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편 : “결코 잊을 수 없는 진정한 장로였던 진정식 장로님"
내가 문곡 교회를 회상할 때 결코 잊을 수 없는 고마운 한 장로님이 있습니다.
진정식 장로님!
진장로님은 정말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장로님이셨습니다.
목회자들이 교회들을 맡아 다니다 보면, 교회마다 꼭 목회자들을
너무 가슴 아프게 하는 성질이 삐딱한 장로님들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목회자가 추진하는 일들에 사사건건 반대하고 무조건 반대하고
자신을 좋아하는 교인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목사와 각을 세우고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무리를 지어 교회 안 나오는 등
물리적 행사를 하며 행패를 부리는 그런 못된 장로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장로들 때문에 목회 때려 치우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하지요 ^^
그런데 내가 만난 진정식 장로님은 그야말로 진짜 장로, 진정한 장로이셨습니다.
목회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장로님, 언제나 목회자 편에 서 주셨던 분이셨습니다.
언제나 교회를 위해 최선으로 일하시고 그러면서도 언제나 자신은 나타내지
않으려고 하시는 겸손하신 장로님이셨습니다.
진장로님은 당시 교회에서 논과 들녘을 지나 걸어서는 약 30여분 거리에
사셨는데 농사와 채소를 가꾸어 경운기에 싣고 시장에 내다 팔면서
생계를 이어가셨는데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안식일 외에는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거의 쉬지 않으시고 참으로 열심히 사셨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채소 등을 경운기에 싣고 문곡리에서 꽤 먼 거리인
송탄 시장까지 다니시면서 장사를 하시면서도 교회 일이라면,
열일을 재껴 놓으시고 참석하시고 목사와 동행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품성이 얼마나 좋으신지 단 한 번도 목회자에게 부담을
주거나 목회자가 추진하는 일에 “노”(No)를 해 본적이 없으셨습니다.
늘 빙그레 웃는 얼굴과 겸손함으로 어린 목회자인 나를 대해 주셨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적극 찬성하시고 참여하심으로
그 장로님을 뵈면 절로 머리가 숙여질 정도였습니다.
말투는 어눌하시고 행동도 느릿하시지만, 특유의 겸손함과 열정으로
교회에서도 모든 교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장로님이셨습니다.
진장로님이 이렇게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된 것은 그 장로님을
위해 장로님 못지 않는 열정으로 교회를 사랑하시고 목회자를
존경해 주시던 장로님의 모친이신 김복이 할머님 때문이었습니다.
김복이 할머님은 키가 작달만하시고 완전 시골 할머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당시 무릎 관절도 좋지 않으셔서 걸음걸이도 편치 않으신데도
새벽마다 그 멀리서 걸어서 새벽 기도회 한 번 빠지지 않으시고 참석하셨고
오실 때마다 혼자 사는 총각 목회자인 나를 위해 채소 등 먹거리를
반드시 챙겨 가지고 새벽 3시 반 쯤이면 사택 주방에서 그것들을
정리해 놓으시느라 부스럭 거리면서 목회자를 향한 사랑을 듬뿍 주셨습니다.
농담도 얼마나 잘 하시고 웃는 것을 좋아하시는지 나와 죽이 잘 맞아
만나기만 하면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박장대소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김복이 할머님은 그냥 매사에 “우리 목사님”이 입에 배어 있으셨고
정말 얼마나 목회자를 존경하시고 사랑해 주셨는지.....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 김복이 할머님을 생각하면 눈에 선하고
하늘에 가면 반드시 뵙고 싶은 어머님으로 기억됩니다.
그러한 어머님의 믿음을 진장로님은 그대로 물려받아 교회에 충성하셨고
또 그러한 아버지의 믿음을 자녀들이 물려받아 장로님의 큰 아드님인
진완수 형제는 얼마나 충직하고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교회 일을
돕고 목회자를 위해 열심히 헌신하였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복 받은 가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래 전에 진장로님 가정은 충청도 예산군 덕산면으로 이사를 가셨고
그리고 엊그제 현재 문곡 교회 담임 목사와 통화를 통해 안 것은
그 진장로님 자녀 분 중 한 아드님인 진완흥 형제 가족이
현재 문곡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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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을 다 쓴 후 나는 문곡 교회 이정우 장로님을 통해
오늘 진장로님의 아드님이신 진완수 장로님 전화 번호를 알게 되어
진완수 장로님과 반갑고 반가운 통화를 장시간 하게 되었습니다.
수 십 년만의 전화 통화이니 얼마나 반가운지...
당시 교회의 듬직한 청년이었던 완수 형제가 이젠 시골 교회로서는
작지 않은 130여명 출석 교회(덕산 교회)의 장로님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아버님인 진정식 장로님은 이제 올해 80세가 되셨고
사모님이신 차연옥 집사님은 82세가 되셨는데
여전히 장로님은 농사를 지으시면서 경운기로 예산, 서산 등
20킬로가 넘은 거리를 다니시면서 장사를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위험한 경운기로 인해 큰 사고도 몇 번 나셨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몸은 말짱하셨다고 합니다.
위험하여 아들 장로님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으시고
부부가 그렇게 열심히 하루도 쉬시지 않고 일을 하신다고 합니다. ^^
진장로님은 일복은 타고 나셨나 봅니다.
오늘 통화하면서 진완수 장로님은 나와 자전거 타고 방문을 다니면서
불렀던 찬송 ‘지금 내가 사는 것 주님의 크신 은혜라’는 찬미를
기억하고 있었고 특히 진형제가 군대 갈 때 내가 특별 새벽 기도회를
열어 여러 날 동안 기도해 준 것을 감사함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통화를 하면서 그 당시 진완수 형제의 할머님인 김복이 할머님,
성보 엄마, 보길네, 순나네, 정태성 장로님, 백종혜님네, 허양순 집사님,
김연옥 집사님, 효석이 엄마 진희순님, 여광섭, 정옥순, 김효수,
여옥출 집사님, 여성현 장로님등 내가 이름을 열거하니....
깜짝 놀라면서 “아니 목사님, 30년 전인데 어떻게 그 이름들을
다 기억하시느냐?”면서 몹시 놀라더군요 ㅎㅎㅎ
그래서 나는 “나는 장로님, 그 때 그 이름들을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그 이름들....
하늘에 가면 꼭 함께 살고 싶은 아름다운 이름들, 얼굴들입니다.
내 인생에 가장 절망과 희망에 교차하던 그 시절에
나를 그렇게 좋아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존경해 주시던
그 이름과 얼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진완수 장로님이 올해 51세이니 나보다 여섯 살 아래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 때 내 나이가 26세였으니 진형제가 20세였지요.
진완수 장로님은 당시 학생이었던 채아무개 학생과 후에 결혼을 하여
현재 20대 두 아들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아들들이 신학을 하여 목사가 되길 바랬는데 그렇게 되지 못해
상당히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진장로님의 고모 그러니까 진정식 장로님의
여동생이었던 진희순님이 바로 교회 아래에 사셨는데,
내가 열심히 전도하여 두 부부가 교회를 나오시면서
정말 나를 무척이나 좋아해 주시고 친하게 지냈는데
그만 년 전에 지병으로 일찍 돌아 가셨다는 이야기를
오늘 듣게 되었습니다.
내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내가 안성으로 온 후 몇 년이 지나
바로 이 진희순님이 나를 찾아 왔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평택 문곡리와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왔다는 소문을 듣고
보고 싶어 안성까지 찾아 와 주셨는데... 그만 돌아가셨다니...!!!
어쨌든, 문곡 교회 이야기에서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진정식 장로님과 그 아드님 진완수 장로님 가정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사인 나를
너무도 사랑해 주시고 아껴 주시고 도와 주셨던
고맙고 감사한 신앙의 가족으로 내 뇌리에 깊이 박혀져 있습니다.
내가 그 당시 그 작은 시골 교회에서 1년도 채 안되어 100여명이
참석하는 교회로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렇게 교회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봉사하며 희생하시고
주의 종인 목회자에게 충정심을 아까지 않은
진장로님과 같은 분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첫댓글 목사님 감동적인 회고담 고맙습니다
곽목사님, 그렇게 읽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30여년 전의 일을 회고하니 감개무량합니다.
내 기억의 창고에만 머물던 아름다운 일들을
곽목사님의 몇 번의 간청과 재촉에 의해 써 내려가니...
제 스스로도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주의 종인 목회자를 어떻게 대하시는지에 따라
장로님들을 보시면 대대손손 복돼신분들이 계시드라구요
모두가 하나님께서 베프신다는것을 절실히 느낄때가 많습니다
아마 진정식 장로님가족 모둔분이 그런분이 않인가 느낍니다
진정식 장로님은 일찍 부터 주님의 사역자를 알아보시고
또 목사님께서도 수십년이 지난후에도 진장로님 가족들 모두
교회식구들을 기억 하시니 역시나 택함받으신분은 다르십니다
제가여중때 작은 시골교회에오신 전도사님과
가정방문및 전도를 다니던 기억이 나네요
그당시엔 목사님은 하나님같은존재이고
전도사님 역시 하나님같으신 분으로 추앙하던 시절이였지요
순수신앙인으로그시절이그립습니다
솔이 사모님, 참 좋은 말씀이십니다.
제가 신앙 생활을 오래 하면서 보는 것이지만,
주의 종들에게 진심으로 충정을 다한 분들의 자녀들 보면
한 결같이 복의 복을 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주의 종들에게 대항하고
정말 목사님들을 힘들게 하신 분들의 말로를 보면
그 분 자신은 물론 자녀들에게까지
참으로 비극적인 일들이 많음을 실제로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주의 종들에게 충정을 다하는 것은,
사실은 그 종을 세우신 하나님께 하는 것이지요.
목사님은 역시나 택함 받으신 주의 사역자이심을
문곡교회 회고담속에 담아 있네요 감명받았습니다
존경받으시기에 충만하신 목사님 존경 합니다
솔이 사모님,... 과분한 말씀입니다.
더 영혼들을 사랑하라고 주시는 격려로 받아 들이겠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