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서점인이 말하는 한국 기독 출판
“한국 기독교 수준을 높이는 책 기다린다”
-부산 기쁨의 집 김현호 대표-
*인터뷰/월간<복음과상황>편집장 옥명호
부산의 대표 기독교 서점 가운데 하나인 ‘기쁨의 집’ 김현호 대표(53)는 서점 경영자이면서 문화사역자다. 한번에 70~80명이 모이는 독서캠프를 매년 한 차례씩 15년째 사비를 털어 꾸려오고 있으며, 저자초청 북콘서트나 작은 영성 음악회와 같은 문화 사역도 꾸준히 벌인다. 젊은 시절, 가난한 그가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는 방법은 서점 직원이 되는 것이었다. 믿지 않는 집안에서 자라나 목회자가 되고 싶었으나,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가슴에 불덩이 하나가 떨어져” 다른 길을 택했다. “오지에 선교하러 가는 마음으로” 기독교 서점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좋은 책을 소개해주어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며 고마워하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좋은 신앙서적 한 권이 어지간한 설교 열 편보다 낫다’는 생각이 절로 든단다. “천 개의 독서 모임과 100개의 교회 도서관을 일구는” 꿈을 품은 그에게 한국 기독 출판에 대한 평소 생각을 물어보았다.
- 요즘 어떤 책들이 베스트셀러인가
= 수십만 부씩 나가던 과거와는 다르다. 지금은 연간 1만 부 판매도 쉽지 않은 시대다. 이제는 성장주의를 설파하는 저자 개발은 한계에 도달했다. 오히려 새로운 대안을 찾고 건강성을 추구하는 저자들의 책이 꾸준히 팔린다. 해외 저자들 가운데 유진 피터슨이나 마르바 던 같은 경우는 판매량이 별로 줄지 않고 나가는 반면, 빌 하이벨스나 맥스 루케이도, 필립 얀시 같은 저자들 책은 2010년 이후로는 판매량이 현저히 떨어졌다. 스타가 휩쓸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고 본다.
- 독자들을 매일 만난다. 그들에게 어떤 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 독자들은 입문(초보) 독자와 전문 독자, 마니아 독자로 나뉘는데, 저마다 필요가 다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입문 독자나 초보 신자들을 위한 좋은 신앙 입문서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 특히 저마다 다양한 경험을 지닌 초보 신자들의 경우, 두루뭉술하거나 너무 일반적인 내용은 잘 다가가지 않는다. 더구나 그들의 직업이나 학력 정도에 따라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고, 반대로 별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다. 신앙 입문서로 대부분 간증서를 소개해주는데, 아무래도 개인 경험 중심인데다 때로 편협한 내용도 있어서 문제가 있다. 특히 비크리스천들에게 복음적 가치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유쾌하고 즐거운 책들이 출판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마니아 독자들은 사고나 의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책을 기대하는데 그런 책들을 거의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출판은 한 시대를 선도하는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자꾸 옛것을 포장만 그럴 듯하게 해서 내거나 우려먹기식으로 펴내는 건 그만하면 좋겠다.
- 기독 출판사에 하고 싶었던 얘기가 많을 것 같다
= 출판사가 판매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팔릴 책만 내서도 안 된다. 10종을 출판한다면 그중에 최소한 2종 정도는 천, 2천부 정도만 나가더라도 치열한 씨름이 담긴 책, 기독교의 질을 높여줄 책을 내주면 정말 고맙겠다. 그래야 출판 콘텐츠의 균형이 잡힌다. 신간을 보면 재탕하거나 안 읽어도 되는, 종이가 아까운 책들이 적지 않다. 반짝 팔리고 말 책들 말고, 10년 이상 독자들에게 읽힐 책을 내면 좋겠다. 이를 위해 중장기 출판 기획이 필요하고 저자 개발이 당연히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쉽진 않겠지만, 집필 단계에서부터 원고비를 지원하는 사례를 만들면 어떨까. 또한 저자 개발을 위해서는 좋은 잡지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책을 쓰지 못해도, 그 매체에 글이 실리고 발표되다 보면 어느 순간 한 권의 책이 될 원고가 쌓이고 글 쓰는 이의 역량도 자라지 않겠나.
무엇보다 기독교 문화 수준이 높아지려면 기독교 문학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영혼을 비추고 맑게 해주는 것으로 시(詩)만한 게 있을까. 좋은 시가 있으면, 거기에 곡을 붙여 좋은 노래가 나온다. 좋은 이야기가 소설화되면, 그게 결국 영상이나 방송 시나리오가 되어 좋은 콘텐츠를 확대재생산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국내에는 기독교 문학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한때 김성일 선생의 소설이 꽤 많이 읽혔는데, 그 독자들을 이끌어줄 새로운 저자가 나오지 못했다.
- 기독 출판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옛날에는 서점이 동네 빵집만큼 많았다. 시장 다녀오는 길에 장바구니에 소설, 잡지 등을 사 넣었다. 요즘은 그럴 수가 없다. 서점 찾기가 어려운 탓이다. IMF 전만 해도 기독 서점들이 500개에 달했다. 지금은 320개 정도인데, 그나마 계속 문 닫는 곳이 늘고 있어서 곧 300개 아래가 될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무너지면서 젊은 독자군이 인터넷서점으로 많이 옮겨 갔다. 인터넷서점이 새로운 독서 인구를 창출했다고들 하는데 틀린 말이다. 도서판매량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다. 새로운 독서층을 만들어냈다면 독서량 증가에 따른 책 판매도 늘어야 하지만 현실은 반대 아닌가. 할인과 마일리지, 이벤트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여 끌어간 독자들을 기독 서점이 되찾아올 여력은 거의 없다. 기독 서점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는데, 기독 출판의 미래가 낙관적일 수 있을까. 게다가 종이책 독자들은 노령화되어가고, 경제력도 떨어져서 도서 구매력도 약화되어간다. 젊은 층은 대부분 스마트 기기에 소비하느라 다른 여력이 없다.
출판 미래와 관련하여 정부의 문화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문화 사업은 경쟁도 필요하지만 보호와 지원도 중요하다. 도서 면세 정책이나 출판비 지원, 잡지 발행 지원 등은 역설적으로 군사 정권 때 더 잘 이뤄졌던 것 같다. 그런데 IMF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경쟁에 내몰리면서 도서정가제가 무너졌고, 각종 할인 혜택으로 정가제의 의미는 거의 퇴색했다. 더 철저한 정가제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책상에서 클릭해서 결제하는 사람보다 지역 서점에 시간 들이고 발품 팔아 나온 사람이 더 구입 혜택이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 기독 서점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 무엇보다 한 지역의 기독 문화를 일으키는 가장 일차적인 공간이 기독 서점이다. 온라인에서 쉽지 않은 독서캠프, 문화강좌 등을 통해 사람이 드나들고 만남이 생겨난다. 교회는 주일 단위로 움직이니까 평일에는 그냥 닫혀 있지만, 서점은 평일 내내 열려 있다. 서점이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의 교회 수준이 다르다고 본다. 기독 서점은 일반적인 서점과 달리, 책만 파는 곳이 아니다. 어떤 점에서 기독 서점은 지역 내 상업 공간 속의 교회로 존재한다.
- 기독 서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 기독 서점들이 온라인서점의 급성장에 따른 피해의식이 있다. 왜 아니겠나. 그러나 기독 서점에 독자들의 발길이 끊긴 건 결국 우리 책임이다. 사람들이 즐겨가는 커피숍에는 맛, 디스플레이, 서비스 등 분명 그곳만의 매력이 있다. 그런 매력 요인을 갖추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서점을 시끌벅적한 마트처럼 운영해왔다. 하루종일 있어도 눈치 받지 않고 편안히 책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우리 스스로 서점을 교회로 생각하고, 찾아오는 손님을 우리 교인이라 여겨 섬긴다면 그들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우리 서점에는 다른 지방에서도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이 계시다. 손님의 80% 이상이 단골인데, 이분들이 왜 굳이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오겠는가. 최근 내가 읽은 책 중에 내용이 정말 좋아서 기독 서점에는 배본하지도 않는 그 책을 따로 주문하여 50권 넘게 팔았다. 좋은 책을 소개하고 읽히고 싶은 열정이 가득한 서점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목회자만 하나님 나라 섬기는 게 아니다. 좋은 출판인, 좋은 서점인이 되어서 좋은 책을 내고 읽히는 게 하나님 나라 일 아닌가.
진행․정리 옥명호 편집장 lewisist@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