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에서 진실 찾기-서정숙- 《나비 날다》(선우미디어, 2021)
方 旻
1. 서정숙 작가의 《나비 날다》를 우연히 만났다. 서문을 읽고 차례를 들추다가 꽂힌 글이 <수필쓰기의 기본을 생각하다>였다. 현재 활동 중인 수필가 중에도 기본을 갖추지 못한 경우를 자주 목격하는 바라 먼저 관심을 끌었다. 읽고 보니 정말 수필 쓰기 기본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렇게 기본을 아는 작가는 글에서 밝힌 대로 기본을 잘 갖추어 쓰고 있는지 궁금하여 처음부터 읽기 시작하였고, 비평할 만한 대상으로 여겨 쓰는 셈이다. 평문을 자주 쓰지 않지만 비평할 수필집을 고르는 필자 나름대로 기준이 있다. 췌언이 아니길 바라며 털어놓는다. 사적 교류나 공적 관계로 저자를 알건 모르건 그건 개의치 않는다. 책을 받게 되면 먼저 서문을 읽어본다. 서문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기본을 알고 쓰는지 모르고 쓰는지를 판별한다. 나름 세운 기준은, 짧은 글이지만 문장과 문단 조직 기본을 제대로 갖추었는지, 사용한 어휘가 적절한지 살핀다. 그런 다음 차례를 훑으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의 글이 있는 곳을 펼쳐 읽는다. 괜찮다 싶으면 한두 편을 더 읽어본다. 고개를 젓게 되는 대목이 나오지 않으면 책의 첫 장으로 돌아간다. 읽기 시작한 날짜를 적어놓고 순서대로 읽어 가며 각 편에 대한 문제 사항을 메모한다. 차츰 읽다 비평 제목이 정해지면 본격으로 평론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여러 날 걸려 읽고 쓸 거리를 정리하여 초고를 쓴다. 초고를 썼다고 바로 발표하지 못한다. 초고를 두고 다시 생각해보고 또 읽으며 보충하고 삭제하면서 여러 번에 걸쳐 수정하며 글을 완성해나간다. 글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발표하기까지 여러 날은 물론이고 여러 달을 묵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사이 해가 바뀌기도 하고 초고를 쓴 날짜가 늦은 것이 더 빨리 선을 보이는 것도 생겨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서정숙 작가의 《나비 날다》 평문이 이제 여러분에게 간다.
2. 이 책을 받아서 펼쳤을 땐 모르는 작가였다. 그런데 표지 날개에서 작가 약력을 살펴보고, 사진을 보니 낯이 익었다. 필자와 동일 잡지로 등단한 선배였다. 작가회나 다른 행사에서 분명 만난 것이다. 작가가 직접 필자에게 책을 보내지 않았는데, 어찌어찌해서 필자에게 수필집이 온 것이다. 비평 인연이 닿아서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른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난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작가와 비평가 만남도 알고 보면 우연이 아닌 필연 작용인지도 알 수 없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부터 지나치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것도 이 작가 주조主潮와도 관련되니 심상치 않다. 이 글 제목을 ‘소소한 일상에서 진실 찾기’라 했듯, 사소한 내용으로부터 출발하는 것도 크게 어긋난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작가는 남편 은퇴 후 경기도 포천에서 집을 짓고 펜션을 운영하며 산다. 글에서 읽은 바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호젓한 산골 마을쯤으로 보인다. 손님 중엔 낚시꾼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 이 《나비 날다》는 주로 이곳에서 생활하며 경험한 것을 제재로 삼아 그녀만의 삶의 진실 찾기에 나선 글을 모았다. 총 6개 장으로 구성한 이 책에는 제1장부터 제4장까지는 펜션의 생활 경험이 중심이고, 다른 두 장에선 국내외 여행 경험을 주요 제재로 삼은 글이다. 전체로 보면 상통하지만 성격이 다른 5, 6장은 제외하고 주로 앞의 4개 장의 글을 주요 비평 대상으로 삼는다. 글의 전개상 필요하면 두 장에서도 인용한다.
3. 서정숙 작가가 관심을 두고 찾는 소재는 소소한 일상이다. 남편과 펜션을 운영(<덩굴장미와 찔레>)하며 포착한 일상들. 정원, 소나무, 나목, 자작나무, 매화, 장미, 찔레, 새벽, 창, 국화차 등의 주거지 주변 자연물과 나비, 들고양이, 개구리, 벌레, 낚시꾼 등의 생활에서 접하는 생명체 등. 대물對物과 대인對人, 이 둘이 삶의 바깥에서 접하는 첫 번째 수필 제재이다. 삶의 안으로 들어와서 만나는 것들, 닭장 관찰, 장 담그기, 미투 사건, 계절 변화, 도시 건축, 위안부 문제, 전화, 통증 경험, 지하철 풍경, 요양원과 골프장, 가족과 친구 이야기 등은 미시적 관찰로 접하는 일상의 소소한 경험으로 두 번째 수필 제재다. 종합하면 한 여자가 살면서 접한 일상 이야기가 수필로 걸러서 작품화된다. 어떤 수필집도 읽다 보면 한 작가 일상과 과거, 생각과 감정의 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수필은 소설과 시와는 다르게 작가 일상이 세세하게 노출되는 고백성이 본질이라 그렇다. 혹간 이것이 지나쳐 자아도취나 자기 과시가 드러나는 문제도 있는 자아 중심 지향형 문학이 수필인 것. 이 자아 중심 지향에서 얼마나 타자 지향의 소통성 주제를 구현하는지가 중요 문제다. 자아(작가)와 타자(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상호 소통이 가능한 대상 선정과 주제 설정이 이 자기 중심성의 수필을 객관 수렴성의 공감으로 유도할 수 있다. 이 지점의 확보 여부가 수필의 성패를 좌지우지한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러면 서정숙 작가는 과연 글에서 얼마나 타자 지향성을 얻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인간 보편의 가치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선 것으로 진선미로 요약된다. 수필에서도 보편적 진선미眞善美를 추구한다면 충분히 타자 지향성을 담을 수 있다. 수필이 작가의 자화상이라는 진실을 <내가 아는 모습>에서 확인한다. 즉 “고통은 극복해야 하는 게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기에.”(<고통의 무게>)는 작가가 찾은 진眞이다. “참과 거짓의 문제가 아니었다. 잔인함과 평화가 공존하는 게 사회고 자연이지 않는가.”(<일체유심조>). 작가의 진실한 마음은 “꽃과 나무 이름을 차례로 불러본다. ~ 소리치며 나를 반기는 듯하다”(<정원을 가꾸다>)에서는 사물과 소통한다. 이런 소통은 “자기 한 몸 던져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자작나무>)로 사물의 참(眞) 메시지를 읽어낸다. 이런 마음은 “나무에 대해 가차 없던 마음과 짠한 마음이 교차하던 그때의 심정을”(<매화나무를 베다>)처럼 자아 감정도 투사投射한다. “이제 나 또한 나목을 닮아 가고 있지 않은가.”(<나목의 아름다움>)에서 사물과 일체감을 찾는다. 진실한 사람이라면 수필에서도 성찰의 선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사람에게서 미미한 향기라도 날 수 있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는가.”(<꽃의 향기>). “새벽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놀라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신비롭고, 아무것도 아닌 생각이 신선하다.”, “옹졸했던 생각과 행동을 꺼내 볼 수 있는 이 한가한 시간에 감사한다.”(<새벽>). 진선眞善의 작가 마음에서는 애니미즘animism을 넘어선 휴머니즘 사유를 만난다. “예의 있는 놈들이다”(<개구리 울음소리>). “뱀에게는 우리가 침입자였구나.”“개구리가 나도 이곳의 주인이라는 몸짓” “침입자끼리 잘 지내보자는 눈짓이라도”(<침입자>). 이러한 반성은 자기 성찰에 이은 예정된 선善의 수순이다. “우리는 얼마큼 노력하고 비상을 꿈꾸고 있는가.”(<나비 날다>). “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잣대로 함부로 무슨 상상을 했던 것일까”(<지하철 상인>). “사람이 때로는 벌레보다 못하다는 말을 들을 만하다는 생각”(<벌레 이야기>)이 들었고, 동물과 연대 의식은 “무당벌레의 먹을거리가 부족한 곳이라 잘 살아가는지가 걱정”(<벌레 이야기>)에서도 진실한 작가 선심善心을 마주한다. “군인은 왜 진실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아쉬운 마음이 어제 일처럼 남아 있다.”(<전화에 얽힌 두 가지 이야기>)는 감춰진 진실을 알고자 한다. 그녀가 발견한 일상 속의 미美는 “단아한 골동품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이 층 내 방 앞에 올려다 놓고 매일 보고 있”(<앉은뱅이책상>)는 ‘앉은뱅이책상’이 작가가 찾은 미적 대상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숲길, “그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제주, 숲길을 걷다>)도 있다. 이처럼 진선미 추구는 일상에서 찾는 서정숙 작가의 일관된 주제다. 이는 수필문의 상호 보편성에 기반한다는 의미이다. 수필은 작가의 소소한 일상 체험에서 진선미의 진실 발견하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 다만 작가별로 어떤 체험에서 진선미를 찾는가의 개별성 나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제재 선정과 주제 설정, 서술과 표현 방식에서 작가 개성이 드러난다면, 서정숙 작가는 일상 주변의 경험과 동식물에서 그것을 찾아내고 가치를 매긴다. 한 주부로서 가정사 이야기를 수필로 다루기보다 펜션 주변 사물 관찰에서 찾아낸다. 이러한 관찰의 눈과 그것에서 진선미를 발견하는 것은 작가의 풍부한 독서 체험이 기반이 된다. 다양한 독서는 사고의 폭을 넓히거나 깊게 하는 수필가의 기본 양식인데, 이 작가는 이것을 바탕으로 갖추고 있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읽지 않고 쓸 수 없다. 몸이든 마음이든 무언가 넣지 않고는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은 영원한 진리다. 독서 체험이 빛을 발하는 글은 <흰색 풍정>이다. 집 주변에 안개가 낀 새벽을 보면서, 소설 <무진기행>과 <설국> 주인공의 행태와 셰익스피어 어록도 차용한다. 서정숙 작가의 직접 현실과 독서의 간접 체험이 어우러져 서정 수필을 빚는다.
4. 이 글을 쓰도록 한 직접 동기인 ‘수필의 기본’에 그녀가 얼마나 충실한지도 함께 살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곳에 카페와 크지 않는 박물관과 관광객을 위한 식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중심에 작은 우체국 앞에 빨간 우체통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사람이 살았던 곳으로는 생각도 하기 어려운 그곳에서 한 가족이 밥도 해 먹고 잠도 자고 생활하는 보금자리였다고 한다”(<선택과 강제>) “그 시절엔 무척 귀했을 커피가 요즘은 온 천지에서 커피를 끓이고 있다.”(<낙엽>) “노인은 여자와 엄마, 아내와 할머니를 한꺼번에 집어삼킨 공룡 같은 두려운 존재로 들린다.”(<옷을 정리하다>) “남편은 이른 아침에 마을 사람 서넛이서 호수를 한 바퀴 돈다.”(<인형의 집>, 밑줄 필자) 위 밑줄 친 어절은 주어와 술어로 쓰였으나 상호호응에 문제가 있다. 문장 기본이 주술호응인 것은 글 쓰는 사람 모두 알지만 제대로 쓰기는 쉽지 않다. 꽤 쉬운 듯한 기본을 실상에선 누구나 자주 벗어나기가 십상이다. 어느 경우도 기본은 다른 것이 대신할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어떤 것이다. 초보자든 숙련자든 기본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이 작가처럼 기본에 충실하게 글을 쓰자고 다짐했어도 놓치는 수가 있다. 어떤 작가도 자기 글에 겸손해야 한다.(네이버블로그, <<방교수의 수필강의>>, <수필평설>에서)