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서럽다 49]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가을이 되면 뫼와 들에 푸나무(풀과 나무)들이 겨울맞이에 바쁘다. 봄부터 키워 온 씨와 열매를 떨어뜨려 내보내고, 뿌리와 몸통에다 힘을 갈무리하느라 안간힘을 다한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봄여름 내내 쉬지 않고 일한 잎은 몫을 다했다고 기꺼이 시들어 떨어지고, 덕분에 사람들은 푸짐한 먹거리를 얻고 아름다운 단풍 구경에 마냥 즐겁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풀은 땅속에서 뿌리만으로, 나무는 땅 위에서 꾀벗은 몸통으로 추위와 싸우며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봄이 오면 푸나무는 또다시 ‘움’을 틔우고 ‘싹’을 내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게 마련이다.
· 움 : 풀이나 나무에 새로 돋아 나오는 싹.
· 싹 : 씨, 줄기, 뿌리 따위에서 처음 돋아나는 어린잎이나 줄기.
... 《표준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움’과 ‘싹’을 거의 같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움’과 ‘싹’은 말이 다르듯이 서로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들 둘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비슷해서 마음을 꼼꼼히 지니고 바라보지 않으면 가려내기 어려울 뿐이다.
▲ ‘움’은 땅을 밀고 나오면서 미처 햇빛을 받지 못해 빛깔이 하얗거나 노랗다.(그림 이무성 작가)
푸나무의 목숨이 처음 나타날 적에는 씨앗에서 거나 뿌리에서 거나 줄기에서 거나 ‘눈’으로 비롯한다. 씨앗이나 뿌리나 줄기의 ‘눈’에서 새로운 목숨이 나타나는 첫걸음을 ‘움’이라 한다. ‘움’은 껍질이나 땅을 밀고 나오면서 미처 햇빛을 받지 못해 빛깔이 하얗고 모습도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다. 하얀 ‘움’이 터져 나와 자라면 햇빛을 받아 빛깔이 푸르게 바뀌고 모습을 갖추면서 ‘싹’이 된다.
한마디로 ‘움’이 자라서 ‘싹’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움’이 나오는 것을 ‘트다’라고 하고, ‘싹’이 나오는 것을 ‘나다’ 또는 ‘돋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