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뿔인문학연구소 나무랑문학아카데미)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 2021/05//목
[2021, 시 깊이 읽기-7]
비
비는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가장 좋은 기회를 줍니다.
비는 해를 가리고 하늘을 가리고 세상 사람의 눈을 가립니다.
그러나 비는 번개와 무지개를 가리지 않습니다.
나는 번개가 되어 무지개를 타고 당신에게 가서 사랑의 팔에 감기고자 합니다.
비오는 날 가만히 가서 당신의 침묵을 가져온대도 당신의 주인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비오는 날에 오신다면 나는 연잎으로 웃옷을 지어서 보내겠습니다.
당신이 비오는 날에 연잎옷을 입고 오시면 이 세상에는 알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이 비 가운데로 가만히 오셔서 나의 눈물을 가져가신대도 영원한 비밀이 될 것입니다.
비는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가장 좋은 기회를 줍니다.
--『님의 침묵』/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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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상관물, 비와 시와 화자의 관계에 대하여:
--비에 대하여 쓸수록 비는 물러난다. 비에 대하여 읽고자 하나 비는 화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시를 쓸 때, 객관적 상관물을 입고 태어난 시이기는 하지만 그 시에서 비의 역할은 간접적이고 한시적인 껍데기(형식)일 뿐, 정작 화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
**변주의 기술: 비를 통해 시에 접근하지만 화자(나)는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당신(주관적 대상)과의 사랑*을 위치시킨다. 그러나 비는 시의 주요등장인물(묘사적 대상)이다.
**내 사랑을 둘러싼 객관적 상관물을 주시하면서 내 사랑에게 비밀스런 사랑을 고백한다면?
**내 가슴 속 주관적 대상이 있다면, 이 세상의 객관적 상관물은 모두 시를 향해 복무할 준비가 된 상태다. 그러므로 문제는 객관적 상관물에 대한 감식안이 아니라, 주관적 대상과의 비밀스런 사랑에 있다.
그 사랑! 고백할수록 시는 빛난다. 아니 어둠의 동굴에서 절규할수록 시는 빛난다. 어느 순간 그 절규가 한 언어로 탄생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