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史記 47회》
☆名參謨 張良☆
이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니, 가을인듯 합니다.
오늘은 유방의 책사(策士)였던 명참모(名參謨) 장량(張良)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군대에서 참모(參謨)란 지휘관을 보좌하는 사람들로 꾀를 내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하는 등 지휘관의 손발이 되어 군사적 이익을 위해 일하는 장교들을 말합니다.
군대의 지휘관 밑에는 인사 ㆍ정보ㆍ작전ㆍ군수 등의 참모가 있고 대통령에게는 수석보좌관들이 있습니다.
또 장관ㆍ지방 수령ㆍ공,사조직에도 오너들 밑에 참모들이 편성되어 있습니다.
장량은 유방이 진나라를 토벌할 때 유(留)에서 만나 유방의 참모가 되었습니다.
이후 항우를 무찌르고 漢나라를 창업하는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
이런 장량은 원래 韓나라 귀족 출신이었으며 진시황이 통일전쟁을 할 때 韓나라를 쳐 없앴기 때문에 전재산을 팔아 무사들을 모아 진시황이 전국을 순시할 때 박랑사에서 진시황을 암살하려고 철퇴를 가했으나, 황제의 수레가 아닌 다를 수레를 공격했기 때문에 실패하여 도망을 다니다가 황석공이란 도인으로부터 태공병법(太公兵法), 일명 육도삼략(六韜三略)이라는 병서(兵書)를 받아 공부를 하여 전략전술에 관해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장량은 유방의 책사(策士)로서 유방에게 틈틈히 병법을 가르쳤고 신출귀몰한 꾀를 제공하여 천하제패의 주인공으로 만들었습니다.
함양성을 점령했을 때 주저앉아 주색잡기에 빠지려는 유방을 건져내고 홍문의 잔치에서 유방을 빼내어 위기를 모면하였으며 역이기가 유방에게 잘못 건의하여 유방이 곤경에 빠질뻔 하였을때 역이기의 잘못된 건의에 대해 여덟가지로 반박하여 위기를 모면 하였습니다.
또 야전사령관 한신 한사람으로는 부족하다며 항우 밑에 있는 명장 경포를 빼내오고 제나라 전영의 휘하 장수 팽월을 빼내와 유방의 장수가 되게 하는 꾀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유방은 한신, 경포, 팽월 세명의 유능한 야전사령관을 움직여 항우를 쉽게 궤멸시킬 수 있었습니다.
장량은 인간적으로도 우수한 인재였습니다. 논공행상을 할 때 유방이 3만호를 식읍으로 지급하였는데 자신에게 너무 과분하다며 이를 사양하고 3천호만 받았 습니다. (주택으로 계산하여 3만호면 그 당시 인구밀도로 보아 대도시 하나쯤 되었음)
그리고 "제가 주공을 위해 할일은 다 끝났으니, 초야로 돌아가 농사나 지으며 여생을 보내겠습니다." 라며 자신의 공으로 더 이상 유방에게 부담을 주려고 하지 않고 사표를 내고 초야로 돌아갔는데 그곳이 지금의 장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량의 호가 자방(子房)이었는데 후세의 왕후장상들이 유능한 자기 참모를 부를 때 "나의 자방"이라는 별칭으로 사용할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지요.
계유정란(癸酉靖亂)으로 단종을 제거하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계유정란의 일등공신인 한명회를 부를 때 항상 "나의 자방"으로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조도 한명회의 꾀를 빌려 대권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