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권공 묘갈명 서문을 아울러 붙이다侍衛權公墓碣銘 幷序
의성의 옥산(玉山) 비도동(飛道洞) 곤좌(坤坐) 등성이에 넉 자 높이의 봉분은 곧 고 시위(侍衛) 영가(永嘉) 권공(權公)의 유해가 묻힌 곳이다. 묘도에 석물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아 비석을 세울 것을 도모하여 후손 정인(正寅), 병휘(秉徽)가 나를 찾아와 명시(銘詩)를 청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희 선조의 세대가 벌써 5백 년이 가까운데, 세대가 멀고 전란을 겪는 통에 징험할 문헌이 없어 당시의 미세한 언행을 자세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당시에 저희 선조 행정(杏亭) 공께서는 상사생(上舍生)으로 경태(景泰) 연간의 절의를 지켜 처음 사촌(沙村)에 은거하여 누차 조정에서 불렀으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효제(孝悌)를 실천하고 시서(詩書)를 익히는 것을 한 가지 가법으로 삼았으니, 여러 자제들이 집안의 가르침을 정성껏 지켜 부귀공명에 뜻을 끊었습니다. 공의 삼형제 가운데 맏형은 성균관에 오르는데 그쳤고, 둘째 형은 음직으로 사맹(司猛)을 지냈고, 공은 막내인데 가승(家乘)에 시위라고만 적혀 있을 뿐 달리 살필 수 있는 행적이 없습니다. 증손과 현손에 이르러서는 운암(雲菴), 자락당(自樂堂) 공과 같은 이들이 문장과 덕행으로 이름이 났으나 선대의 사적을 기술한 글이 없는 것은 아마도 유지를 따라 세상에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백 년 뒤에 감히 멋대로 헤아려 말 할 수 없으니, 선조를 속이는 데로 돌아갈까 두려워 그럭저럭 이루지 못하다가 세월만 더욱 멀어지고 또 세상변화가 이와 같으니 잡초가 우거진 황량한 무덤에 더욱 표지가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계(世系), 생졸, 자손록만 써서 비석의 음기(陰記)를 지어 후인에게 남기는 것이 곧 잔약한 후손의 소원입니다. 집사께서는 가련히 여겨 도모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늙고 혼미하여 감당하지 못한다고 누차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못하였다. 이에 가승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공의 휘는 숭조(崇祖), 자는 숭지(嵩之)이다. 고려 태사(太師) 휘 행(幸)이 성(姓)을 받은 조상이다. 10대에 이르러 휘 통의(通義)는 관직이 부정(副正)이니 이분이 파를 나눈 조상이다. 고조 휘 유륜(有倫)은 사온 동정(司醞同正)이다. 증조 휘 아(雅)는 직장(直長)이다. 조부 휘 상의(尙宜)는 문과에 급제하고 현감이다. 부친 휘 식(軾)은 바로 세상에서 일컫는 행정(杏亭) 선생이다. 모친은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니 감목관(監牧官) 자첨(子瞻)의 따님이고, 충렬공(忠烈公) 방경(方慶)의 현손이다. 공은 을축년(1445, 세종27)에 태어나고 병자년(1516, 중종15)에 세상을 마쳤으니 향년 71세였다.
배위는 의인(宜人) 성주 이씨(星州李氏)이니 부친은 진사 동언(東彦)이다. 묘는 사촌 뒷산 자좌(子坐)에 있다.
3남을 두었으니 장남은 부장(副將) 수형(守衡), 차남은 우형(友衡), 막내는 직장(直長) 사형(士衡)이다. 직장이 호군 무성(武成)을 낳았다. 호군은 3남을 낳았으니 통사랑 희언(希偃), 희건(希騫), 현감 호 운암(雲菴) 희순(希舜)이다. 운암의 아들 수경(守經)은 증 이조 참판이고 호는 자락당(自樂堂)이다. 그 후손은 매우 많아서 다 기록하지 않는다.
명(銘)을 붙인다.
위로 어진 부모를 계승하고 上承賢父
아래로 이름난 후손 늘어섰으니 下列聞孫
그 유래한 바가 있음은 厥有所自
영지의 뿌리이고 예천의 근원일세 芝根醴源
자취가 없는 것을 어찌 한하리오 何恨蹟湮
간략하나마 집안에 전해오는 것 있으니 隱約家傳
작은 돌에 써서 片石載辭
이로써 묘도에 표시하네 用表于阡
경태(景泰) 연간의 절의 : 단종에 대한 충절을 말한다. 경태는 명(明)나라 경제(景帝)의 연호로 1450∼1456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조선에서 1453년(단종1)에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하여 일으킨 계유정란(癸酉靖亂)이 있었다. 이때에 사육신을 비롯한 여러 신하들이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켜 새로 등극한 세조의 조정에 벼슬하지 않았다.
白渚文集(下), 배동환 저, 김홍영, 남계순 역, 학민문화사(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