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끝나고 비도 부슬거리고 내리겠다. 집으로 바로 들어오기가 뭣해서
비오는 길을 좀 걸을까하다간 명옥언니를 붙잡고 늘어졌지요.
" 언니야. 저녁 수업 들으러 가기 전에 영화 한 편 때리자..."
그랬더니 시간이 어중간했던 명옥언니 내 유혹에 넘어갔지요.
마침 CGV는 언니가 가는 학교와 같은 방향에 있었기 때문에
시간도 얼추 맞출 수 있을 거 같고
귀동냥으로 얼핏 들으니 요즘 개봉한 영화중에 주홍글씨가 재밌다길래
그 걸 보자고 제안을 했지요.
언니는 흔쾌히 응했습니다. 수업시간에 조금 지각할 것까지 각오하고서
지금부터 주홍글씨를 본 후기를 써보겠습니다.
잘 기술이 될까 의문이지만 한번 읽어봐 주세요.
잘 지은 시는 읽고나서 왠지 다시 들춰보게 되고
감칠맛을 느끼게 되고 자꾸 입맛을 다시게 되는데
영화 역시 잘 만든 영화는 머릿속에서 자꾸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공통점이 있다고나 할까요?
영화를 막보고 나섰을 땐 ' 뭐 이래 ?' 라며 실망을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자꾸 생각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거예요.
텔미썸씽을 만든 감독이 만들고
한석규 이은주 그리고 성현아, 엄지원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요즘 세태를 반영한 듯 불륜, 삼각관계, 동성애, 임신중절, 모든 소재를 다 뭉뚱그려놨더군요.
단순히 총이 좋아서 경찰대학을 들어가 형사가 된 한석규는
바깥에서 보기엔 일에도 사랑에도 성공한 사람 같지만 결국 아내는 아이가 생기기만 하면
중절을 해버리는 독한 여자였고(다 사연이 있어서지만...)
애인인 이은주가 그토록 바라는 반지 하나 손에 끼워줄 수 없는 무능한 남자였어요.
(결국 마지막 실려가는 장면에선 자기 손에 끼었던 반지를 이은주 손에 끼워놨지만...)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어 성장한 요즘 20대 젊은이들 사이에 형성된 성격장애라 그래야하나?
게임을 하다가 지면 엎고 다시하고(Reset),
그렇게 젊지도 않은 국회의원들이면서도
청문회에서 할 말 못할 말 다 떠벌이다가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의
무책임한 현상을 영화에서도 목격했습니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행한 행동에 대해 무수히 사과하는 주인공
" 다 너 때문이야 " 라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자문해 봤습니다.
" 사랑해 너무 사랑해" 를 절규하듯 부르짖으며 벌이는 정사 씬에서는
참 사랑의 의미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유혹하는 자와 유혹받는 자의 묘한 쾌감을 느끼게 하는 사진관에서의 성현아 누드는
너무 말라서 볼품이 없데요. ㅎㅎㅎㅎ(그래도 좀 볼륨감이 있어야....)
두 주인공이 트렁크에 갇혔을 때 느끼는 폐쇄감으로 인해 관객인 우리들의 몸이
다 움츠러들 정도로 영상 처리를 한 걸 보면 촬영기술이 많이 늘었단 생각도 듭니다.
하여간 싱겁게 반전이 있고
적당히 공포스러울 정도의 피범벅이 된 화면이 나오긴 하지만
여전히 영화의 결론은 내 손에 있네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사랑했으면 다 괜찮은거냐고 반문하는 마지막 장면과 한석규의 절규가
묘한 여운을 남기며 화면엔 출연자의 이름이 올라가고
좌석엔 불이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적어서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나면 본전 생각이 덜 할까요?
참 명옥언니~~~
나 땜에 강제로 영화봤는데 재미까지 없다고 느끼는 거 같아 엄청 죄송하구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