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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어느 행사 때 들은 ‘탈북민 3만 명도 껴안지 못하면서 (통일 후) 2500만 명을 어떻게 껴안을 것이냐’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동안) 지원(사업)에만 너무 매몰돼 있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편견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탈북민도 많다고 하니까 (탈북민 정착 정책을)전반적으로 재검토해서 사회통합으로 나아가야겠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이달 중순께로 예상되는 ‘국내 입국 탈북민 3만 시대’ 도래와 관련, 지난달 21일 서울 반포한강공원 세빛둥둥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탈북을 직접적으로 권유하는 등 탈북민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고 있지만 정작 정부 정책은 현실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처럼 그동안 탈북민 정착지원제도 관련 정부와 탈북민 간의 입장 차는 상당히 컸다. 정부는 각종 지표를 통해 탈북민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순조롭게 정착하고 있다고 밝혀 왔지만, 실제 정책 수혜자인 탈북민 입장은 사뭇 달랐다.
실질적 직업 교육 절실…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김정은과 동일시해선 안돼
우선 통일부가 정착개선 지표로 선전하고 있는 탈북민의 실업률·생계급여 수급률 등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통일부가 2015년 11월 기준으로 밝힌 국내 거주 탈북민의 실업률은 4.8%로 전년도 대비 1.4% 감소한 수치였다. 또한 2011년 12.1%, 2012년 7.5%, 2013년 9.7% 등과 비교해봤을 때 꾸준히 낮아지는 추세다. 국내 거주 탈북민의 생계급여 수급률과 학업 중도탈락률도 각각 2011년 46.7%, 4.7%에서 2015년 25.4%, 2.2%로 지속 하락하고 있다.
수치상으로는 통일부 탈북민 정착지원제도가 가시적인 효과를 거둔 것 같지만, 질(質)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탈북민들은 정착지원제도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는 한편, 단점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탈북민 최광범(가명·43) 씨는 “고용 문제가 개선됐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를 고용하는 이유는 ‘탈북민 고용지원금’ 때문 아니냐”면서 “하나원에서 배웠던 것이 전혀 통하지 않은 곳이 바로 한국 사회다. 영문도 모른 채 회사를 그만둬야 했을 때 한국 사회에 정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50~70만 사이의 고용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한국에 정착한 지 5년 미만의 초창기 탈북민에 한정되다 보니 일부 악덕기업주들이 ‘탈북민 고용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탈북민으로 교체해가며 회사를 운영하는 실태를 꼬집은 것이다.
탈북민 예술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경희(가명·37) 씨도 “탈북민 여성들 중 상당수가 탈북민 예술단의 일원(임시직까지 포함)으로 일하는 현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면서 “먹고 살 방법이 없어 할 수 없이 택한 길이 노래와 춤이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어 체계적·실질적인 직업교육과, 특히 여성 탈북민에 대한 직업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현실적 어려움과 함께 국내 입국 탈북민들의 성공적 정착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은 한국 사회의 잘못된 시선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선 탈북민에 대한 이유 없는 멸시·차별 등이 여전히 존재한다. 심지어 핵 실험·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자행하는 김정은 정권에 대한 분노가 탈북민 전체에게로 전이되는 경우도 있다.
청년사업가 탈북민 백성호(가명·28) 씨는 “북한 인민들은 북한에서 태어난 죄로 김정은 정권 밑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 나는 그것이 잘못됐음을 깨닫고 남한으로 탈출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핵 실험하고 미사일 쏘고 하면 왜 내가 욕을 먹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내가 발 딛고 살아야 할 곳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강경희(가명·25) 씨도 “핑계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탈북민으로 살아가는 게 참 힘들다. 2등 국민으로 보는 시선이 싫다”면서 “결국 한국 사회는 돈이 최고인 것 같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지만 조금만 참고 나중에 떳떳하게 살 것이다”고 말했다.
탈북민 “직접 정책 짤 수 있게 해 달라”…통일부 당국자 “참여폭 넓힐 것”
이런 상황에서 통일부가 고심 끝에 들고 나온 게 이른바 ‘사회통합형’ 정책이다. 이달 중순이면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되는 새로운 탈북민 정착지원 정책의 기본 골자는 ‘지원’에서 ‘자립·자활’로의 전환이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최근 “새 정책은 탈북민 스스로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기존 정책·제도상의 문제점을 점검하는 한편 통일이 되었을 때 탈북민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통일준비 차원과 맞물려 있는 정책이다”고 밝혔다.
이어 이 당국자는 “정책이 사회통합형으로 가면서 큰 방향에선 제도·고용·복지 등 분야별로 전문성이 있는 부처들에서 기존 제도의 문제점까지 토론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관련부서 간 개선 방향에 대한 실무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통일부가 각계 전문가 및 탈북민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기획·추진하고 있는 ‘사회통합형’ 정책에 대한 기대의 목소리가 크지만, 우려도 만만찮다.
한국 입국 6년차인 박대길(가명·45) 씨는 “많은 탈북민이 입국한 지 5년 정도 지나면 한국이 싫어진다고 이야기 한다”면서 “이번 정책도 (탈북민에 대한)한국 국민의 근본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책을 만들면서 탈북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어떤 탈북민의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는 통로가 부족하다 느낀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탈북단체 대표 역시 “탈북민을 위한 정책이 개선된다는 건 좋은 현상이다”면서도 “문제는 그 정책의 결정·집행 과정에 탈북민들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통일부에서 탈북민 정착 관련 연간계획·기본계획 등을 수립할 때 탈북민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는지 모르겠다”면서 “탈북민들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좀 더 많은 탈북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북민의 참여가 배제되어 있다는 불만은 집단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김성민 ‘북한인권법 실천을 위한 단체연합’의 상임대표는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후문 앞에서 ‘탈북민 없는 북한인권법 시행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인권재단·북한인권기록보존소 등에 탈북민 참여를 강하게 요구했다.
김 대표는 “사실상 북한인권법 통과에 기여한 사람들은 탈북민들이다. 그런데 정부가 당사자인 탈북민들을 외면하고 북한인권법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을 채용해 그들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통일부 당국자는 “정부는 점진적으로 탈북민의 의사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구조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어 “구체적으로 ‘사회통합형’ 정책이 나오게 되면 알 수 있겠지만 우선은 탈북민들을 위한 조직인 남북하나재단을 통한 탈북민 참여폭을 넓혀 갈 계획”이라면서 “현재는 자문위원 등으로 참여하는 분이 많이 계신데, 이것보다 조금 더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