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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무슨 책이든지, 대중들과 소통하지 않는 내용은 외면당하기 쉽다. 여전히 전문 용어와 난해한 표현들이 난무하는 ‘전문가적 언어’로 도배된 책들이 적지 않지만, 이른바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도 이제는 보다 쉽게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이 드물지 않다. 그동안 자연과학 분야의 책들을 어렵게 여겨 좀처럼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최근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설명하는 책들이 있어 나도 종종 접하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복잡한 이론이나 공식들은 애써 암기하려하지 않고, 다만 그 이론적 배경만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연과학이 더는 두렵고 회피해야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수학 분야마저도 이른바 스토리텔링을 위주로 쉽게 설명하는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과거에는 전문가들에 의해 집필된 책들은 난해한 용어들과 어려운 내용들로 대중서로서는 적당하지 않다는 이미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가급적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보다 쉽게 접근하려는 책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역시 비전공자의 눈으로 보더라도, 쉽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게 보였다. 물론 여전히 자연과학에 대한 거리감을 좀처럼 극복하지 못한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는 것을 굳이 밝혀두기로 하자.
'과학과 함께하는 인류의 삶'이란 부제의 이 책은 자연과학의 기초적인 내용에서부터 세부적인 분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 '교양과학연구회'의 이름으로 출간된 이 책에는 모두 18명의 전문가들이 집필자로 참여했다고 소개되어 있다. 아마도 대학에서 자연과학의 기초적인 내용을 다루는 교양과목의 교재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문에 해당하는 ‘들어가며’에서 ‘이 책은 일반인이나 고등학교 학생도 관심만 있다면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자연과학의 지식과 이해의 정도가 조금은 깊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해 말 환경공학을 전공하는 지인이 담당했던 교양강좌가 있어, 1주일에 한 번씩 모두 12번의 특강을 청강했던 적이 있다.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이 적지 않았지만, 사실 강의보다는 뒤풀이로 유혹하는 바람에 청강을 시도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강의를 듣는 동안 나에게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최근 첨예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환경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정립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청강생 대부분이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았던지라, 강의를 듣는 내내 강사는 개념이나 전체적인 흐름만을 먼저 파악하도록 요구했다.
당시에는 물음표를 달고 지나갔던 내용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내용이 환기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나의 과학적 지식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예전에는 듣더라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내용들이 어렴풋하게 정리되기 시작한 정도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지닌 장점은 자연과학의 특정 분야만이 아니라, 기초적인 개념과 지식으로부터 자연과학 세부 분야에 대한 관심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다. 그래서 전체 7장으로 구성된 내용들을 다 읽고 난 후에, 자연과학의 분야와 기초적인 개념들이 조금씩 머릿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하겠다.
'과학의 본성‘이라는 제목의 1장에서는, 모두 2개의 절에서 자연과학의 기초적인 개념을 설명하고 과학의 의미와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토머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언급한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은 물론, 객관 세계를 인식하는 과학적 관점을 지칭하는 ‘세계관’이라는 용어가 자연과학에서 비롯되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두 개념들은 자연과학뿐만이 아니라, 어느덧 사회과학과 인문학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이 책에서는 2장의 ‘과학에서 법칙의 의미’ 항목에서 ‘세계관’의 문제를 과학법칙의 변화 과정을 통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밖에도 2장에서는 3개의 절을 통해서, 에너지의 개념과 뉴턴의 ‘열역학법칙’들에 대해서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보는 세상에 대한 설명’이라는 제목의 3장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탄생한 배경과 함께 우주의 탄생과 지구의 존재 의미에 대해서 2개의 절을 할애해서 다루고 있다. 이른바 ‘빅 히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우주와 지구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지극히 유한한 인간의 생애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간들의 지식이 축적되어 광대한 우주의 역사를 설명하는 이론들이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작은 세계에 대한 설명’이라는 제목의 4장에서는 ‘원자’로부터 ‘물질’이 만들어지고, 그것의 결합으로부터 생명이 존재하게 된다는 내용이 다뤄지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이 이른바 ‘미시세계’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어지는 ‘우리가 발딛고 사는 지구에 대한 설명’이라는 제목의 5장에서는 지구의 역사와 환경의 변화와 같은 ‘거시세계’의 문제가 다뤄지고 있다. 특히 여기에서는 현재 지구 환경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기후 위기’에 대해 깊이 있는 내용들이 다뤄지고 있다. 12시를 기준으로 현재 지구의 환경이 어느 시점에 와있는가를 따지는 ‘지구 환경시계’라는 개념이 있다. 12시가 되면 환경적으로 지구의 종말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데, 그동안 인류에 의해 무분별한 개발이 지속되면서 현재 지구의 환경 시계는 12시에 거의 다다른 상태라고 한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기후 위기가 닥친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의 삶의 방식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관점이 제시되어 있다.
6장의 ‘우리와 닮은 생명에 대한 설명’에서는 ‘진화론’과 ‘유전’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자연과학의 분야 가운데 ‘생물학’에서 주로 다루는 분야라 하겠는데, 다윈과 멘델 등 익숙한 이름과 그들의 학설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7장의 ‘미래 문명을 여는 과학적 기술’에서는 기존의 과학의 발전과정을 설명하면서, 미래의 과학기술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시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수식이나 복잡한 과학적 지식은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자연과학에 대해서 이제는 조금은 친숙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문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도 자연과학을 다룬 내용들도 겁먹지 않고 하나씩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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