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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의 경전인 <시경(詩經)>은 동양의 정치와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작품의 창작 당시의 역사와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고 있다. 중국의 뛰어난 문인인 굴원의 <초사(楚辭)>와 더불어 후대의 시가 문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당연히 조선의 문인들에게도 문예 수양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시경>은 모두 305편의 한시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흔히 ‘시삼백(詩三百)’으로 지칭되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문인인 다산 정약용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학문을 수양하면서 시경을 중시해야 한다는 다음의 언급을 남기기도 했다.
“삼백편(시경)은 충신, 효자, 열부, 친우들의 측달충후(惻?忠厚)한 마음의 소산이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며,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시가 아니며, 진실을 찬미하고 허위를 풍자하며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생각이 없으면 시가 아니다.”(정약용의 <다산전서>, ‘아들 학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처럼 정약용은 자신은 유배에 가있던 상황에서도 아들에게 <시경>이 지닌 효능을 설명하면서, 이것을 통해서 학문을 닦고 수양하기를 권했던 것이다. 비단 이러한 인식은 정약용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일반적인 관념으로 볼 수도 있다 하겠다. 우리나라에 <시경>이 전래된 것은 대체로 삼국시대 초기로 확인되는데, 특히 성리학을 주요 이념으로 받아들였던 조선시대에는 주자의 주석이 붙은 <시집전>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국가적인 사업으로 <시경>의 구결과 언해 작업을 지속적으로 시행했으며, 학문이 숙달된 신하들이 임금에게 행하는 경연(經筵)의 주요 자료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학자들은 주자의 학설을 수용하면서, 부분적으로 이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자학의 이념에 경직된 당시의 풍조에서 주자의 해석과 조금이라도 다른 견해가 제출되면, 올바른 학문을 어지럽히는 자란 뜻으로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공박당하는 경우도 발생했던 것이다.
나 역시 그동안 <시경>을 공부하면서 여러 차례 강독을 했던 경험이 있으며, 그 텍스트는 단연히 주자의 주석이 달린 <시집전>이었다. 처음에는 내용 파악을 하는 것에 급급해서 그 해석을 당연히 받아들였으나, 여러 차례 거듭된 공부를 하면서 주자의 해석이 너무 경직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작품을 보면 젊은이들의 분방한 감정을 표출한 사랑 노래라고 보이는데, 주자는 이를 왕족이나 귀족의 특정 사례를 예거하는 '교훈적 내용'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컨대 문학 작품을 도덕 교과서로 읽어내라고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여전히 성리학적 유풍이 남아있는 한문학계의 유가 경전에 대한 주류적 해석은 주자의 해석을 거의 신봉하다시피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문학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작품을 해석한 이 책을 보면서, 이전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새로운 <시경>에 대한 관점이라고 받아들였다. 이는 아마도 성리학적 유풍이 중시되지 않은 중화권 출신의 저자이기에, 인문학적 상상력에 기초한 새로운 해석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무엇보다 문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저자의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 적극 공감할 수 있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그리고 이제는 <시경>을 경전의 지위에서 살짝 내려놓고 문학 텍스트로 읽는 해석이 보다 많이 발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책에는 '고대 중국 문인의 공통핵심교양이 된 3천년의 민가'라는 기다란 부제가 붙어 있다. 즉 <시경>을 경전이 아닌, 민중들의 노래인 '민가'로 읽겟다는 의미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모두 세 항목으로 구성된 이 책은 먼저 <시경>의 성격을 ‘3천년의 민가’라는 관점에서 읽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동안 한문의 뜻을 위주로 접근해왔던 기존의 관점과 달리, 저자는 표의문자로서의 한문 표기가 지닌 독특한 체계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당대의 노래를 수집한 것이기에, 단지 문학 작품이 아닌 노래 특히 민요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야만 작품 속에 반영된 당대의 풍속과 사람들의 인식을 읽어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두 번째 항목에서는 ‘귀족의 기본 교재’로서의 <시경>의 성격과 특징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몇 편의 작품을 예로 들어, 주자의 해석에 익숙한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문학 작품으로서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어, 대단히 흥미롭고 유익한 기회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마지막 항목에서는 여러 편의 작품을 예로 들어 당시 ‘서민들의 단편들’이 작품 속에 어떻게 반영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기존의 해석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저자의 해석이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비로소 저자의 관점을 만나서 주자의 해석에 갇혀있던 <시경>의 풍부한 면모가 드러날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작품을 해석하는 저자의 문학적 식견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었지만, 고전 문학 작품을 하나의 틀에 가두지 않고 자유롭게 읽어내는 접근 시각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졌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은 <시경> 수록 작품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지니는 의미는 <시경>에 대한 새로운 독법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저자의 ‘문학적 독법’이 돋보이는 <시경>에 대한 보다 풍부한 또다른 연구가 있다면, 다시 접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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