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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린이 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내 안의 어린이에 대한 생각들을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로 삼게 되었다. 단지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여전히 그들을 대할 때 '평등한 존재'라기보다는 '보호해야할 존재'로 여기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타자화하지 않고 그들을 진정한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자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아동문학 평론가로서 저자는 다양한 아동문학 작품과 글들을 만나면서, 어린이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관념을 누구보다 깊이 느꼈을 것이라 여겨진다. 실제 어린이 책을 보면서도 지나치게 어른의 시각에 의해서 재단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적지 않기에, 저자의 이러한 평론의 관점을 주의 깊게 지켜보게 되었다.
1부에서는 ‘아동청소년문학과 여성주의’라는 제목을 통해서, 작품을 분석하고 그 속에 나타난 ‘여성’의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아동청소년문학에서 여성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들을 대상으로 저자는 그 특징과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몽실언니>의 주인공인 몽실의 형상을 단지 불행한 현대사의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것으로 치부하지 말고,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에서 '여성 일반'이 겪었던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도 다양한 형상으로 여성 어린이들의 모습들이 작품으로 형상화되고 있지만,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여기면서 스스로를 긍정하는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평론가인 저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어린이책의 문제점과 장점이 충분히 제시되고 있다고 여겨졌다.
청소년 페미니즘을 주목하는 저자에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서사물들에 그려진 여성들의 형상은 비판적으로 다가온다. '위안부'를 소재로 하는 소설에서는 주로 여성들의 '순결성'과 '피해자성'만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을 넘어 역사를 직시하고 당시 여성의 사회적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성형이라는 소재를 다룬 작품들에서도 그것을 '비난과 옹호'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음을 적시하면서, '소녀들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시선과 이들의 순결을 강조하는 이중 잣대를 걷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최근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청소년 소설들 역시 퀴어라는 주제가 '성별 이분법의 규범 자체를 부정하고, 나아가 지배담론의 문화 동질화에 저항하는 정치성'을 획득하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청소년 대상의 페미니즘이 이제는 그 폭이 넓어졌음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최근 청소년문학에서 SF소설이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며 창작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속에 드러난 여성상 특히 모성에 대한 내용은 전통적인 가부장제도에서의 어머니 역할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를 이러한 경향을 일컬어 '가부장적 성 인식과 낭만적 사랑에 포위된 여성'의 형상이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경향을 극복하려는 작가들의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지만, 앞으로 창작되는 작품들에서는 사회의 소수자로서의 여성의 모습이 더욱 부각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밖에도 현재의 SF 소설들에서는 복제인간이나 인공지능 로봇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적지 않지만, 역시 기존의 성 역할에 기반한 여성의 모습이 전형적으로 드러난다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아울러 전형적인 여성상은 유년동화나 어린이 영웅을 등장시키는 작품들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동시, 아동청소년문학 장르론의 실험실’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동시에 드러난 면모를 비평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동시'는 성인들이 쓴 바람직한 어린이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라는 기존의 잣대가 이미 '해묵은 동시'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인이 쓴 '동시'는 작품성과 함게 논의되지만, 어린이들이 쓴 시는 '문학성'이 부족한 것처럼 인식되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어린이들이 직접 창작한 작품들을 높이 평가해야한다는 논의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작자가 어린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작품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동시'에서 작가가 누구인지보다 작품에 '어린이 인식'을 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성세대에게 '고정화된 어린이인식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구체적인 어린이의 현실을 발견하고, 어린이 독자가 그 텍스트를 해석하도록 움직이게 하는' 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하겠다.
동물을 소재로 한 동시들의 문제들을 지적하기도 하고, 동시의 말하기 방식에 대해서도 비평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아울러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대상으로 삼아, 최근 시도되고 있는 동시의 다양한 실험적 모색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러 작품들에 나타난 엄마의 이미지는 상투적이지만, 또한 새로운 면이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과거와는 다른 환경이 초래된 만큼 동시의 상상력도 그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당위를 역설하기도 한다. 저자는 다양한 동시들을 살펴보면서, ‘바람직한 어린이의 형상’을 그려내기보다 ‘어린이의 생각과 현실’ 제대로 담아내는 것이 바로 ‘어린이 인식’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어린이, 소수자, 그리고 아동문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아동문학을 어린이와 소수자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아동문학을 바라보는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동시를 대상으로 아동청소년문학의 장르론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3부의 '이야기로 탄생하는 이야기'는 다양한 청소년소설을 대상으로 한 실제 비편이라고 할 수 있으며, 4부에서는 '되돌이표로 부르는 노래'라는 제목으로 동시 작가들에 대한 비평이 제시되어 있다. 뚜렷한 관점을 지닌 앞부분의 글들과는 달리, 3부와 4부의 글들은 대체로 어린이잡지 및 책의 해설에 수록된 글이라 비평이라기보다는 작품 해제나 소개글에 가깝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아동청소년문학에 대한 비평이 그리 많지 않은 현실에서, 작가와 비평가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저자의 글들이 반갑게 느껴졌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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