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를 안 쓸 수 없는 이유 문 숙 지나간 인연이 그리워서 안 쓸 수 없고 첫사랑이 잘 산다는 말에 배가 아파서 안 쓸 수 없고 주말농장에서 오이를 도둑맞아 안 쓸 수 없고 머리 커진 자식한테 상처받아 안 쓸 수 없고 이런 내가 밴댕이 소갈딱지 같아서 안 쓸 수 없다 지하 바닥에서 잠드는 영혼을 보며 안 쓸 수 없고 자식에게 버려진 노인을 보며 안 쓸 수 없고 공원 녹지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안 쓸 수 없고 밧줄에 묶인 개를 보며 안 쓸 수 없고 이런 내가 그들의 울음밖에 될 수 없어 안 쓸 수 없다 돌 틈 사이로 새싹을 밀어 올리는 민들레를 보며 안 쓸 수 없고 새끼에게 제 살점을 내어주는 가시 물고기를 보며 안 쓸 수 없고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새둥지를 보며 안 쓸 수 없고 갓길에서 환하게 핀 들국화를 보며 안 쓸 수 없고 이런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눈길밖에 될 수 없어 안 쓸 수 없다 부엌에서 남의 살점을 요리하며 안 쓸 수 없고 내 돈지갑이 다른 생명의 피울음임을 알고 안 쓸 수 없고 내 손길에서 죽어나간 병아리를 보며 안 쓸 수 없고 안 쓸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아서 안 쓸 수 없고 내 삶이 다 죄라서 안 쓸 수 없다 억울해서 쓰고 비참해서 쓰고 가슴 아파서 쓰고 미안해서 쓰고 팔자 같고 운명 같아서 안 쓸 수 없다 나한테 시는 고작 그런 것이라서 쓰고 그래서 큰 시인이 되기는 글렀다는 생각에서 또 쓴다 |
첫댓글 진실한 삶을 그려내는 것이 시인이 할일입니다
명풍 시인이 되는것이 아니라
찌그러진 냄비에 라면을 끓여도 맛나는 글이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