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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시 창작을 가르치던 시인은 금년 2월 정년을 맞았다. 간혹 캠퍼스와 인근 식당에서 만나던 그의 모습을 앞으로는 좀처럼 볼 수 없게 되었다. 정년을 앞두고 새로이 펴낸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읽다가, 문득 시인의 자화상을 보는 듯한 작품을 발견했다. ‘세월’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오랜 '세월' 시를 쓰면서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쓴 것이라고 짐작된다. 처음 시를 쓰면서 주변의 '하얀 민들레'를 비롯한 모든 것에 시선을 던지다가, 문득 꽃이 핀 '언덕에 엎드려 시를 쓰'던 소년은 아마도 처음 시를 쓰던 시인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그리고 '천지사방 꽃향기 가득'한 세상을 '걷다가 시 쓰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밤을 맞은 시인이 아침과 무지개를 그려봤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제는 '무지개 뜬 초원의 간이역 / 이슬밭에 엎드려' 시를 쓰는 '한 노인'은 지금의 시인을 형상화한 것이리라. 자신의 시처럼 늘 넉넉한 마음을 사람들과 세상을 맞는 시인의 일상에 행복이 깃들기를 빌어본다.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천천히 감상하다가, 관심이 많이 갔던 몇 작품들을 감상해보자.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웃고 있군요
샌들을 벗어 드릴 테니
파도 소리 들리는 섬까지 걸어보세요
(곽재구의 '채송화' 전문)
이 시집의 맨 처음에 실린 작품인데, 단 4줄로 이런 시를 지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인의 역량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2월 퇴직을 해서 이제 '자유인'이 된 시인의 세상을 보는 관점을 읽어낼 수 있을 듯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게 핀 채송화를 보고 느낀 시인의 감정이 그대로 잘 묻어나고 있다고 여겨진다. 채송화가 활짝 핀 모습이 마치 시인에게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군요'라고 말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항상 웃는 모습의 시인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화자는 아마도 바닷가에 핀 채송화를 보고 이 시상을 떠올렸을 것이라 짐작된다. 꽃에 시선을 빼앗긴 화자에게 더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는 듯, 꽃은 '파도 소리 들리는 섬까지 걸어보'라고 권유하는 것처럼 상상력을 발휘하는 시인의 감성도 흥미롭게 느껴진다.
나는 강물을 모른다
버드나무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둘이 만나
강물은 버드나무의 손목을 잡아주고
버드나무는 강물의 이마를 쓸어준다
나는 시를 모른다
시도 나를 모른다
은하수 속으로 날아가는 별 하나
시가 내 손을 따뜻이 잡는다
어릴 적 아기 목동이었을 때
소 먹일 꼴을 베다
낫으로 새끼손톱 베었지
새끼손톱 두쪽으로 갈라진 채 어른이 되었지
시가 내 새끼손톱 만지작거리며
괜찮아 봉숭아 물 들여줄게 한다
나는 내 시가 강물이었으면 한다
흐르는 원고지 위에 시를 쓴다
저녁의 항구에서 모여드는 세상의 모든 시를 읽을 것이다
(곽재구의 '세상의 모든 시' 전문)
어떤 이들은 세상의 모든 일들을 알고 있노라 떠벌리기도 하지만, 세상의 극히 일부분만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시인은 시조차도 바로 그러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시를 모른다 / 시도 나를 모른다'고 강조하면서, 시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를 창작한다. 굳이 '시가 이것이다'라고 정의하지 않아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 비친 모습을 그려낼 뿐이다. 그렇게 시를 쓰다 보면 마치 '은하수 속으로 날아가는 별 하나 / 시가 내 손을 따뜻이 잡'아서 새로운 작품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때로는 '내 새끼손톱 만지막 거리며 / 괜찮아 봉숭아 물들여주게' 하는 것도 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나는 내 시가 강물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토로하고, '흐르는 원고지 위에 쓰를 쓰'는 것이다. 그렇게 흘러서 '저녁의 항구에서 모여드는 세상의 모든 시를 읽'는 것이 시인의 소망이듯, 나도 역시 그렇게 나에게 다가온 시들을 읽으며 살아갈 것이다.
파수강 칠십리
겨울비 오네
영변 약산 사오십리
삭주 구성 칠팝십리
누가 접었나
나뭇잎 배 낮달 동무 되어 흐르는데
얼굴이 파란 새가
남으로 가는 영을 넘네
(곽재구의 '파수강 칠십리' 전문)
이 작품의 제목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 있다. "파수강 : 해방 이전 청천강상류를 파수강이라 불렀다. 정주에서 도보로 한나절 길. 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는 파수강 변에서 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는 내용이나 제목에 붙은 주석으로 보나 김소월을 떠올리며 지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3행의 '영변 약산'은 김소월의 시 <진달래 꽃>에 언급된 지명이며, 4행에서 언급된 <삭주 구성>이라는 제목의 시도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소월의 시를 읽으면서 시인을 꿈꾸고 작품 창작을 시작했다는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5행과 6행에서는 윤극영의 동요 <반달>을 연상시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남으로 가는 영을 넘'는 '얼굴이 파란 새'는 아마도 시인이 그리는 소월의 모습일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우리고물상 지나
용당식물원 지나
낙원주유소 담장 위 노란 호박꽃
어린 태양의 축제 같아라
시가 찾아와 깜빡이등 켜고
길가에서 시 쓰는데 경찰이 달려오네
주정차 금지 구역 열심히 설명하는 젊은 경찰에게
면허증을 건네니
뭐 하셨소? 묻네
호박꽃이 좋아 시를 쓰는 중이었소, 하니
호박꽃이 좋으오? 또 묻네
아니오 평소엔 자두꽃을 좋아한다오
그가 천천히 면허증을 건네주며
다음번엔 자두꽃 핀 시골길에서 시를 쓰오, 하네
(곽재구, '자두꽃 핀 시골길' 전문)
이 작품에 담긴 상호들은 나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순천을 가로질러 흐르는 동천가의 한적한 길에 위치한 간판들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근의 아파트 공사로 인해서 교통량이 많아졌지만, 예전에는 자동차 통행도 그리 많지 않았던 길이다. 간혹 고가로 지나는 기차소리가 들려오기도 하지만, 차를 타고 그 길을 가다 보면 인근에 핀 꽃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아마도 시인 역시 차를 타고 가다가 처음에 마주친 '낙원주유소 담장 위 노란 호박꽃'을 보며, '어린 태양의 측제 같'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순간 문득 '시가 찾아와 깜빡이등 켜고 / 길가에서 시'를 쓰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서 그려질 듯하다. 그곳에 '주정차 금지 구역'이었던 듯, 시인은 여기에서 경찰과의 대화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호박꽃이 좋아서 시를 쓰는 중'이라는 시인의 설명에, '호박꽃이 좋으'냐고 묻는 경찱과의 대화는 아마도 시인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장면일 것이다. 그러면서 '평소엔 자두꽃을 좋아한다'는 시인에게, 면허증을 거네주며 하는 경찰의 한 마디. '다음번엔 자두꽃 핀 시골길에서 시를 쓰'라는 기분좋은 대화로 작품은 끝맺는다. 시인의 시를 쓰는 감성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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