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도 시는 남아, 여류시인 이옥봉《옥봉》, 장정희 장편소설, 강
(p.286)
평생 이별의 한이 병이 되어
술로도 못 고치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네
이불 속 눈물은 얼음장을 흐르는 물과 같아
밤낮으로 흘려도 그 누가 알아주나
- 여인의 정(閨情) -
이옥봉(李玉峰).
허난설헌이나 신사임당을 들어본 이는 많아도, 이옥봉은 퍽 낯선 이름일 것이다. 조선 천재 여류시인 이옥봉은 승지 조원의 첩실로만 살기에는 아까운 인물이었다. 조선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서녀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훨씬 더 행복했을지도 모를 비운의 인물, 이옥봉.
장정희가 쓴 이 책 《옥봉》은 그녀의 신산했던 삶을 한 폭의 그림처럼, 유려한 문체로 그려낸다. 출생부터 죽음까지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소설적 허구와 사실을 절묘하게 섞어 쓴 작가의 필력이 책장을 술술 넘기게 한다.
▲ 《옥봉》, 장정희 장편소설, 강
이야기는 바야흐로 1630년(인조 8년), 사신단 일행으로 명나라를 찾은 조희일이 명나라 대신의 집에 초대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명나라 대신은 손때로 반질반질해진 책 한 권을 꺼내온다. 바로 《옥봉 시집》이었다.
아버지 조원의 첩실이었던 그녀가 평소 시를 즐겨 쓰는 것을 모르지 않았던 조희일은 먹먹한 비감에 잠긴다. 여자의 신분으로 감히 시를 지어 파주 목사의 송사에 관여했다는 까닭으로, 임진왜란 직전에 아버지에게 내쳐진 그녀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신도 모르던 터였다.
명나라 대신은 동쪽 바다에 머리 없는 시체 하나가 출몰한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을 모아 주검을 수습하러 갔다고 했다. 건져내서 살펴보니 여인의 몸이로되, 몸은 노끈에 겹겹이 감긴 종이로 고기에게 뜯기지 않은 채 온전했다.
종이에는 시가 쓰여 있었고, 기름칠한 듯 글씨는 하나도 지워지지 않은 채였다. 백지로 둘러싸인 안쪽에는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 쓰여 있었고, 그 아래로 여인이 쓴 것 같은 시가 수백 편 적혀 있었다.
그 대신은 안타까운 마음에 여인을 묻어주고 시편들을 일일이 필사하여 책으로 만들었다. 여인의 시에는 임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게 배어 있었다. 대신은 여인의 한을 풀어주고 싶었지만 어떤 여자인지, 조원이 누구인지 알 방도가 없던 차에 마침내 조희일이 나타난 것이다.
(p.25)
“시에 적힌 글자 한 자 한 자마다 피를 토하듯 오열로 가득 차 있었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글자 속에 틀어박혀 우는 영혼을 풀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소. 시편을 옮겨 적는 내내 몇 날 몇 밤이고 여자의 울음이 떠나가질 않더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필사가 끝나 시집이 완성된 날에야 여인의 울음이 그쳤으니 어찌 영험하다 하지 않겠소이까?”
그러면 어찌하여 이옥봉은 머나먼 명나라 바닷가까지 떠내려가게 된 것일까. 그녀는 덕흥대원군의 후손인 이봉의 서녀였다. 이봉이 바깥에서 데리고 들어온 자식이었으나 자신을 끔찍이 아꼈던 아버지 덕분에 시와 문장을 배우며 부족함 없이 자라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봉의 처, 장 씨의 냉대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혼기가 찬 자신에게 장 씨가 구해온 혼처는 생각지도 못했던 곳들이었다. 결국 그녀는 당시 촉망받는 문사로 이름을 날리던 조원의 소실이 아니면 혼인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고, 조원의 집에 혼담을 넣어달라고 간곡히 청한다.
사랑하는 딸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이봉은 삼고초려 끝에 조원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고, 마침내 이옥봉은 조원의 소실이 되어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물론 조원의 정실부인 이 씨는 항상 어려운 존재였고, 소실이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차별과 냉대는 있었지만 말이다.
처음에 조원은 이옥봉에게 시를 짓지 못하게 했다. 그녀의 시가 자칫 세간에 알려져 자신의 앞길에 누가 될까 염려해서였다.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여성이 시를 짓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탓도 있었다.
그녀는 조원을 너무 사랑했기에 그 조건도 감내했다. 그러나 점차 불타는 시혼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시를 짓기 시작했고, 조원도 그녀의 탁월한 재능을 귀하게 여겨 문객들이 오면 함께 시를 지으며 어울리곤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촉망받는 인재였던 조원은 당쟁의 틈바구니에서 계속 외직으로만 돌다 결국 파직당하고 말았다. 본래부터 그릇이 넓지 않았던 탓일까. 그의 마음도 서릿발같이 차가워졌다. 자신의 가문에 흠이 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바로 이 시기에 이옥봉은 파주 산지기의 처로부터 소를 아전들에게 빼앗겼으니 제발 도와달라는 청을 받는다. 파주 목사와 조원이 친분이 두터우니 청을 넣어달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청탁을 넣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여긴 그녀가 거절했지만, 산지기의 처는 애처롭게 매달렸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붓을 들었다. 이 시가 빌미가 되어 집에서 내쳐질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도저히 산지기 부부의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어 송사에 쓸 수 있는 시 한 수를 써 주었다.
(p.261)
세숫대야를 거울로 삼고
물로 기름 삼아 머리를 빗습니다.
이 몸이 직녀가 아닐진대
어찌 제 남편이 견우겠습니까?
남편이 견우가 아닐진대 어찌 소를 훔쳤겠냐는 뜻으로, 이백의 시를 절묘하게 비튼 작품이었다. 그러나 예사롭지 않은 이 시를 본 파주 목사가 이옥봉이 써 준 시라는 것을 알고 조원에게 송사에 개입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했고, 그렇지 않아도 움츠러들어 있었던 조원은 그만 이옥봉을 내쫓고 만다.
옥봉은 다시 조원이 불러주기를 간절히 기다렸지만, 끝내 연락은 오지 않았다. 몇 해를 기다려도 기별이 없자 절망에 빠진 그녀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을 피하다 마침내 한 많은 목숨을 끊는다. 그리하여 그녀의 주검은 흘러 흘러 명나라에 닿게 된 것이었다. 엄청난 재주를 가졌으나 그 재주를 품을 도량이 되지 않았던 남편, 그리고 천출이라는 신분의 굴레 속에 신음하다 생을 등지고 말았다.
그녀가 좀 더 진취적으로 생각했더라면 어땠을까. 조원의 도량이 부족함을 탓하며 그냥 친정으로 돌아가 시 짓기에 매진했다면 그녀의 운명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하긴, 어쩌면 지금의 기준으로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재단하는 것이 무리일지도 모른다.
이옥봉의 재주는 안타깝게 꺾였지만, 그녀의 시는 여전히 남아 조선 여류시인의 문재(文才)를 보여주고 있다. 온몸에 시를 두른 채 죽었다는, 사실 믿기 힘든 이야기일 수도 있는 그녀의 죽음이 더욱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이 책은 그녀의 삶을 오롯이 느껴보는 동시에 여인의 정과 한이 담긴 시도 함께 음미해볼 수 있는 멋진 소설이다. 허난설헌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그녀의 빼어난 시재(詩才)를 이 기회에 마음껏 감상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