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 철수 작전
던케르크보다 경이로운 흥남철수 작전, 누구의 계획인가?
공산치하에서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없었던 북한 주민들은 월남을 희망했다
6.25전쟁에서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며 수 많은 인명을 구해낸 흥남철수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유명한 던케르크 철수와 비교할 수도 없는 경이로운 철수작전이었다. 던케르크 철수는 1940년 5월말부터 6월초까지 8일간 독일군에 포위돼 있던 영국, 프랑스, 벨기에 연합군 33만8000여 명을 구출해낸 작전으로, 여러 차례 영화화되기도 했다.
이에 반해 흥남철수작전은 효율적인 군대의 철수 작전이란 의미 외에도 어떤 전쟁사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전쟁과 무관한 10만 여명의 민간인 구출작전이 함께 진행된 역사상 유례없는 작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흥남철수작전 등 한국 근대사의 여러 장면을 담은 영화 ‘국제시장’은 당시 피란민 철수작전에 피란민을 구출하지 않으려는 미군 지휘관을 한국인 통역관이 설득해서 미군들이 무기를 버리고 이들의 구축작전이 시작됐다고 묘사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6.25전쟁에 관한 역사적 문헌을 연구 조사해온 안재철 월드피스 자유연합 대표는 이러한 영화의 이야기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기독교 세계관 매거진 월드뷰를 통해 밝혔다. 안 대표는 흥남철수작전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희생해온 미군의 공로를 빼앗는 일이며, 이러한 역사 왜곡은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가져오게 된다고 지적했다.
안 대표는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 당시, 북한을 탈출하려는 주민들을 구출하려는 당시 작전은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관여하며 12월 8일 수립된 흥남철수 작전계획 205호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1950년 9월 미군의 인천상륙 이후 유엔군과 국군이 북진할 때 해방 이후 지난 5년간 북한 공산정권의 악행에 지쳐 있던 함경남북도 일대 주민들은 유엔군과 국군을 환영하고 이제 자유세계로 통일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12월 들어 갑작스런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게 된 유엔군과 국군의 철수 사실에 북한 주민들은 공산당에게 보복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유엔군이 흥남항으로 도착하기 전부터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독교가 강했던 북한 주민들은 공산 치하에서 더 이상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기에 자유세계에 대한 갈구로 가득했다.
또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은 12월 9일 CX-50838 전신 메시지를 통해 민간인 조력자들과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보복을 당할 염려가 있는 한국인들을 가능한 한 많이 철수시켜야 한다고 명령했다. 안 대표는 이와 관련, 이러한 철수 요청은 당시 이승만 정부에서 제안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12월 14일 흥남항에 몰려 있는 피란민들을 관리 보호하던 미 육군 3단장은 “선편으로 남한으로 피란가야할 사람들이 3만 여명 정도”인데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이 ‘애국자들의 생명을 구하고 피란민 수송을 유엔군을 방문해서 부탁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이어 12월 22일 미 육군 10군단장은 “많은 민간인이 유엔군 사령관의 명령에 의한 구출대상에 해당하고 수많은 사람을 대한민국으로 철수시켰고 더 많은 사람을 철수시킬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이 같은 철수작전이 끝나고 이듬해 51년 1월 23일 이승만 대통령은 부산에서 흥남철수작전을 성공리에 지휘한 미 해군 제독 터너 조이 중장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안 대표는 “이러한 흥남철수작전의 실제 역사를 지난 20년 가까이 주장하는 동안 미군 칭찬에 한국인들의 공로를 짓밟았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위기의 대한민국을 지킨 미군의 희생의 역사를 훔치는 것이야말로 비겁한 짓”이라며 이제라도 역사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의 오류를 지적하면 영화는 허구이기에 흥행을 위해 그럴 수 있다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이런 주장은 언제나 대한민국을 좌경화시켜온 사람들이 거짓으로 국민을 선동하는 소리에 불과하며, 올바른 역사적 사실을 다음세대에게 바로 전달해야한다”고 주장했다.[복음기도신문]
크리스천 퍼스펙티브
역사적 사실을 오해하거나 왜곡하면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지나간 우리 역사에 대해 부끄러운 역사, 잘못된 역사를 가진 나라로 심지어 태어나지 말아야할 나라라고 보는 듯한 관점도 있다. 그런 인식이 대한민국 건국을 올바로 가르치지 않고, 학생들이 공부하는 역사 교과서에 대한민국 정부 출범과 같은 표현을 낳았다. 북조선인민공화국 건국이라고 가르치는데 왜 대한민국 건국을 건국으로 당당하게 가르치지 못하는가. 역사의 왜곡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 기간의 아픔을 거쳐 일본의 태평양전쟁의 패전으로 1945년 독립한 이후, 3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48년 건국하게 됐다. 1948년 5월 31일 제헌의회에서 이승만 국회 의장은 “종교 사상에 무엇을 가지고 있든 오늘을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라고 자랑할 수 없으며, 또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윤영 의원의 간절한 기도로 우리 역사에서 처음 맞는 국회가 시작됐다. 잘못된 역사에 대해서는 회개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랑스러운 역사는 올바로 기억하고 다음세대에게 가르칠 수 있는 지혜를 갖도록 기도하자.
http://gnpnews.org/archives/59668
英 BBC, ‘크리스마스의 기적’ 한국전쟁 흥남철수 조명
1950년 크리스마스 이브, 2만명 태워 극적 탈출
"갑판서 바라본 흥남항은 ‘불바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몰려드는 중공군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미국 선박을 타고 고향을 탈출했던 ‘흥남철수’를 영국 공영 방송 BBC가 24일(현지시각) 조명했다.
흥남철수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미국 제10군단과 한국군 제1군단이 궁지에 몰리자 1950년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열흘간 함경남도 흥남항에 선박 100여대를 보내 병력과 물자 등을 실어나르며 피난민을 대피시킨 작전이다.
흥남항을 가장 마지막으로 떠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최대 60명이 탈 수 있게 만들어졌지만, 피난민과 군인 등 총 2만여명을 태우고 3일간 파도를 가르며 경상남도 거제항에 도착했다. 특히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님이 탑승했던 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은 군수물자 25만톤을 버리고 피난민 1만4000여명을 태웠다. 마실 물이나 식량도 없이 숨진 사람이 한 명도 없이 구출돼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도 불린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이 배를 타고 남측으로 내려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배에서 일어난 가장 큰 기적은 탯줄을 이로 끊어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만 5명이었다는 점이라고 BBC는 소개했다. 한국식 이름을 모르는 미군은 아이들이 태어난 순서대로 숫자를 매겨가며 '김치'라고 불렀다.
가장 먼저 세상의 빛을 봐 '김치 1'로 불렸던 손양영(69)씨는 북한에 남아 있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두 형을 일평생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당시 손씨의 아버지는 가족 모두가 배에 탈 수 없다고 판단하고 9살, 5살 난 두 아들을 삼촌에게 맡기고 만삭의 아내와 탑승했다.
두 아들에게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손씨는 같은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난 형제가 이렇게 떨어져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데 깊은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며, 하루빨리 통일이 이뤄져 형들을 만나고 싶다며 눈물을 보였다.
17살에 엄마와 여동생의 손을 잡고 배에 올라탔던 한보배(86) 씨는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배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배를 타지 않으면 목숨을 잃는다는 것만은 확신했던 순간이었다.
한씨는 갑판에서 바라본 흥남항은 "불바다"였다고 묘사했다. "항구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배에 타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미어지게 한다"는 그는 "전쟁은 절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24/20191224021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