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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평가되는 소설가 황석영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인 <수인(囚人)>은 실정법을 어겨 감옥에 갇힌 사람을 일컫는데, 흔히 죄수나 수형인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저자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제목을 <수인>으로 붙였다는 것은 아마도 그 자신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던 시절의 기억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언급하는 ‘감옥’의 의미를 책 표지에 두른 띠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황석영이 몸으로 써내려간 숨가쁜 기록.”
실제로 그는 5.18 광주항쟁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1989년 방북하여 당시 살아있던 김일성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이후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국가보안법’에 의한 처벌을 잠시 피하기 위해 망명을 선택하여, 방북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약 4년 동안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 망명생활을 겪어야만 했다.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이후 수감되어 5년 여 동안 감옥에 갇혀야만 했는데, 전체 2권으로 출간된 그의 자서전은 이 당시의 삶을 가장 앞에 내세워 1985년부터 1993년까지의 기록이 앞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경계를 넘다’라는 부제를 붙인 1권에서는 ‘출행(1985~86)’과 ‘방북(1986~89)], 그리고 ’망명(1989~93)‘ 등의 제목으로 항목을 나눠 당시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각 항목이 끝나는 부분에서 ’감옥‘이라는 제목으로 숫자를 붙여 자신의 ’수인 생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1권의 4항목과 2권의 4항목 등 자서전은 모두 8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사이사이에 자신의 감옥 생활을 처음부터 출옥할 때까지 8개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는 셈이다. 방북 전후의 숨가쁜 과정을 더듬어 내려간 다음 1권의 마지막 항목은 ‘유년(1847~56)’이라는 제목으로, 비로소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의 삶의 행적을 추억하고 있다.
‘불꽃 속으로’라는 부제를 붙인 2권에서는 ‘방랑(1956~66)’과 ‘파병(1966~69)’. ‘유신(1969~76)’과 ‘광주(1976~85)’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삶의 궤적을 그려내고 있다. 끝내 민족의 분단을 야기했던 한국전쟁(1950)의 기억과 젊은 시절의 방황을 거쳐 월남의 전투 현장에 파병되었던 기억들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자신의 작품들이 어떻게 창작되었는지를 밝히고 있어 이미 읽었던 그의 작품들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또한 박정희 정권 시대의 유신과 그로 인한 민주화 투쟁의 과정이 언급되고, 특히 자신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광주항쟁과 그 진실을 알리기 위한 힘겨운 투쟁의 과정들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의 일대기를 통해서 저자가 겪었던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일별할 수 있었다면, ‘감옥’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수인 생활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독자들은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지구상 최후의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한반도의 상황이 바뀌지 않았지만, ‘통일의 당위’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그의 행적은 분명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이외의 글은 되도록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굳게 지키고 있던 저자가 스스로의 삶을 되새기는 ‘자전(自傳)’ 형식으로 기록을 남긴 이유를, 다른 이의 ‘개인의 인생이 아니라 한국문학의 중요한 자산’이라는 설득을 통해 집필하는 동안 ‘온전히 나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로 인해서 독자인 나로서도 저자의 작품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한국 현대사의 흐름과 그가 접했던 문단의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하겠다. 이제 저자는 비로소 실정법을 어겨 갇혔던 ‘시간의 감옥’에서는 풀려났지만, 소설가로서 ‘언어의 감옥’과 여전히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 갇혀 이 시대를 증언하는 작품을 창작해낼 것으로 기대한다.(차니)
*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리뷰입니다.(2025.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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