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무레 요코 글/ 김난주 옮김/ 블루엘리펀트
일본 글에는 특유의 뭐랄까, 건조한 느낌이 있다. 그 느낌은 왠지 모르겠지만 한국어로 번역한 후에도 남아 있다.
거기다가 축소 지향적인 일본 문화 특유의 성향과 합쳐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거대한 모험 이야기나 큰 사건보다는 일상의 단면,
작은 규모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많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큰 굴곡 없이 잔잔하게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서사 구조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일례로 영화 <카모메 식당>같은 경우 엄마나 아빠는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동생은 '아무 사건도 안 일어나는데 대체 이런 걸 왜 보는지 모르겠다'며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나는 그냥 중립에 가깝다. 아주 좋아하지도 않지만, 또 아주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선택권이 있다면 보통 잔잔한 일본 작품들은 아무래도 우선순위 뒤쪽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그랬는데 요 며칠간 세상이 하도 말도 안 되게 판타지처럼 돌아가는 바람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다.
전 국민이 그럴 것이다. 미디어가 지나치게 발달해 버리는 바람에 보기 싫고 듣기 싫어도 어딜 가나 뉴스를 접하게 된다.
이메일을 보내려고 켠 인터넷 포털 창은 말할 것도 없고, 버스나 지하철, 택시에서도 끊임없이 속보가 흘러나온다.
처음에야 다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아 보겠다고 두 눈 크게 뜨고 손 부여잡고 TV를 들여다봤지만, 절망만 커질 뿐이다.
경악과 분노와 슬픔은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로, 피로로 나타난다. 평소처럼 자는데도 이상하게 하루 종일 피곤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간 지루하고 건조하다고 잘 집어들지 않았던 일본 소설이 눈에 들어온다.
잔잔한 것이 읽고 싶었다. 큰 감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한 일상 이야기를 읽었다. 제목처럼 빵과 수프를 정성들여 만들며
고양이와 함께하는 나날을 보내는 40대 독신 여성의 이야기였다. 식당을 경영하는데도 서두르거나 바쁜 느낌이 없다.
그저 단 하나뿐인 종업원과 둘이서 좋은 재료를 뭉근하게 푹 끓이며 꿋꿋하게 좋은 빵과 좋은 수프를 만드는 이야기다.
왜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좋았다. 아주 기분좋고 편안하게 읽었다.
천천히 만든 빵과 수프를 꼭꼭 씹어먹으며 늘어지게 낮잠 자는 고양이를 쓰다듬고 싶어지는 느낌이었다.
모두가 다시 한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나날을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고맙다~
너가 있어서...
너네들이 있어서...
마음이 스산하여 훌쩍 떠나려던 발걸음을 돌려 까페 모퉁이에 앉아 네 글을 읽었다.
고맙다.
위로가 된다.
곰돌이를 쓰다듬던 손길이 그런 마음이었구나...
오래걸려만든 빵과 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