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 전 시카고 휘튼대학에서 열린 KOSTA 한인유학생집회에
강사로 참석하는 중 김인수교수님과 김수지교수님 가족을 만난적이
있다. 그 때 나의 큰 딸 혜진이와 현우가 보스톤에서 교회청년들과
밴을 타고 몇그룹이 와서 참석하게 되어 김교수님 내외분께 인사를
드렸던 적이 있다. 그 때 김교수님 내외분은 우리 아이들에게 많은
덕담을 해주셨고, 격려를 해 주셨다. 그후 고려대학교 교수이셨던
김인수교수님은 갑작스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김인수박사님의
영향을 받은 이 땅의 크리스챤 지성인들은 지금도 그분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누구보다도 선교에 관심을 두신 김인수장로님은 한국의
선교사님들에게도 정신적 지주와 같은 분이셨다. 김인수교수님이 일찍
하나님 나라에 가신 것은 우리로서는 정말 아쉽고 마음이 아프다.
,
그리고 부인이신 김수지박사님은 보스턴 대학교대학원에서 간호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우리나라 간호학 박사 1호로 큰 화제를 모았으며,
‘사람 돌봄’ 이론으로 간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국제간호대상’과
간호사 최고의 영예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기장’을 수상했다. 또한
이화여대 간호대학교수(학장)로 재직하면서 2004년 서울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하여 2006년 졸업과 동시에 동문 겸 본교 총장이
돼 사이버대 출신 총장 1호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총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인생 말년에 편히 쉬며 후학들과 이 나라의 여성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실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69세인 2011년부터 4년동안 아프리카
가장 가난한 나라인 말라위 간호대학학장으로 섬기며 아프리카 의료자립을
위해 헌신해오다 2016년11월25일 백혈병으로 투병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주님께 받은 귀한 생명, 마지막까지 아까워하지 않고
온전히 산제물로 주님께 드린 삶이었다.
오늘 우리 후배들은 김수지선교사님의 추모현판식을 갖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나도 10여년전 GMP의 이사장으로 섬겼고 현재도 이사로서
섬기고 있으면서 이렇게 숭고하고 아름다운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말로 표현할기이 없다. 오늘 더 놀라운
이야기는 두분이 평생 살면서 모은 재산에 대해서는 단돈 10원까지도
재산 전부를 선교자 자녀들을 위한 시설을 하고 교육하는데에 다 기부를
했다. 물론 자녀들이 100퍼센트 동의를 했고 부모님의 뜻을 그대로
따랐다는 따님과 교회가족들의 중언을 들으며 도전과 또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선한 감정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현판식을 부착하면서 환한 미소의 사진을 보면서 여전히 살아 우리곁에
계신것만 같아서 미안하고 송구해서 사진속의 선교사님 얼굴을 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귀한 분들을 빨리 데려가실까?
그리고 찌지리 같은 나 같은 사람만 남겨 놓으신건가? 정신을 차려야
겠다. 눈물을 머금고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쏟아 선을 이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