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을 마치고 돌아오면, 늑대 바람이 우우우 울며 마중 나오던 푸른 집 식구 수대로 라면이라도 끓일라치면, 찢어진 루핑 지붕 날개가 요동치며 헬리콥터 소리를 내던 집… -중략- 가볍게 지나가는 소나기에도 솜이불이 스펀지처럼 젖어버리던 집 민들레 엄마 이 집 저 집 뛰어다니며 꾼 돈으로 월세 내어도 자꾸 밀려 이삿짐도 못 꾸리고 야반도주했던 집 파란 페인트칠 벗겨진 철 대문이 24시간 열려 있고, 집주인과 함께 살지 않아서 잠시나마 지상의 낙원…”
-송유미의 시 「화석」
송유미 시인이 유작처럼 남기고 간 시집 점자편지를 읽기 시작하자 그녀의 딸(시인)이 시집과 함께 보내온 곡비가 제 눈물샘에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을 했습니다.
‘루핑지붕’ 때문에 어린 날의 흑백사진이 오버랩 되어 와 몇 날 며칠 제 설움 때문에 곡비보다 더 슬피 울었는데도 눈물의 수압 때문에 실리콘으로 막아두었던 제 눈물샘의 둑이 무너져버렸습니다.
마른 다시마처럼 두꺼운 종이에 콜타르를 입혀 빗줄기를 미끄럼 태워 처마 밑으로 흘려보내던 방수용 종이지붕, 루핑은 육이오 전쟁 중에 태어난 저와 종전 다음 해에 이승으로 나온 송유미 시인에게는 기억 밖으로 묻어버리고 싶은 이름입니다.
이불 보퉁이와 솥단지만을 들고 피난 나온 사람들은 달동네 벼랑 위에 터를 잡고 미군 부대 쓰레기장에서 일본말로 ‘하꼬’라고 불리던 종이박스를 주워 와 벽을 만들고 루핑으로 지붕을 덮었습니다. 겨울이면 종이벽에 마른버짐처럼 성에꽃이 피어 단칸방의 어둠을 지워내곤 했습니다. 그 집은 우리들의 집이었고 송유미 시인의 집이었습니다.
바람도 산 아래쪽보다 먼저 불고 성난 야수처럼 숨을 몰아쉬던 곳, 바람에 날아가지 않으려고 루핑지붕은 맷돌호박 같은 돌들을 이고,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있었습니다. 벼랑 위의 종이집을 사람들은 ‘하꼬방’이라 불렀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놀잇감이 없어 불발탄을 가지고 놀다 팔이 잘린 제 친구도, 폭발음에 놀라 며칠 동안 실성을 했던 동무들도, 어린 날 적산가옥이 불타버려 집을 잃었던 송 시인도 하꼬방에서 살았을 겁니다.
갯고랑 같은 달동네 골목을 갈 짓 자로 휘젓던 바람이 늑대 울음을 울면 바람에 찢긴 루핑 지붕의 날개가 헬리콥터 소리를 내며 하꼬방 속 사람들의 수심을 묻어버렸습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천상병 시인의 이승과 어머님 심부름으로 왔다가 심부름 끝내고 어머니께로 돌아간다는 조병화 시인의 이승이 언어의 유희였고 사치였다면, 루핑지붕으로 스며든 비가 스펀지처럼 솜이불을 젖게 한다는 송유미 시인의 이승은 지옥입니다.
얼굴 한 번 본 적은 없지만 근 이십 년 문학 속에서 오누이처럼 만났던 송 시인과 저는 고향을 바꿔 살아온 실향민이었습니다. 저는 예순 해도 넘는 세월을 그녀의 고향 서울에서, 그녀도 어릴 적 서울을 떠나 제 고향 부산에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억겁의 세월 전에 했던 약속처럼 전화를 할 때마다 달랑 흑백사진 한 장으로만 남아있는 서울 신당동과 부산 서면 언저리의 향수를 찾다 동병상련의 눈물을 닦아주던 문우였습니다.
2년 전부터 우리는 전생에서 옷깃마저 스친 적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전화를 넣을 때마다 문자로 해달라는 답신이 휴대폰 화면에 찬 바람으로 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녀에게서 제 고향 부산 말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달 9월 5일, 그녀가 하늘로 갔다는 부고를 받았습니다. “시인 송유미 별세, 빈소 해운대 장례식장 101호, 발인 2023년 9월 7일(목) 11시” 전쟁통에서 헤어졌다 다시 만난 누이 같았는데, 그녀는 어릴 적 그대로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살다 총성이 멎은 곳으로 갔습니다. 사인은 루게릭병이었습니다.
하늘은 시詩의 씨앗을 뿌리고 오라고 이 땅으로 심부름 보낸 천상의 시인, 내 동생 송유미를 하늘에서 귀히 쓰려고 다시 데려갔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전생에서 한 약속 흘려버리고 전화를 하지 않았으면, 굳어버린 시멘트 같은 몸으로 점자 더듬듯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일주일쯤 몸져눕지 않았을 텐데 하는 회한 때문에 지금도 곡비보다 더 슬피 울고 있습니다.
첫댓글 고향의 누이를 잃은 슬픔 ...
루핑 지붕을 스치는 바람
곡비보다 더 깊고 짙은 흐느낌
공감 합니다.
하시는 말씀을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 세대이긴 하지만, 그 슬픔은 창 밖 내리는 빗물처럼 가슴 속을 타고 흐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선생님의 건강도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