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史記 48회》
☆行政의 달인 蕭河☆
소하(蕭河)는 장량(張良)ㆍ한신(韓信)과 함께 漢나라 삼걸(三傑) 중 한사람입니다.
소하는 유방과 같은 고향 패현에서 태어나 패현의 행정관료로 있었는데 그 무렵에 유방이 패현의 작은 행정구역에서 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하는 현(縣)의 예하 기관의 면장인 유방을 도와주면서 서로 친하게 되었고, 진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킬 때 수장으로 유방을 추천한 사람이 소하였습니다.
유방이 진나라 수도 함양을 점령하였을 때는 아무도 모르게 진나라 문서고(文書庫)에 들어가 인구현황, 전국지도, 농지현황 등이 적혀 있는 문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 문서들은 소하가 유방을 위해 후방에서 병력을 충원하고 식량을 조달하고 보급로를 개척하는 등 군사작전을 지원하는데 유용하게 활용되었습니다.
소하는 도망가는 한신을 붙들어다 유방에게 천거하여 대장군에 임명하게 하는 공도 세웠습니다.
한신은 원래 항우 밑에서 하급장교로 경비나 하는 보잘것 없는 직위에 있다가 항우의 하는 짓이 별 볼일 없다고 판단하고 유방군에 옮겨 붙었는데,여기서도 군수물자를 취급하는 부서에 보직된 것에 불만을 품고 탈영을 하는데, 평소에 한신을 눈여겨 보고 있던 소하가 쫓아가 붙들어 와서 유방에게 한신이 대장군감이니 바로 의식을 갖추어 임명식을 하자고 건의하여 성사되었습니다. 소하가 사람을 보는 안목이 높았던 것이지요.
소하는 전쟁 중에 승상에 임명되어 漢나라 건국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며 태자 효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모면시켜 주어 황후 여치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는데, 의심이 많았던 유방으로부터 감옥에 갇히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춘추시대 월나라의 책사 범려는 오나라에 복수를 하고 월왕(越王) 구천(勾踐)을 춘추5패에 오르게 한 후 대장군 직을 내놓고 제나라로 망명을 떠나면서 대부 문종에게 "구천(월왕)은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영화는 함께 누릴 수 없는 인물이니, 화(禍)를 당하기 전에 떠나십시오."라는 편지를 보냈는가 봅니다.
소하는 일시적으로 감옥에 갇히기는 하였으나, 다행히 유방이 나중에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 승상에 임명하여 유방의 사후까지 승상직을 유지하다 유방이 죽은 2년 뒤인 기원전 193년에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소하가 마지막 눈을 감을 때 효황제가 찾아와 "다음 승상은 누구로 했으면 좋겠소?" 하고 물었을 때 "조참(趙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소하와 조참은 무슨 일로 한 때 크게 싸워 사이가 안좋았던 관계였지만, 소하는 국가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감정을 일소하고 조참을 건의하였던 大人이었습니다.
제한된 공간에 다 열거 할 수 없지만, 소하는 중국 역사에서 관중ㆍ제갈공명과 함께 3대 재상으로 추앙받는 탁월한 인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