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서사(鳳捿寺)의 진묵대사(震黙大師)
전라북도 완주군 소재 봉서사에 가면 진묵대사에 대한 소개 글이 있다.
이 글에 의하면
진묵대사는 조선조 명종17년(1562)에 지금의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에서 태어나 1568년 7세 때 봉서사(전북 완주군소재)로 출가 하여 인조11년(1633년) 완주 봉서사에서 세수 72세로 입적했다.
진묵대사의 이름은 일옥이며, 진묵은 그의 호다. 주로 완주지역 봉서사에서 불법을 수행하면서 일생을 마쳤다.
진묵대사(震黙大師) 오도송(悟道頌)
天衾地席山爲枕(천금지석산위침) : 하늘은 이불로 땅은 자리로 산은 베개로 삼고
月燭雲屛海作樽(월촉운병해작준) : 달은 촛불로 구름은 병풍으로 바다는 술통으로 삼아
大醉居然仍起舞(대취거연잉기무) : 크게 취해 흔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却嫌長袖掛崑崙(각혐장수괘곤륜) : 행여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염려로구나.
이 오도송(悟道頌)은 진묵대사(震黙大師) 칠언절구(七言絶句) 평기식(平起式) 선시(禪詩)다.
기구(起句)의 스케일만 보더라도 대사(大師)의 수행 깊이가 무애(無礙)와 해탈(解脫)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잠자리로, 산을 베게로, 달을 등잔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닷물을 술통으로 삼아 거나하게 취하여 일어나 춤을 추는데 장삼 자락이 곤륜산(崑崙山)에 걸릴까 염려(念慮)가 된다.’는 발상이 그것을 대변한다.
곤륜산(崑崙山)은 세속(世俗)의 규범(規範) 잣대다.
속가(俗家) 연(緣)은 전북 김제 만경읍 화포리 불거촌(佛居村)에서 조의씨(調意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부친을 잃고 7세에 전주 서방산(西方山) 봉서사(鳳棲寺)로 출가(出家)했다.
대사(大師)가 출생(出生)한 집은 조앙사(祖仰寺) 사찰이 되었다.
성모암(聖母庵)은 어머니를 위해 지은 절인데,
無子孫千年香火不絶之地
‘자손이 없어도 천년동안 향불이 끊어지지 않는 명당(明堂) 터’다.
진묵대사(震黙大師)는 출가를 했어도 속가 어머니를 절에 모시고 살았다.
출가하면 속세와의 연을 끊는다는 계율보다 천륜을 더 중시했다.
일화에 의하면 여름철에 모기가 많아 어머니가 모기에 물려 잠을 못 주무시고 괴로워하자, 대사께서 알몸으로 어머님 곁에 누워 모기를 유인하였다고 하니, 대사의 지극한 효심(孝心)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진묵대사께서 어머니 49재 때 쓰고 읽은 제문(祭文)이다.
胎中十月之恩 何以報也 膝下三年之養 未能忘矣, 萬歲上更加萬歲 子之心 猶爲嫌焉, 百年內未滿百年 母之壽 何以短也, 簞瓢路上行乞一僧 旣云去矣, 橫釵閨中未婚小妹 寧不哀哉, 上壇了下壇破 僧尋各房, 前山疊後山重 魂歸何處 嗚哉哀哉
'태중에 열 달 동안 품으신 은혜는 어떻게 갚사오며, 삼년동안 길러주신 은혜는 결코 잊을 수 없나이다. 만세에 만세를 더 사신다고 해도, 자식의 마음에는 오히려 부족합니다, 백년(百年) 중에 백년(百年)도 다 채우지 못하셨으니, 어머니의 수명은 어찌 그리도 짧습니까? 표주박 하나로 거리에서 걸식하는 저야 이미 스님이 되어 갔다고 하지만, 아직 비녀도 꽂지 못한 채 시집 못 간 누이동생은 어찌 불쌍하지 않습니까? 상단 불공도 마치고, 하단 제사도 마쳐서 스님들은 제각기 방으로 돌아가고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도 중한데, 어머님 혼은 어디로 갔습니까? 아! 참으로 슬프고 슬픕니다.'
부모니의 은혜(恩惠)를 96자 짧은 글 속에 다 응축(凝縮)시킨 필력을 보면 수도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전하는 열반할 때의 일화는 생사여탈(生死與奪)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음도 알 수 있다.
제자를 모아 놓고 내가 몇 월 며칠 열반하겠다, 하니 시봉사미(侍奉沙彌)가 스님! 그날은 안 됩니다. 정초(正初)라 바빠서, 안됩니다. 그랬구나! 그럼 언제 가면 되겠느냐? 다음날 가시면 되겠습니다. 그날이 돌아오자 열반에 들려고 하니, 사미가 또 안 됩니다, 그날은 49재가 있어서 바쁩니다, 49재 끝나고 가십시오, 그렇겠구나! 하고 49재 마치고 열반하려고 하니, 큰스님께서는 누구의 법맥(法脈)을 이었습니까? 제자들이 물었다, 비록 명리승(名利僧)이기는 하지만 서산대사(西山大師) 법을 원사(遠嗣)하였다고 하고 열반에 드셨다.
대사가 남긴 저술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 후기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진묵대사와 관련된 다양한 일화(逸話) 등을 기록한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考)라는 책을 남겼다.
가끔 불교 종단 내에서 이권 때문에 다투어 송사로 가는 신문 기사를 접할 때면 진묵대사와 같은 선승이 생각이 난다.
행여 완주지방으로 여행할 기회가 있으면 봉서사에 들릴 것을 추천한다.
절의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와 닿는 느낌은 해인사 백련암을 연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