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한복용 선생님께서 네 번째 수필집을 상재하셨습니다
<<청춘아, 아프지 말자>>
<호텔에서의 시간은 모든 것이 완벽하다> 外 45편
도서출판 북인
골목 귀퉁이에 식탁 하나가 뒤집힌 채로 버려져 있다. 네 개의 다리가 하늘을 향해 항거 중이다. 식탁과 함께했을 의자들은 이리저리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다. 아직 멀쩡해 보이는 식탁. 어쩌다 하루아침에 수거딱지를 붙인 채 차가운 거리에 나앉았나.
내게도 한때 저런 식탁이 있었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밥때가 되면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굽고 찌개를 끓여 식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던 자리. 주방은 나에게 행복한 공간이었다. 나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고, 때로는 음악을 들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식탁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나는 그 식탁을 남겨두고 현관문을 나섰다. 가방에는 며칠 묵을 수 있는 옷가지들 뿐이었다. 다시는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쉽다거나 슬프지 않았다. 외려 홀가분했다. 비린 생선을 굽지 않아도 되었고 시간을 정해 밥상을 차리지 않아도 좋았다. 그의 비위를 맞추며 우아한 미소를 띠지 않아도 됐으며, 무엇보다도 나를 가장하지 않아도 되니 그만이었다. 현관을 나서자 또 다른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자신 있던 일이 떠나고 나니 너무나도 하기 싫은 일이 되었다. 당장 밥시간이 지나도 불안하지 않았다. 끼니 걱정 없이 밖을 돌아다녔다. 나의 밥상은 단출해졌고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 쓰였다. 그곳을 벗어나면서 나의 숨소리가 달라졌다.
그 식탁을 장만할 때 나는 좀 신중했다. 원형이나 정사각형보다는 직사각형에, 세련된 하이그로시보다는 클래식한 원목에 끌렸다. 생동감 넘치는 나무의 결이 무엇보다 맘에 들었다. 어머니는 나무 식탁이 쉬 상할 수 있다며, 오래 쓸 것이니 식탁보를 씌우거나 유리를 얹으라고 했다. 나는 나무 그대로의 문양이 좋았다. 어쩌다 식탁에 상처가 난다 해도 그것은 내 삶의 무늬가 될 것이었다. 가구점 사장은 고급 가죽을 두른 의자를 권했다. 나는 식탁과 같은 나무의자에 방석을 올려 쓰기로 했다. 나무 본연의 질감을 느끼고 싶었다. 때론 방석을 치우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나무에 걸터앉은 기분으로 시간을 보내고도 싶었다. 식탁은 아담한 주방에 비해 다소 큰 듯했으나, 한편에 꽃병을 놓고 장미무늬 찻잔을 은쟁반에 얹어 놓아두니 제자리인 듯 알맞았다.
식탁에 둘러얹아 식사하는 나의 가족을 상상해보았다. 아들 하나에 딸 둘이라면 좋겠다. 끼니마다 시끌벅적한 식탁은 우리가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어떤 음식을 내놓아도 행복해하는 나의 가족들. 내가 태어난 이유는 온전히 이 날들을 위해서다. 가끔 이 식탁 위에서 야식을 만들고 주말에는 도시락을 싸서 교외로 나간다. 음식은 정성이 반이라는 말은 진리 중에 진리, 내 가족을 위해 기꺼이 발품 팔 준비가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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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식탁 위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나는 고개를 떨군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다. 두고 온 식탁이 생각난다. 단란한 가정을 그렸던 나는 그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식탁을 떠났다. 마음에서 멀어진 사람을 위해 더 이상 밥을 짓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끝내 온기가 사라진 공간, 그도 나도 서로에게 한 뼘의 정도 내주지 않았다.
발길을 돌린다. 이 비 그치고 나면 저 식탁이 누군가에 의해 쓸모를 되찾았으면 싶다. 아니, 설령 부서져 땔감이 되더라도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여직 온전한 가정을 품어보지 못한, 내 아이들을 꿈꾸며 그리워하고 있는 것처럼, 버려진 식탁도 한때나마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버려진 식탁> 중에서
첫댓글 네 번째 출간이십니까?
한복용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곱고 야무진 그 모습처럼 알토란을 많이도 만들고 계셨군요.
이 글은 어디선가 읽었다는 기억.
이 원치않은 동면의 계절도 열정 앞에서는 힘을 못쓴다는 것을
수필가들이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요새 많이 들어요.
거듭 축하드립니다.
한복용 선생님, 축하합니다.
늘 알찬 작품으로 시선을 모으는 분이라 이번 작품집도 사랑 많이 받으리라 믿네요.
따뜻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버려진 식탁을 읽고 이름을 검색해 한참을 앉아 읽은 기억이 있어요. 역시! 네번째 수필집이라니 대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