왈신), 言體貌豊偉(언체모풍위). 二曰言(이왈언), 言言辭辯正(언언사변정). 三曰書(삼왈서), 言楷法遒美(언해법주미), 四曰判(사왈판), 言文理優長(언문리우장). 四事皆可取(사사개가취)
무릇 사람을 가리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身)이니, 풍채가 건장한 것을 말한다. 둘째는 언(言)이니, 언사가 분명하고 바른 것을 말한다. 셋째는 서(書)이니, 필치가 힘이 있고 아름다운 것을 말한다. 넷째는 판(判)이니, 글의 이치가 뛰어난 것을 말한다. 이 네 가지를 다 갖추고 있으면 뽑을 만하다.
위의 네 항목 중에 세 항목은 외형에 드러난 덕목이고 마지막 한 덕목은 내면적인 덕목이다.
왕조시대의 관리들은 그 사람이 다스리는 고을의 백성들에 한해 입법 행정 사법권을 독점하고 그 권력으로 주민을 다스렸다.
지혜로운 관리를 만난 주민들은 다행이었지만 탐관오리를 만난 백성들의 삶은 고달팠다.
성문화된 법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주민들이 행한 행동이 범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오직 관리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되었다.
관리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형벌이 가해지는 경우 벌을 받게 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는 마음 없이 오로지 죄(罪)의 요건이 성립 된다는 것만으로 형벌을 부과할 경우 잘못을 저지를 개연성이 있다. 왜냐하면 명문화된 일정한 기준이 없기에 정실에 의해 죄의 경중이 좌우될 가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건이란 다양한 인과관계가 있다.
어느 측면으로 보았을 때 정의로운 행동이 죄가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범죄 행위 같이 보이는 행위가 오히려 정의로운 일인 경우도 있다. 그것을 잘 판단하여 주민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지혜로운 관리인 것이다.
요즈음 TV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정치인이나 정치 평론가들을 보면 대부분 풍채가 좋고, 박식하며, 현란한 말솜씨를 가졌다. 사람을 홀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언변이 좋다. 그런데 국리민복을 생각하는 판단력 면에서도 그가 말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패널로 나와 토론하는 인사들의 말을 들어 보면 진영에 따라 전혀 다른 척도로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사안도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는 전혀 다르게 이야기 한다. 쉽게 말을 바꾸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내로남불의 괴변을 늘어놓기 일쑤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렇게 우기면서도 표정하나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이다.
진영논리에 매몰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상대진영이 잘한 일이 있어도 인정하지 않고 일단 비난부터 하고 난 후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자기 진영의 단점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 상대방을 끌고 들어오는 물귀신 작전이다. 전혀 논리에 맞지 않은데도 교묘한 말솜씨로 국민을 호도한다.
조선시대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제창(提唱)했던 실학자의 태두(泰斗) 성호(星湖) 이익(李瀷) 선생은 사물의 원리를 관찰한 ‘관물편(觀物編)'에서 사람이든 사물이든 설사 단점이 있더라도 그 속에 깃든 장점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생은 유단취장(有短取長)의 정신이 몸에 배여 있었던 것이다.
성호 선생은 집안에 감나무 두 그루를 키웠다. 한 그루의 감나무는 열매가 많이 달렸지만 그 열매가 작은 땡감나무였고, 또 다른 한 그루의 감나무는 열매가 달리는 수는 적은데도 열매는 큰 대봉감나무였다.
감나무 두 그루가 자라서 집안에 그늘을 드리우는 바람에 성호 선생은 그 중 한 나무를 베어 버리려고 했다. 집안 마당에 커다란 그늘이 지고 장마 때가 되면 늘 땅이 젖어있어 마를 날이 없었다. 그 때문인지 감이 제대로 열리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성호 선생은 쉽사리 나무를 선택할 수 없었다. 남편의 걱정을 보다 못한 부인이 이렇게 말했다.
이건 비록 열매가 적게 열려도 대봉감이여서 조상 섬기는 제사상에 올리기 좋은 품종이고, 저건 땡감이지만 말려서 곶감이나 감 말랭이를 하여 우리 식구들이 군것질로 먹기에 넉넉하다. 고 했다.
성호 선생은 둘 다 부정적으로 밉게 보았으나 부인은 둘 다 긍정적으로 좋게 보았다. 밉게 보면 어딜 봐도 못나 보이고, 좋게 보면 어딜 봐도 예쁜 것이다. 단점 속에서도 장점을 취한 지혜로운 부인의 말을 듣고 성호 선생은 톱을 헛간에 도로 넣었다.
어떤 것이든 장ㆍ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단점이 있어도 장점을 볼 줄 알고 취할 줄 알아야 일을 도모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삶도 나무의 생육처럼 양면을 모두 보고, 보듬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든 장점만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 장점이 있으면 빛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처럼 단점도 있고, 단점이 있으면 한여름 숲속에서 느끼는 시원함처럼 장점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세상은 보이는 단점만 지적하며 비난하다가 그 사람이 지닌 커다란 장점이 제빛을 잃고 점차 사그라지는 경우가 흔하다.
요즈음 젊은이들이나 시니어들과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면 너무나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이들의 뇌리에 박힌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은 괴물에 불과한 사람처럼 각인되어 있다.
만약 건국 대통령이 이승만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되었을 것이며,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으면 우리나라 경제수준은 북한이나 동남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 자명하다. 그런 공과는 생각지도 않고 단지 독재자라는 이미지만 각인되어 있다.
시니어들의 경우 젊은이들이 우상으로 여기는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을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용공분자로 치부하고 폄하한다. 두 분 대통령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은 인정하지 않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시니어들이다.
세대 간의 갈등을 깊게 만든 책임은 편행된 이념으로 잘못 가르친 교사들과, 역사를 왜곡하여 진실을 외면한 역사학자들과, 이념에 입각하여 사법적인 판단을 하는 사법부의 정의롭지 못한 판단에 기인된 것으로 생각된다.
周易(주역) 繫辭傳(계사전)에
陽卦多陰(양괘다음),陰卦多陽(음괘다양)이라 기술되어 있다.
양괘에는 음이 많고, 음괘에는 양이 많다.
좀 더 쉽게 이야기 하면 양의 기운이 절정이라 볼 수 있는 하지 날에 음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하고, 음의 기운이 절정이라 볼 수 있는 동지 날에 양이 태동한다는 뜻이다.
50년 집권을 장담하며 적폐청산이란 미명아래 박근혜 정권을 도륙했던 문재인 정권도 5년 만에 앙갚음을 당하는 꼴이 된 것을 보면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부도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무도함의 적폐가 어느 정도 청산되면 국민 대 통합의 정치를 펼쳐야 하리라고 본다. 끝까지 강대강으로 정국을 이끌면 국민의 피로도가 가중되고 국정의 동력도 잃게 되리라고 여겨진다.
정치적 보복으로 비치는 악순환은 적당한 선에서 멈춰야 역사의 발전을 가져오리라 여겨진다.
중국에서 여성으로 유일하게 황제가 된 측천무후는 정권을 잡기 위해 혈육의 정을 짓밟기도 하고, 남성편력, 탄압과 숙청의 공포 정치를 펼쳤다. 그렇게 악명은 높았지만 그 공포정치기 오히려 사회를 안정시켜 국민들의 생활은 편안했다고 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말년에는 자기가 저지른 만행에 의해 피해를 본 인사들의 명예회복에 힘을 기울였는가 하면 자기의 무덤 묘비에 한 글자도 새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정치는 국민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게 하는 수단이다.
정치가의 남긴 족적의 평가는 후세 사람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