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서럽다 44]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남의 글을 우리글로 바꾸어 놓는 일을 요즘 흔히 ‘옮김’이라 한다. 조선 시대에는 ‘언해’ 또는 ‘번역’이라 했다. 요즘에도 ‘번역’ 또는 ‘역’이라 적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지난날 선조들이 쓰던 바를 본뜬 것이라기보다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쓰니까 생각 없이 본뜨는 것이다.
언해든 번역이든 이것들은 모두 우리 토박이말이 아닌 들온말에 지나지 않고, ‘역’이란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쓰겠지만 우리에게는 낱말도 아닌 한갓 한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 토박이말을 쓰느라고 ‘옮김’이라 했을 터인데, 남의 말을 빌려다 쓰기보다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 쓰려는 마음이 아름답고 거룩하다.
그러나 남의 글을 우리글로 바꾸어 놓는 일을 ‘옮김’이라고 한 것은 우리의 말본으로 보아 올바르지 않다. ‘옮기다’는 무엇을 있는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자리바꿈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본디 뜻에서 비롯하여 ‘발걸음을 옮기다’, ‘직장을 옮기다’, ‘말을 옮기다’, ‘모종을 옮기다’, ‘눈길을 옮기다’ 같은 데로 뜻을 넓혀서 쓴다. 하지만 언제나 무엇을 ‘있는 그대로’ 자리바꿈한다는 본디 뜻을 바탕으로 삼은 채로 넓혀지는 것일 뿐이다.
남의 글을 우리말이나 우리글로 바꾸는 노릇을 우리는 예로부터 ‘뒤치다’라고 했다. 글말로는 한문에 이골이 난 그대로 ‘언해’나 ‘번역’이라 썼지만, 입말로는 ‘뒤침’이라고 했다. ‘뒤치다’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엎어진 것을 젖혀 놓거나 자빠진 것을 엎어 놓다.”라고 풀이했으나, 그것은 본디의 바탕 뜻이다. 그런 본디 뜻에서 ‘하나의 말을 또 다른 말로 바꾸어 놓는 것’으로 뜻이 번져 나갔으리라는 것은 세 살배기 아이라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겠다.
▲ ‘번역’은 토박이말 ‘뒤침’으로(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나는 어릴 적에 서당 선생님이 “어디 한번 읽어 봐.” 하시고, 또 “그럼 어디 뒤쳐 봐.” 하시는 말씀을 자주 들었다. 읽어 보라는 것은 한문을 우리말 소리로 소리내어 읽으라는 뜻이고, 뒤쳐 보라는 것은 그것을 우리말로 바꾸어 보라는 뜻이다. 그리고 ‘뒤쳐 보라’는 말씀은 가끔 ‘새겨 보라’는 말씀과도 함께 들었는데, ‘새기라’는 말씀은 글의 속살을 알아들을 만하게 풀어서 말하라는 뜻이었다.
요즘 흔히 쓰는 대로 하면 ‘새기라’는 말은 ‘풀이하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새기다’와 ‘풀이하다’는 꽤 다른 뜻을 드러내는 말이었다. 풀이하는 것이 글에 적힌 것에 따라 알기 쉽도록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새기는 것은 글에 담긴 속뜻을 나름대로 제 것으로 삭히고 녹여서 알기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린 시절에는 서당에서 ‘읽다’, ‘쓰다’, ‘베끼다’와 더불어 ‘뒤치다’, ‘새기다’, ‘풀이하다’ 같은 낱말을 두루 썼다. 그런데 거기서 ‘뒤치다’와 ‘새기다’가 이제는 책을 읽는 데서는 쫓겨나 사라진 듯하다.
이제부터라도 ‘새기다’를 되살려서, ‘풀이하다’보다 훨씬 깊이 있게 되새김질을 해서 제 것으로 만든다는 뜻으로 썼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말로 된 책을 우리말로 바꾸었다는 뜻으로 ‘번역’이나 ‘옮김’을 쓰지 말고 ‘뒤침’을 되살려 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