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예술제는 그 명칭에 나타나 있는 것과 같이 국조 단군 할아버지의 건국이념과 개천 사상을 선양하고, 배달민족의 고유한 문화, 예술, 철학, 국사를 계발하여 계승하고, 국민정신 함양에 이바지하고자 함에 의의가 있다. 그 의의는 개천예술제 서제의 절차 곳곳에 깃들어 있었다.
서제에 앞서 성화 채화, 봉송 및 안치의 의례가 있었는데 다른 서제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의례 절차다. 전국 체육 대회의 경우 마니산 첨성대에서 채화를 하여 봉송을 하는데 개천예술제 채화는 壬辰大捷癸巳殉義壇(임진대첩계사순의단) 앞에서 대형 볼록 렌즈를 이용하여 태양광으로 채화를 했다.
채화에 앞서 제례악 연주와 무희들의 전통무용 축하무대도 있었다.
제례 순서는 먼저 시민 대표로 구성된 인사들이 구령에 맞춰 호국타종을 33번치는 의식에서 출발했다. 호국타종 33회의 근원은 조선시대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신호 파루를 33번치는 전통이 있었고,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간주되는 수미산의 꼭대기에 사방에 각 8천성이 있으며, 중앙에는 제석천(帝釋天)이 머무는 선견성이 있기 때문에 합쳐서 모두 33성이 된다. 그러므로 33천이라고 한다. 이 경우 33번 타종은 중생의 구원과 국태민안을 기원한다는 의미다. 또, 독립 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과도 연결 지어 생각하면 민족 수호의 의지를 결집시킬 수 있는 그런 효과도 있는 것이다.
제례 절차에서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 각 도에서 취토한 흙을 제단에 헌토 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그 점이 특이했다. 이 광경을 목격함으로써 나도 모르게 민족의 영원함과 이 땅을 지키다 순국하신 선열의 애국정신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초헌, 아헌, 종헌의 절차는 유교 의식과는 좀 다르게 진행했다.
동기가 아헌을 할 때 일어서서 촬영을 했다. 그 뒤의 의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의식이 끝나고 박물관 앞까지 행진이 있었는데 나는 여기까지만 참석하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