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전에 벌써 입에 침이 마른다.
한국을 설명하려고 하면, 심호흡을 하면서 안에서 솟아오르는 그 벅참을 내안에서 다스리면서 이야기해야 한다.
골고루 전반적으로 놀랄만큼 차분해지고, 편안해졌다. 남대문 시장에 갔던 그 옛날, 처음엔 고운 표정이었던 점원들이 물건을 사지않고 나가려고 하면, 코너로 몰아넣고 무언의 협박을 했던 그 기억이 아직도 살아있는데, 이번 방문에서는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백화점이든지, 노점이든지 물건을 팔기위해 협박을 하는 분위기는 없어졌다. 대신 도움이 필요할 때, 시원하게 도와주고 있다는 그런 진정한 셀러의 기품을 느꼈다. 백화점에서 롱코트를 하나 샀는데, 한 6 군데는 돌아다녔다. 모두 입어보도록 도와줬고, 그럼에도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 다른 곳을 들려보고 필요하면 다시 방문하겠다는 우리(나와 언니)를 순수히 보내줬으며, 다시 들렀을 때 웃는 낯으로 맞았다.
사실은 당연한 것이지만 한국의 옛모습을 기억하는 내게는 그 경험이 신선했다. 같은 층에 있는 가게들이라 우리가 휩쓸며 다니는 것을 목도했을텐데,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가 인정받고 있었다. 나는 단 한 가게라도 얼굴빛이 변할 것이라고 언니를 따라다니면서 걱정했는데, 소비자인 언니나 판매원이나 모두 너무 자연스러웠다. 마치 판매원도 소비자가 될 수 있으므로, 둘의 역할이 바뀔 수도 있으며, 그러므로 내가 대접받고 싶은 그대로 대접을 해줘야 한다는 것을 인지한 행동이라고 할까? 충분히 돌아다니고, 결국 가격과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옷을 나와 언니는 골랐다.
순천에서 올라올때 우리 둘다 버스에서 말없이 잠을 잤다. 그러다가 화들짝 깨었는데 고속버스 휴게소라 하였다. 멍해진 눈을 비비며 함께 내렸는데, 이런 미래도시가 내앞에 있다니. 15분 휴식시간이라는데, 휴게소에서 몇시간 놀다갔으면 좋을 것같았다. 기차를 탔으면, 이곳도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오고가는 방문객들을 두팔벌려 반겨주는 그곳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보였다. 나는 여기서도 우선 떡볶이와 꽈베기를 샀고, S는 찰옥수수를 샀다. 그야말로 먹을 수만 있다면 서너가지 더 사고 싶었다. 한번도 맛을 보지 못한, 모양도 재료로 다양한 간편식, 그 맛을 보지못한 것이 지금까지 안타깝다.
휴게소 충격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서산갈때 들렀던 휴게소는 화장실이 어마어마했다. 어느 호텔도 그리 좋지는 않으리라. 화성휴게소는 아마도 화장실이 특화된 곳이 아니었던 가 싶다. 캐나다에서 장거리 운전할때 팀호튼스와 주유소 정도가 있으면 그것을 휴게소로 생각하고 만족했었는데, 한국에서의 휴게소 경험 때문에 캐나다문화가 재미없고 보잘것 없어 보인다. 한국을 방문하고 나서, 완전 줏대가 없이 한국을 칭송하는 친한 인사가 되었는데, 이런 소소한 재미가 큰 역할을 했다.
휴게소 다음은 지하철역.
기차를 다 막는 스크린 도어가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게다가 시인들의 시와 각종 알아둘만한 정보가 스크린 도어에 있다. 내가 오던 첫날 나래가 스마트폰에 다운받아준 카카오 지하철맵은 나같은 사람에게 소중한 앱이었다. 어느 곳에 가고 싶은지 입력하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 "어느 역, 몇번 출구에서 만나자" 이렇게 만남이 정해지면, 그곳을 찾아가는 나의 007 작전이 시작된다. 3번 이상을 갈아타야 할때도 있고,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꽤 잘 찾아다녔다. 16년만에 와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않고, 나홀로 임무를 완성해나가는 기쁨이 있었다.
지하철에 나오는 안내방송은 그야말로 국제적이었다. 영어, 한국어 어떨땐 일본어와 중국어로까지 안내를 해준다. 외국인이 와서 대중교통 이용할 만 하겠다. 처음에는 기차 도착을 알리는 음악소리에 화들짝 놀랬다. 지금도 귀에 쟁쟁한 "얼씨구나"란 국악소리가 있기도 하고, 귀에 익은 피아노 소리도 있다. 우선 아무리 좋은 음악소리라도 음향시스템이 따라오지 않으면 그 음악이 좋게 들리지 않는데, 한국의 지하철은 스피커 작업이 완벽해 보였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안내방송이나, 매 구간 안내방송등이 귀에 쏙쏙 들어오면서, 세련되어 감히 뭐라 토를 달 수가 없겠더라.
핑크의자를 만들어놓고, "초기 임산부에게도 좌석을 양보합시다"란 문구를 써놓았던 것이 신선했으며 "이 칸은 냉방을 약하게 하고 있습니다(하절기)" 등 사람들의 욕구에 최대한 맞춰서 행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볼수 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지하철을 통해, 현재는 코로나 바이러스 대책등이 교육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통제가 안되는 곳이 없을 것 같은 행정과 곳곳이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은 안전한 국가이며, 국민들의 행복추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기분좋은 자각을 가져왔다. 어떤 아가씨가 전화기를 놓고, 전철에서 내렸는데, 60대 아저씨가 그녀를 부른다. 전철은 문이 닫히고 있는 중이고. 그녀가 돌아보자, 아저씨가 전철 문앞에 전화기를 놓는다. 그녀는 차창 저밖에서 아저씨에게 인사를 한다. 아저씨가 그녀를 부르지 않았으면, 그 전화를 찾기위해 여러 사람이 애써야 했었을 것이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면 대부분 차타러 가는 곳에 상가가 있다. 이 상가가 밀집되어 있는 곳들도 있고, 몇몇 상점만이 있는 곳도 있더라. 시간이 빡빡해서 집중해서 볼 시간은 없었으나 물건들이 품질이 떨어져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내 눈에는 모두 저렴하다. 들고갈 수만 있다면 사고싶은 것이 널려있다. 배고픔을 달래주는 거리 음식점을 호시탐탐(배 고픈 시간) 노리다가 오뎅과 찹쌀떡으로 한끼를 해결한 적도 있었다.
어느날은 언니가 경영하는 피부샵에 갈 일이 있었다. 나오라는 출구까지는 잘 찾아나왔는데, 언니가 방향을 잘못 알려줘서, 한참 헤맨적이 있다. 구글맵으로 주소를 찍고 전화기를 켜고 걷기 시작했는데 나를 서쪽으로 한참을 가게 했다가 다시 동쪽으로 한참을 가게 했다. 다리가 아플 지경이 되어서야, 생각이 나서 네이버 지도를 켰더니,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나래가 네이버 지도를 다운받아 주면서, 한국에서는 네이버 지도를 이용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기에 망정이지. 구글 지도로는 결코 찾을 수 없었다.
거리를 헤매면서도 기뻤던 것이 인도가 상당히 넓었다. 소나무 가로수가 너무 멋졌고, 길가에는 한참씩 쉬었다 가고 싶을 정도의 작은 공원들도 조성되어 있었다. 어찌 좁은 나라가 이리 정돈이 잘되어있을꼬, 놀라울뿐이었다. 산책로와 자전거길까지, 나도 주민이 되어 길을 걸어본다. 1시간 정도 헤맸지만, 기분좋은 헤맴이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내가 주로 머물렀던 분당지구, 찾아다녔던 강동구, 성동구, 강남 등만의 이야기는 아닐까? 예전에 자주 갔던 종로, 명동, 광화문 등은 이번에 방문하지 못했다. 지하철도 분당선, 신분당선, 8호선, 9호선 등을 자주 탔는데, 그 지하철만이 가진 것들이었나? 어쨋거나 거미줄처럼 서울과 외곽을 연결해준 지하철 선과 버스 노선 등은 전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카드 한장이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한국의 대중교통에 완전 반하고 말았다. 그뿐인가? 성남고속버스 터미날에서 버스를 타면 전국 어디나 갈수도 있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시골구석에 사는 친구에게 찾아갔던 이야기는 다음번에 하자.
버스를 탔던 어떤때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밥 지으면서 들었던 그 방송을 실시간으로 들으니, 신기했다. 정작 버스안내방송 때문에 자주 끊어지고, 소음에 묻혀 그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어쨋든 유튜브로만 존재하는 방송이 아니었다는 점이 신기했다. 신기할 것 하나 없는 것들이 내겐 다 신기했다.
첫댓글 한국에서 선진사회를 경험하신 이야기..
저도 같은 느낌이었어요
구청이랑 공공기관을 포함해 어디를 가나
화장실들이 어쩜 그렇게 아늑하고
깨끗한지,,,
전철이 있어서
다니기도 너무 편리하고요
맛있는 곳도 많고
특히 2018년 집을 팔고
돈을 미국으로 송금할때
옛날같이 공무원들의 갸세..
일을 신속하게 하려면
돈이라도 좀 찔러주어야 하던 그런풍조는 없어지고
한국 공무원, 은행원들이
아주공정하고
친절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해 주어서
모든일을 닷새만에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
참 감사했지요
대한민국 최고 입니다
지하철은 중국도 한국처럼 발달되긴 했어요~~
오랜만에 고국방문에 좋은점 많이 보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사람으로서 고국방문을 오랫만에 하시고,
긍정적인 면이 많다시는 것들이 우리는 으례 그런 편의시설등을 이용하면서
지내 왔다 싶습니다.
그간에 한국에서는 교육에 힘들 많이 쏟았고, 그 교육으로 또 훈련된 전문인력이
많아서 이번 코로나사태처럼의 위급한 상황에서 의료진들은 자기 목숨을 담보로
일선에서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한국이 코로나로 입는 세계적인 경제적 어려움에서도 잘 넘어가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노력을 각자의 입장에서 할 것입니다.
이런 좋을 글 남겨 주셔서 감사 합니다.
그러게요, 한국가면 맛있는 길거리 음식도 많고,
고속버스 휴게소에 가면 음식과 군겆질 거리가 다양하니 먹을것이 많더군요.
저도 한국 마지막으로 간지 5년이나 더 지났는데, 화장실까지 깨끗해졌고,
지하철 앱도 있다니 더 반갑고, 말씀처럼 한국이 선진사회네요.
저도 이번 크리스마스때 한국가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가게 될것 같습니다.
민디님 글을 읽으니 한국에 더 가고 싶어지군요.
저는 한국살다 외국살다 한국살다 또 외국살다 곧 다시 한국에 가요 항상 귀국하고 첫 몇 달은 어리버리하면서 신속한 서비스의 우리나라에 감탄했다가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화도 났다가 냉탕온탕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ㅋㅋ 그래도 한국에 얼른 가고 싶은데 코로나때문에 미뤄졌네요. 이번에 한국에 가서 살게 되면 제가 운전도 해야하는데 얼마나 또 저를 당황시킬지...ㅎㅎㅎㅎ(운전은 스위스에서만 해 봤어요 ㅋ)
한국의 발전은 세계어느나라도 못따라오는 질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쾌거입니다
이곳에 살면서도 외출하고 다녀오면 깜짝놀랄 정도로 구석구석이 발전하는곳같아요
특히 해외 여행후 돌아와 보면 정말 세계 최고의 성공 DNA를 가진 우수민족임을 공감 합니다
그런데 왜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고 사람들이 사나와 지고 어린이들은 짜증을 많이 내는지
물질문명보단 정서적 푸근함이 적어서인가 걱정도 됩니다
시기와 질투도 많구요 암튼 그런거들이 발전의 동력이 됐나 좋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